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에서 또 설날에 예상치 않았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김정은이 인민들에게 하는 새해 인사인 신년사를 생략했죠. 작년 12월 하순에 예고했던 노동당 전원회의를 28일에 시작해 4일 동안 장시간 진행했고 회의결과발표를 신년사로 대신했습니다.
물론 의례적인 인사, 부드러운 표현들로 장식된 신년사보다는 국가전략의 방향을 심도 있게, 폭넓게 논의하고 밝힌 전원회의 보도 자료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만 그래도 새해 첫날 메시지를 생략해 주민들도 많이 섭섭했으리라 봅니다.
과거 특히 김일성시대 때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여러 번 있었죠. 대부분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 3일 내지 4일 동안 전원회의를 연말에 열어 숙청을 단행하거나 중대한 국가전략을 논의하고 방향을 설정한 계기들로 보입니다.
이번에도 비핵화 관련 북미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져있고, 엄혹한 대북제재 하에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위기상황 속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또한 북한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연말시한을 심각한 도발 없이 대충 얼버무리고, 올해 5개년 계획 마감 해를 뚜렷한 결과로 총화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뭔가 연간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 신년사보다는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논의하는 것으로 모호하게 넘어가야 하는 사정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미국에 대한 강한 도발보다는 절제된 표현들로 톤다운 된 이번 회의 결과는 결국 북한이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해 자력부흥에 의거한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입니다. 북한이 앞으로 보여주게 될 이른바 새로운 길에 대한 예고편을 방영한 셈이죠.
이러한 결정은 결국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재검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은 순순히 대북제재해제라는 선물을 안겨주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핵이 아니더라도 다른 구실을 붙여 북한을 압살하기 위한 정책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는 것이죠. 북미관계를 체제 대 체제와의 대결, 갈등으로 본 것입니다.
또한 경제적 이익, 단기간의 화려한 버터를 위해 핵 무장이라는 안보이익, 자주적 존엄과 맞바꾸지 않겠다는, 핵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천명했습니다.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언급함으로서 핵 전파에 나설 것임을 시사 하기도 했습니다.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내용은 많이 모순적입니다. 경제는 내각 사업이자 당중앙위원회 사업이라고 해 내각중심의 경제운영, 내각의 경제사령부 역할의 변화와 당의 개입을 예고했고, 사회주의경제의 본태,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상업망을 시급히 복원, 정비보강, 정돈을 수차에 언급해 현 시장경제 요소들을 정비 또는 통제를 강화할 것도 시사했습니다.
물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현실성 있게 실시, 경제 사업을 현실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진행, 인민경제계획의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높여야, 불필요한 절차와 제도를 정리 등 개혁적이고 긍정적인 표현들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계획경제와 시장의 불편한 동거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방증이라 하겠습니다.
북한주민들이 지도부를 비판하지 못해 하는 일상적인 표현이 있죠. ‘중간 간부들이 문제야.’ 과연 지금의 북한의 현실, 정말로 중간간부들 때문일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