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얼마 전 평양에서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비극이 벌어졌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전 남북경기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있었는데요, 사상 처음으로 무관중, 무중계, 무취재 경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남한에서 유명한 붉은악마 응원단 단 1명도 들어가지 못했고요, 심지어 실황중계는커녕 녹화중계도 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남한 선수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 평양순안공항에 3시간 넘게 잡아두었죠. 공항에 손님이 많아서가 아니라 텅텅 비웠는데 말이죠. 그리고 평양숙소에 도착해서는 가방 하나하나 모든 물건들을 다 꺼내보라고 했다나요. 양말에, 팬티 개수까지 확인하고요.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버스도 시속 70km이상은 달릴 수 있는 길이나, 어린이보호구역도 아닌데 30km로 달려 도착시간이 무려 1시간 걸렸다고 하죠. 경기 끝나고는 70-80km으로 달려 25분 만에 도착했고요. 모두들 정말 황당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 남한선수들을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주어 경기에 지장을 주려고 했겠죠.
호텔에서는 외부와 전혀 통신이 안됐고, 또 호텔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죠. 덕분에 선수들은 잠만 실컷 자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네요.
휴대폰은 아예 반입도 하지 못하고 주중 한국대사관에 모두 맡겼죠. 결국 21세기인 지금 국가대표팀 간 경기를 휴대전화 문자로 관람하는 희비극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사실 남한에서 응원단이 한명도 가지 못해 5만 명을 채울 수 있는 경기장에 북한관중만 넘쳐나 위압감을 조성하고 일방적인 응원으로 불리한 경기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관중이 단 1명도 없는 일이 벌어졌죠.
당시 상황을 축구협회 부회장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관중이 아예 없더라. 그게 더 겁났다. 이게 뭔가 싶었다. 싸늘한 분위기에 등골이 오싹하더라. 그런 곳에서 축구를 해야 했으니 선수들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실제 경기는 더 험악하게 진행됐습니다. ‘전쟁을 치르고 왔다, 다치지 않고 온 것이 가장 다행이다.’라고 할 정도로 손, 팔꿈치, 무릎 등을 쓰면서 거칠게 경기를 했다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손흥민을 마크하는 선수들은 절대로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네요. 때리든, 잡든, 밀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 왜 북한에서는 가능하고, 왜 북한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신격화된 수령의 우상화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수령이 체육강국 건설하라고 하고, 수령이 대중체육활성화에 관심을 가지고, 수령이 남한과의 축구에서 지면 안된다고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관철해야 하는 게 북한체제의 속성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거나 다치게 되죠. 수만 명 앞에서 지는 것도 싫고, 수만 명이 기립해 남한 태극기를 보며 남한애국가를 듣는 것도 수령의 권위에 해가 되고 용납이 안 된다는 거죠.
북한에는 이런 구호가 있습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이 구호를 이렇게 바꿔야겠네요. ‘당이 결심하면 뭐든지 한다.’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