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강산지구에 대한 북한 독자적인 개발, 이와 연계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완공 예정, 마식령스키장건설, 양덕군 온천관광지구건설 등 관광벨트를 목표로 한 북한당국의 건설 캠페인이 진행 중인 가운데 북한의 건설속도에 대한 우려가 또 나오고 있습니다.
동원경제, 집단주의, 캠페인,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북한에서 속도전은 경제의 생명, 집단동원의 생명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속도를 무척 강조해오고 있죠. 우리에게 익숙한 한 걸음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속도, 지금은 이것이 만리마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2016년 5월 당 제7차대회에서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아 달리는 만리마 시대를 열었다’고 언급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요, 북한선전매체는 이에 대해 ‘천리마가 남을 따라 앞서기 위한 비약의 준마였다면, 만리마는 세계를 디디고 솟구쳐 오르기 위한 과학기술 용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속도전의 원조는 건설에서 시작됐죠. ‘평양속도’가 대표적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평양을 중심으로 복구건설을 진행하면서 14분에 살림집 1대를 조립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성과를 거둔데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후 노동당은 계속해서 ‘더 빨리’, ‘더 높이’를 강조하고 요구해 왔죠.
한 예로 19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내용을 보고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달리는 천리마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새로운 천리마속도, 새로운 평양속도로 질풍같이 내달아... 당조직들은 대중의 지혜와 창조적 열의를 적극 발양시켜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속도전을 힘있게 벌여 대진군운동의 전진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
그래서 태어난 변이된 속도도 꽤 많습니다. 1950년대에 평양속도가 있었다면 1960년대는 강선속도가 있었습니다. 일명 ‘강선의 두 대 치기’로도 불리는데요, ‘천리마의 고향’ 강선제강소 철강재생산에서 기적과 같은 속도가 탄생했다는데 그 기원을 두고 있죠.
이후 70일 전투속도, 100일 전투속도, 200일 전투속도, 80년대 속도, 90년대 속도! 최근에 생겨난 것이 마식령스키장을 건설하면서 내건 마식령속도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과학자거리의 53층 주상복합아파트를 건설할 때도, 려명거리의 70층짜리 아파트를 건설할 때도 새로운 평양속도를 내세웠습니다. 70층 아파트는 74일 만에 골조공사를 끝냈다고 자랑했었죠.
북한의 이러한 속도전은 군중을 동원하고 건설에서 속도를 보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부정적인 결과도 만만치 않습니다. 과거 통일거리 건설장에서 날림식으로 건설하던 아파트가 붕괴하는가하면 평양시 평천구역에 다 건설한 인민보안성 소속 23층 아파트가 갑자기 붕괴돼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는 참사도 있었습니다.
건설에 동원된 북한주민들은 속도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까요? 요즘 이런 말이 유행이라면서요. ‘속도와 질은 거꿀비례(반비례)한다.’ 즉, 건설에서 속도를 내면 낼수록 질은 더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북한에는 이런 구호도 있죠. ‘천년을 책임지고 만년을 보증하자!’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질을 최상으로 보장하라는 의미인데, 그러려면 ‘속도와 질은 비례한다’의 새로운 함수가 필요하겠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