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김정은집권 제2기라고 할 수 있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북한역사상 처음으로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죠.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의원 명단에서 빠진 것입니다.
북한체제 특성상 감히 김정은 주변 간부들이 그에게 이번에는 대의원으로 선출되지 마세요 라고 조언할 수 없는 상황이죠. 그래서 아마도 김정은이 직접 인민주권의 대표, 혁명주권의 대표로 추대되기를 마다한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결정이 앞으로 북한의 통치기구와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제 판단으로는 김정은이 이번에 인민들의 생활형편, 나라의 어려운 사정을 언급하면서 조부 때부터의 필생의 소원인 ‘인민들이 이밥에 고기 국’을 먹는 날이 올 때까지 인민들의 대표로 추대되는 것을 사양했다고 판단됩니다. 선대와 차별화된 진짜로 위대한 수령의 혁명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말이죠.
올해가 김정은집권 이후 처음으로 실행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4년째이고, 내년이면 만료되는데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로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가 가해지는 조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년까지 낼 수 없는 상황도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이라 하겠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북한의 정상국가화, 3권 분립의 목적이 있다는 평가를 기준으로 하면 이후 국가수반으로서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받는 대통령선거가 있어야겠죠. 그런데 이런 선거는 북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나 대선후보로 여러 인사가 등장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3권 분립이라고 하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들 모두가 대의원으로 선출되지 말아야 겠죠. 그런데 김정은을 제외한 북한의 모든 간부들은 예외 없이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내각총리를 포함해 상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해석은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형식상으로나마 북한의 대외적 수반격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을 명실상부한 정부수반으로 인정하는 조치인데요, 그러면 국무위원회에 앞으로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겁니다. 해산 돼야 하는 거죠.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에서 역사적으로 있어보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의원이 아니면 최고인민회의에서 진행되는 국무위원회 및 내각 선출, 국가예산 승인 등에 김정은이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만약 최고영도자 자격으로 참가해도 거수기 역할을 하면 절차상 큰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오랫동안 북한체제유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원로간부들의 퇴장도 눈에 띱니다. 황병서, 최태복, 김원홍 등 여러 명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뜨는 별도 있습니다. 김여정, 최선희 등 여성파워들이죠. 대남, 대미외교, 비핵화대화의 주역들입니다.
북한에서는 꼭두각시 역할을 감자도장에 잘 비유하죠. 내용은 이미 다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도장을 찍는 요식행위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얘기입니다. 또 감자로 도장을 젤 쉽게 만들 수 있는 거죠.
북한에서 최고의 감자도장은 최고인민회의입니다. 무조건 참가해서, 무조건 찬성하고, 무조건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혹시 이런 꼭두각시놀음이 어울리지 않아 김정은이 대의원 선출을 사양한건 아니겠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