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북한에 사회주의를 수출한 공산주의 원조국가인 구소련의 유머를 살펴보겠습니다.
'노동자의 조국'
1934년 초, 이탈리아 공산당의 당원 하나가 소련에 연수를 가서 직접 노동하면서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고향의 친구들에게 소련에서의 생활을 정확하게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편지가 검열을 받을 건 뻔한 일이니까,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소련에서의 현실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나은 부분에 대해서는 파란 잉크로, 현실이 기존의 인식과 차이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검은 잉크로, 현실이 기존의 인식보다 열악한 부분에 대해서는 빨간 잉크로 글을 쓰기로.
얼마 후 소련으로부터 이탈리아로 편지가 왔는데, 전부 흑색 잉크로 씌어 있었다. 고향 친구들은 결론을 내렸다. 소련이라는 곳은 당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판자들이 선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모양이라고. 그런데 편지의 맨 끝에는 이런 추신이 달려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곳에서는 빨간 잉크를 살 수가 없었다네...
'기도'
한겨울, 우크라이나의 집단농장에서 한 노인이 땅바닥에 엎드려 중얼중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당 서기가 물었다.
동무, 지금 뭐 하는 거요?
예, 지금부터 좋은 날씨가 이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농사가 다 끝났는데 날씨가 좀 나빠진들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
농사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닙니다. 대서양의 날씨가 좋아야만 미국서 밀을 실어오는 배가 무사히 도착할 게 아닙니까?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꼰 유머입니다.
'배급표'
소련은 농업집단화 이후 식량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식량사정이 대단히 나빠졌나 봐. 요즘 식량배급표가 제때에 안 나오는 걸 보니. 식량사정만 나빠진 게 아니야. 배급표를 인쇄할 종이도 떨어졌대.
'행렬'
모스크바의 어느 정육점 앞. 인민들이 장사진을 치고 서 있다. 벌써 몇 시간째다. 정육점은 아예 문도 열지 않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지배인이 나오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인민 여러분.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대신 당원 동지들만 남아 주십시오.
인민들은 불평을 하면서 흩어져 가고 당원들만 남게 되자, 지배인이 말했다.
동지들, 우리들끼리니까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오늘은 고기가 없습니다.
'안테나'
고르바초프가 다른 나라의 정상과 헬기를 타고 모스크바 교외와 노동자 구역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최신식 바라크에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소련은 우리나라보다 확실히 잘 살고 있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잘 사는 사람들도 당신네 나라처럼 돼지우리에까지 텔레비전을 놓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일요일마다 외국노래, 특히 옛날 소련노래들을 정기적으로 내보낸다죠. 사회주의 원조국가도 사회주의를 버렸는데, 북한은 언제까지 수입한, 실패한 사회주의를 고수할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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