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꿀 수 없는 북한의 여성들

평양의 대형마트 '광복지구상업중심'은 직장 일로 바쁜 여성들을 위해 '아침저녁 매대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가공 음식을 고르고 있는 북한 여성들의 모습.
평양의 대형마트 '광복지구상업중심'은 직장 일로 바쁜 여성들을 위해 '아침저녁 매대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가공 음식을 고르고 있는 북한 여성들의 모습. (연합)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오늘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엘리트 중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선진국이라고 손꼽히는 국가들을 살펴보면요. 여성들의 사회활동에는 제약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들도 꽤 있었죠. 퇴임을 앞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국민의 큰 지지와 사랑으로 3번이나 연임을 해서 15년 이상 총리직을 맡았을 정도인데요. 선생님도 한국에 와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신용건: 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하면 먼 데서 찾을 게 없죠. 잘하던 못하던, 여성이 대통령까지 됐다는 것이 바로 놀라운 현실이 아닙니까? 저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 모두가 한국에서 여성이 대통령을 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또 제가 하나원에 있을 때 코로나19가 발생했는데 매일 뉴스에 질병관리청 정은경 본부장님이 출연하는 겁니다.

이승재: 지금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되셨죠.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상황을 전담하면서 시시각각으로 티비를 통해 국민들에게 상황전달을 해주셨어요.

신용건: 네. 일반 출연이 아니라 일을 하는 거였죠. 제가 하나원에서 듣기론 이분이 과거 사스 위기 때도 방역에 관해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더군요. 시시각각으로 전 국민이 전염병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분투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명인이라고 말씀들을 하던데 전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 여성들의 당당한 사회적 역할이었어요.

이승재: 맞습니다. 이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능력있는 여성들이 이렇게 사회 각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가 탈북민들을 보면, 북한 여성들도 명석하고 능력있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신용건: 북한은 노상 여성들이 사회생활 모든 분야에서 존엄 높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선전합니다. 먹고픈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가고픈 데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데, 과연 어떤 존엄을 보장해 준다는 건지 묻고 싶어요. 북한이 말하는 여성들의 존엄은 거꾸로 한국에서 구현되었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드는 겁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여성들의 존엄이라는 것엔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언제든 하고 가진 능력과 재주를 마음껏 펼치는 것일 텐데요. 한국에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이렇게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가사활동 참여율도 높아졌습니다. 제가 사회생활하며 만나는 40, 50대 선배들은 80, 90년대생 남자들이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것을 보면 “우리 땐 그 정도까지 안했는데…” 그러면서 많이 놀랍니다. 그런데 탈북 남성들은 더 놀라는 것 같아요.

신용건: 놀랄 정도가 아니라 정말 깜짝 놀랐어요. 흔히 북한 사람들은 중국 남자들을 보고 머저리라고 말하곤 합니다. 북한에 중국영화가 합법적으로 전파된 것은 역사가 깊거든요. 그것을 보면 중국남자들이 흔히 여성들에게 설설 기기 때문입니다. 그 모양을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북한 남성은 물론 여성들도 같이 중국 남성들을 경시하는 겁니다. 그만큼 북한 사회에 가부장적인 문화뿌리가 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70년 전에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이 수행되었다지만 북한의 봉건적 울타리는 아직도 여성들을 보이지 않게 속박합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에서 논하는 여성들의 ‘권리’는 남한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봐요.

이승재: 권리가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요?

신용건: 사례를 들어보면 북한 여성들의 권리를 논할 때 제일 크게 떠드는 것이 여성들이 자식 많이 낳아 키우는 것을 국가가 적극 장려하는 나라라는 겁니다. 꼭 빼놓지 않습니다. 자식을 낳든 말든, 낳아라 낳지 말라 훈시한다는 것 자체가 권리 침해죠.

이승재: 말씀 들어보면 저희는 강요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북한에서는 권리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 같네요. 네.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문제기는 하죠. 한국에서도 사실 꽤 오랫동안 최고의 여성상 하면 현모양처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 2009년 한국에서 5만원권 화폐를 처음 발행했을 때,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란도 일었습니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이 많은데 왜,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이냐는 거였죠. 지금 훌륭한 여성 하면 현모양처를 꼽지는 않으니까요. 이렇듯 북한에서 ‘여성’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있지 않을까요?

신용건: 북한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생활력은 강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교육 수준이 대단히 낮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정치나 사회 전 영역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간부욕, 출세욕을 가진 여성들은 정말 특이한 여성들이에요. 토대, 가문이 특이한 경우나 감히 꿈꿔보지 나머지 여성들은 꿈꾸지 않습니다.

이승재: 제가 바깥에서 북한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좀 아쉬운 것은 늘 들리는 이름이 계속 들린다는 거예요. ‘여성’하면 늘 자동적으로 김정숙이란 이름이 반사되어 튀어나오는 느낌?

신용건: 네. 북에서 ‘여성’ 하면 기껏해야 김정숙이 판에 박힌 우상화 대상입니다. ‘김일성이 그렇게 세기적인 위인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김정숙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커플처럼 되어있어요. 이게 기껏해야 북한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지금 북한의 여성 엘리트라면 다 아시다시피 리설주나 현송월이나 또 북미회담을 주관했던 최선희 이런 엘리트들이 있는데요. 이런 여성 엘리트의 배경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승재: 최고지도자와의 연관성 말고는 여성이 엘리트 되기가 어렵단 말씀이군요. 남한에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한때 여성이 대통령이 된 적도 있었고요. 정치적인 부분에서 본다면 4월에 서울시장 선거가 있는데요. 북한 분들이 아실 지 모르겠지만 남한에서 국회의원을 오래한 나경원 의원, 박영선 의원 등등 그 외에도 다수의 여성들이 지금 시장후보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여성이 정치를 하고 행정기관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에요. 북한에도 여성 간부 엘리트가 있는데 이분들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요?

신용건: 북한이 논하는 여성들의 권리를 보면요. 정치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한다고 되어있는데요. 사례를 본다면 국사를 논하는 최고인민회의에 여성들이 참여합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저는 ‘참여’가 아니라 ‘참가’라고 봅니다. 방청객으로 참가해서 꼭두각시처럼 무조건 찬성표를 들어야 하는 것이 여성들의 정치참여거든요. 북한 체제에서 여성의 권리를 선전화하기 위한 여성 간부 프로(%) 수가 있습니다. ‘모든 정치 기관, 정권 기관, 권력 기관, 당 기관에 여성 간부대열을 15%로 보장하라’ 그러니 이 제정된 작은 대열 안에 끼어 들자면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성들이 당초에 간부의 꿈, 엘리트의 꿈을 꾼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실제 엘리트로서 어느 작은 공장기업소 지배인이라도 되었다면 사회적으로는 대단하다고 보는 겁니다.

이승재: 네. 여성들이 마음껏 꿈을 꾸고 능력을 펼칠 수 없다는 현실에 솔직히 안타까운 맘도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지금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여성 엘리트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