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없는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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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여러분, 이 시 구절이 생각나시나요? 일제강점기 1926년 '개벽' 6월호에 실린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아마도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시죠. 저도 학생 때 열심히 암송하고 시랑송 모임 때 엄숙한 감정을 담아 구절구절을 발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구절절에 대한 해석도 빠지지 않았죠.

시인은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서러움을 노래하며 암울했던 당시 시절, 민족 현실을 '빼앗긴 들'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어김없이 왔다면서 국토는 잠시 빼앗겼을망정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봄'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의지, 희망, 반일애국심도 드러냈습니다. 동시에 빼앗긴 들의 봄은 슬프고 서럽기도 하다는 비탄과 허무, 애탄의 감정도 표현했죠.

지금 평양에서는 13년 만에 남한 예술단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김정은 부부까지 와서 관람을 했네요. 공연의 주제는 '봄이 온다'입니다. 남북사이 긴장과 대결의 시대는 가고 화해와 협력의 봄이 드디어 온다는 뜻이죠.

공연장은 비록 선발된 조직군중에 의해 꽉 차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북한주민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관람했습니다.

선발된 이 북한주민들에게, 그리고 북한 전체 주민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네요?

'인권이 없는 들에도 봄은 오는가?'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