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예술인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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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우리가 남북한의 엘리트에 대해 알아본지 석 달이 다 되었는데요. 저는 ‘북한의 엘리트’하면 가장 먼저 가수나 배우들 즉 예술인들이 떠오릅니다. 외부세계에 가장 잘 드러나는 사람들 같고요. 북한에서 특히 예술인들을 국가적으로 양성하는데 비중을 크게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거든요.

신용건: 네. 북한은 선전선동을 기본으로 정치를 주도한다고 봐야 합니다. 흔히 김일성 때는 물론이고 김정일 집권시기에도 노래로 정책을 표현했습니다. 북한의 정세는 TV에서 나오는 노래를 보면 알아요.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붉은 노래이기 때문에 그들의 심장이 붉지 않고서는 절대로 충신으로부터 노래가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그들이 갖춰야 할 사상적인 문제들에 큰 힘을 부여해서 양성하는 겁니다.

이승재: 그만큼 예술인들이 북한의 정책사업에 있어 중요하군요. 그래서 북한에서 엘리트를 논할 때 예술인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은데요. 북한에선 예술인도 어려서부터 특별하게 선발되어 교육 받고 있다면서요?

신용건: 선발은 재능에 의해서 선발됩니다. 성악을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반면 악기분야는 재능이라기 보다 부모가 지향하는대로 선발됩니다. 김정은 집권1기에 그가 경상유치원을 많이 찾지 않았습니까? 경상유치원의 위치부터가 평양 중구역에 있어요. 중앙당 엘리트 간부급의 손주 세대에 속하는, 그런 엘리트급의 자손들이 다닐 수 있거든요. 경상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 보면 벌써 할아버지 세대부터 애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들어온 아이들입니다. 일반인들이 거기 가 있지 않아요.

이승재: 남한과 많은 게 다르지만 예술인 양성 부분에서도 남과 북이 참 많이 다르네요. 사실 요즘 북한에서도 남한 드라마나 노래들을 꽤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예술이, 특히 드라마, 영화, 노래가 큰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결국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예술인들이 어려서부터 다 관련 교육을 받고 훈련된 건 아니거든요. 개인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이뤄낸 자신의 성과일 뿐이죠. 그런데 북한은 이 영역 자체를 완전히 국가가 기획하는 거군요.

신용건: 네. 북한의 경상유치원은 전문적으로, 어린시절의 제일 기초적인 예술분야 양성기관입니다. 이 경상유치원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금성학원에도 가고 예술학원에도 가고요. 거길 졸업하면 예술대학에도 들어가고 이렇게 체계적으로 양성됩니다. 전국적으로는 1년에 한 번씩 전국 어린이들의 예술축전을 가집니다. 이 축전엔 전국 유치원이 다 참가할 수 있어요. 여기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어린이들이 차출됩니다. 물론 거기에 재정이 깔려야 해요. 부모들의 재정이 깔리지 못하면 아무리 특출한 재간을 가진 아이도 그것을 꽃피울 수 없습니다.

이승재: 신분도 좋아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네요.

신용건: 네. 유치원을 졸업하면 매 도마다 예술학원이 있어요. 예술학원이 도급 수준에서 예술인재 양성기관이고 중앙급에서는 금성학원이 기본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금성학원에서 북한 엘리트급 예술인들이 많이 나왔어요. 특히 성악 부문…

이승재: 한국에 현재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리설주, 현송월인데요. 이런 사람들이 바로 그런 엘리트 교육을 받은 경우죠?

신용건: 네. 맞습니다. 리설주, 현송월은 다 금성학원 성악반 출신입니다.

이승재: 북한에선 가장 성공한 예술인들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남한에 잘 알려진 북한의 엘리트급 예술인들 중에는 비운을 맞은 경우도 많더라고요.

신용건: 네. 맞습니다. 북한에서 기본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예술인들은 보천보전자악단이 시작입니다. 1980년대 말 보천보전자악단이 김정일을 위해서 생겨났고 왕재산경음악단도 함께 생겨났어요. 북한에서 예술 엘리트급 인물들의 운명선을 보면 좀 바르지 못합니다. 가인박명이라는 말처럼 뛰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이 순탄치 않은 운명을 겪듯이, 북한에서 예술 엘리트급 특히 성악 엘리트급의 운명은 나날이 가면서 순탄치 않아요.

이승재: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러는 거죠?

신용건: 네. 맞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도 다 매장되었다가 김정은 시대에 다시 이들의 생사여부가 TV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왕재산경음악단도 다 초토화됐고요. 염청이나 리분희, 김경희, 김강숙 등 세계적으로 관록있는 배우라고 이름났던 초창기 배우들은 다 매몰됐던 겁니다. 그러다가 2010년에 명예회복 형태로 진행됐죠. 그 후엔 은하수관현악단이 나왔어요. 이 은하수관현악단은 다 아시다시피 매몰정도가 아니라 총살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국민들이 예술인들의 이름을 알고 마음속에 자리잡기 전에 배우들이 다 바뀝니다. 이후에 모란봉악단이 생기고 3~4년 동안 승승장구하다가 또 다 없어지면서 청봉악단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자꾸, 김정은 일가나 최고 엘리트 급과의 사적, 공적 인간관계, 또 정치에 예술인들이 너무 많이 얽히다보니까 그들의 운명선이 자꾸 큰 파동을 겪는 겁니다. 우리도 모르고 북한 일반주민들도 모르게요. 그러니 국민급 가수가 될 정도로 연륜과 경륜을 쌓으며 인민들의 마음에 자리매김을 하는 배우나 가수들이 현재는 적습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남한은 잘 나가던 가수도 갑자기 실력이 좀 떨어졌다거나 하면 대중들이 금방 눈치챕니다. 그래서 그들이 꾸준히 자기 개발을 하는 것만도 정말 어려운 일이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북한의 예술인들은 실력에 의해서 대중에게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숙청과 회복을 반복하는 것이군요. 앞으로의 운명이 어찌될 지도 모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에서 이들을 엘리트로 여기는 이유는 뭘까요?

신용건: 첫째로 김정은에게 가깝게 접근하고 그들의 관심 속에서 살거든요. 엘리트 층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엘리트라는 감정이 생기는 겁니다. 정말로 엘리트라면 그 과정이 있고 경륜이 있어야 되잖아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국민가수가 되려면 그만한 노력이 들어가야 하고 인지도가 상승함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온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매김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선 같은 교육을 받고 그만큼 기량이 된다고 해도 어느 갈래의 어떤 예술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들 운명은 엘리트급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엘리트가 아닌 숨은 예술가도 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름도 모르죠.

이승재: 네. 북한의 예술인들에 대해서, 저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엘리트로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다른 세상의 예술 엘리트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진정한 엘리트라고 평가 받는 세계의 예술인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