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벽두부터 북한당국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이탈리아주재 북한대사관 조성길 대사대리가 북한과 결별하고 망명의 길을 택했다고 하는군요.
올해 44세인 그는 2015년 5월 3등서기관으로 임명돼 부인과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 왔다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정점에 달했던 2017년 10월 이탈리아당국은 북한에 항의 차원에서 당시 대사였던 문정남을 추방하기에 이릅니다.
대사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북한은 조성길을 1등서기관으로 승진시키고 그에게 대사대리직을 맡겼죠. 그런데 갑자기 지난해 9월 소환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의 직책에 김천을 임명하고 이탈리아 외교당국에 아그레망을 요청했죠.
인계인수가 막바지에 달했던 지난해 11월 초 조성길은 ‘가족들에게 이탈리아를 구경시키고 싶다. 밀라노와 베네치아 여행을 떠난다.’라는 말을 남기고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그 후 두 달 지나 올해 초 한국 언론을 통해 그가 망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미국으로 가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 장인도 모두 북한 대사를 지냈죠. 양가 모두 고려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창광거리 2계단 외무성아파트에서 살았고요.
또 처는 평양의대를 나온 의사라고 합니다. 사돈집 모두 북한 최고의 엘리트계층 집안이고 본인들도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생활수준도 최상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성길 본인은 망명 전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직도 수행했으니 북한을 버리고 떠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100%는 아니겠지만 급작스레 북한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이유는, 특히 조성길처럼 온 가족이 북한에 충성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그런 결심을 하게 될 때는 정말 죽고 사는 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일 겁니다.
경험으로 보면 평양에 있는 가족 숙청이나 큰 과오 등 대형사고가 터졌다든지, 아니면 본인에게 치명적인 정치적 실수 포함 무슨 변고가 생겼다든지 하는 것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요즘 북한외교관들이 자녀 교육 때문에, 더 좋은 사회에서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에 망명을 택한다고 하는데 평양에 있는 많은 가족, 친척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자녀 교육을 선택할까, 아직까지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을 겁니다.
2015년에 임명돼 3년 만에 소환명령을 받았으면 경제적으로도 엄청 고민이 됐을 겁니다. 순전히 경제적으로만 평가하면 북한 외교관들의 해외파견은 일정한 액수의 돈을 투자해 그 이상을 파견기간에 벌고, 또 들어가 다시 투자하고 나오는 사이클이라고 할 수 있죠.
더욱이 요즘 같은 세월에 돈을 들이지 않고 해외, 그것도 서유럽에 나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될 겁니다. 지금은 가격이 올라 한 몇 만 불씩 비용이 들겠죠. 굉장히 씁쓸할 현실이긴 하지만요.
북한에서 외교관들을 포함해 대외부문에 있는 사람들 속에 이런 말이 유행이죠. ‘평생 3탕’이 목표. 대외부문에서 일하면서 3번 해외에 파견되면 최우등생이라는 뜻입니다.
과연 북한에 최우등생 외교관들은 몇 명이나 될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