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밭에 나가 살았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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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얼마 전 두 차례에 걸쳐 단거리미사일 발사시험을 했죠. 2017년 마지막 발사이후 1년 5개월만입니다.

김정은이 지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실패에 대해 평가하고 올해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변화, 노선변화를 지켜볼 것이라고 발언하였지만 아마도 북한 사정상 연말까지 기다리기가 무척 고달파보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최근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나쁘기 때문입니다. 작년 작황이 10년 만에 최저라면서요. 보통 한해에 40만 톤-60만 톤 부족했는데 올해는 136만 톤 정도 부족하다니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북한 인구 하루 식량소비량이 1만 톤 정도인데 136만 톤 부족하다면 결국 연간 136일 식량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3월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에 들어가 6개 도, 12개 군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북한당국은 이미 작년부터 해외 대사관들에 식량지원을 끌어들일 데 대한 지시를 하달했죠. 그런데 이 지시집행이 대북제재로 여의치 않은가 봅니다. 유엔본부에서도 지원요청을 했으니 말이죠.

북한의 비핵화과정에 진전이 없고 또 최근 단거리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했음에도 식량지원에 대한 인도주의적 사안은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대통령도 이번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깨는 행동은 아니라고 부드럽게 반응했고, 또 남한정부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정치사안과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참 의외입니다. 대남선전매체들을 통해 남북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면서 주변 환경에 매여 선언이행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뒷전에 밀어놓고 그 무슨 계획이니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새 역사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우롱이라고 했습니다.

시시껄렁한 물물거래나 인적교류 같은 것으로 역사적인 북남선언이행을 때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북한 TV에서 농사작황이 좋은 농장에서의 농민들 인터뷰 내용이 생각나는군요. 기자가 어떤 비결로 이렇게 농사를 잘 짓게 됐는지 묻자 한 농민은 이렇게 답을 했죠. ‘딴게 없시오. 거저 밭에 나가 살았시요.’

북한식 시나리오대로라면 ‘모든 것이 다 장군님의 은덕입니다. 우리 당의 주체농법대로 하니까 그리고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이렇게 훌륭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라고 첫째도, 둘째도 공을 당과 수령에게 돌려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일밖에 모르는 근면한 농민들에게는 기자들의 유도나 회유가 통하지 않은가 봅니다.

북한에서 농민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근면한데 왜 북한은 수십 년간 식량이 부족해 있을까요? 그리고 한 동포가 사는 남쪽나라에는 왜 쌀이 남아돌고요? 인구가 2배나 많은데. 한쪽에는 먹을 것이 없어 인구의 반이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덜 먹느라고 난리가 나 있습니다.

주구장창 밭에 나가 살아가야하는 북한농민들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