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중국주재 캐나다 대사관의 담장을 넘은 김진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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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오늘은 13살 때 북한을 탈출해 붙잡힌 뒤 강제북송, 또 다시 탈출하는 역경을 수차례 겪은 뒤 남한을 가기위해 중국주재 캐나다 대사관의 높은 담장을 넘은 김진성씨의 얘기,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김진성: 정말 무서웠어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될 수 있으면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결심을 하고 꼭 가야 된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어요.

김진성 씨는 남한에 정착한지 5년 여 정도 되어가고 있지만 지금도 베이징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 담장을 넘던 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다시 강제 북송 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게 만든 것 이라고 얘기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김진성 씨가 북한을 탈출한 사연과 외국 공관 진입을 하게 된 부분까지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 처음 들으시는 분들을 위해 김진성 씨의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넘나든 얘기를 먼저 간단하게 소개해드리죠. 가명의 김진성 씨는 13살 때 먼저 중국 으로 탈출한 어머니와 누나를 찾아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중국 땅에 발을 드려놓자 무서운 생각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가 또 다시 탈출합니다. 1년 만에 중국에서 강제 북송을 당했지만 나이가 어려 꽃제비 보호소에 있다 그곳을 탈출해 또 다시 중국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는 2002년 당시 탈북자들이 베이징 주재 여러 나라 대사관으로 뛰어드는 사건을 보고 자신도 대사관 진입을 결심하고 동생 벌 되는 다른 탈북자와 함께 한국대사관 으로 진입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대사관 진입을 위해 흔히 탈북자들은 비정부 기구나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김진성 씨는 아무런 도움 없이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선뜻 캐나다 대사관 앞길에서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대사관이 낯이 익어 한국 대사관을 찾아다가 캐나다 대사관에서 무작정 내렸다는 것입니다.

김진성: 주변에 캐나다 대사관 말고 또 다른 대사관이 있었어요. 어느 대사관인지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둘러보니 경비가 너무 심하더라구요. 각 모퉁이 마다 공안들이 서 있었고 도로 주변이라 항상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 포기 했었어요.

두 탈북자들은 대사관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진성: 캐나다 대사관을 둘러보기 위해 네 번 정도를 돌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경찰밖에 없어 진입할 수 없고 담장은 내 키에 훨씬 넘고 뭐 어떻게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쩌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 마지막으로 한 바퀴만 더 돌아보자하고 같이 중국에서 지내던 동생하고 마지막 한 바퀴를 도는 순간에 진입로를 발견했어요.

진입로는 바로 높은 담장에 둘러쳐진 철조망 틈새였습니다.

김진성: 담장 위 철조망이 있었는데 그 철조망이 일 열로 연결되었다 끊어진 부분이 있었어요. 그 부분에 틈이 좀 있었는데 그 틈새로 들어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워낙 담장이 높아 이 곳을 오르는 데 실패하고 다른 방법으로 다시담장 넘기를 시도 했습니다.

김진성: 담장이 커서 혼자 올라 갈 수는 없겠지만 무슨 도구를 이용해서 올라가면 가능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다니다 각목을 하나 주었어요. 1미터 정도 되는 각목을 주어서 그것으로 올라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것으로 안 되었어요.

각목을 디디고 올라갔다 실패해서 두 번째 다른 방법으로 다시 담장 넘어 진입을 시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쇠창살 틈새였습니다.

김진성: 대사관 밑에 참나무 밭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속에 들어가면 안보여서 벨트를 풀어서 쇠살창에 걸어서 그것을 잡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쇠살창이 비좁고 사람이 위협을 느낄 만큼 만들어 놓아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어요.

이것마저 어렵게 되자 두 사람 모두가 함께 진입하지 않고 한사람씩 행동하기로 하고 김진성씨가 먼저 동생을 디딤돌로 이용해 담장에 올랐습니다.

김진성: 서로가 엎드리면 밟고 올라가자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동생을 밟고 담장을 먼저 올라갔어요. 그런데 담장에 올라 갈 때는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니고 있었고 그 옆에는 다른 대사관이 있어 경찰들이 많이 있었는데 길가에 심겨진 나무들 때문에 잘 보이지가 않았어요.

담장을 올라가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담장에서 대사관 안으로 내려설 일이 아득했습니다. 유난히 높은 대사관 담장을 어떻게 내려올지....

김진성: 담장을 뛰어 내리려 생각하니까 담장 높이가 3미터가 더 될 것 같아요 뛰어 내리려니까 다칠 것 같아 무서워 못 뛰어 내리고 10미터 정도 담장 위를 엎드려 기어가면서 담장 옆에 있는 나무를 잡고 내렸어요 그때가 6월에 저녘 8시 경 이었어요. 약간 어두울 때였어요.

(기자) 그러면 그 동생은 어떻게 되었어요?김진성: 그 동생은 나중에 자기가 알아서 들어왔어요. 용케 자기가 해가지고 결국 들어왔어요.

그는 일단 대사가 있을 만 한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8시 경이긴 했지만 대사관에 그 시간까지 누구인가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살내 진입까지 성공을 합니다.

김진성: 대사가 있을 만한 곳으로 찾아 들어갔는데 그곳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문이 어디에 있는지 못 찾았어요. 그래서 엎드려 헤매다 겨우 문을 찾아 문 있는 쪽으로 들어가니까 한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중국말도 잘 모르고 영어도 못 하니까 그냥 무릎 꿇고 빌었죠. 살려달라고... 영어로 HELP ME 하고 막 외쳤어요.

(기자) 그 사람 반응은 어땠어요? 김진성: 저를 보더니... 놀라서 나는 목소리 같기도 했고 화가 난 목소리 같기도 했어요. 어떤 조그만 아이가 들어와서 무릎 꿇고 빌고 있으니까 난감 했을 것 같아요.

(기자) 중국 공안을 부르지는 않았어요?김진성: 나중에 공안 한명을 데려 왔어요. 그래서 저는 다시 잡아 내가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워서 뒷걸음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김진성 씨는 지금도 당시 캐나다 대사관에서 탈북자인 자신을 보살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 합니다.

김진성: 따라 갔더니 대사관에서 잘 보호해 주셨어요. 어느 방으로 들어가서 식사는 배달해 주었고 샤워장에도 데려가고 불편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약 15일 정도 있었어요.

그 후 북경에 있는 한국 대사관과도 연락이 닿았고 여러 가지 조사를 받고 나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김진성: 한국대사가 와서 북한에서 왔느냐 어느 나라에 가고 싶으냐..등의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6월8일에 진입해 6월24일 한국에 도착했으니까 제가 할 수 없는 일 이었는데 누군가가 도와 준 것 같아요.

누군가 도와준 것 같은 생각은 김진성씨 전에 탈북자들이 두 번인가 캐나다 대사관 진입 사건이 있었기에 경비가 강화된 상황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진성: 제 앞으로 두 팀이 캐나다 대사관으로 두 팀이 들어간 것 같아요.

(기자) 그런데도 경비가 철저하지 않았나요?김진성: 철저했어요. 철저했는데도 제가 틈을 타고 진입 했던 겁니다.

17살 때 일입니다.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중국의 모든 탈북자들은 남한이나 자유세계로 꼭 가야한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진성: 많은 분들이 한국으로 오려고 하는데 한국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고 잡힐 수도 있는 상황인데 거기서(중국) 인터넷에 들어가서 그런 사이트로 알아가지고 들어가시고 편지를 보내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김진성 씨는 아무 도움 없이 캐나다 대사관 진입을 해보니 아주 위험했다며 탈북자 들은 돕는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볼 것을 권유합니다. 김 진성 씨는 이번에 남한 대학생으로 미국에서 탈북자를 돕는 한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 여행길에 자유아시아 방송도 방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