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파견 엘리트의 탈북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리대사.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리대사. (사진-CNN 방송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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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2019년에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얼마 전 미국의 CNN 방송에 출연했는데요. 그가 탈북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10대인 딸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해외 파견된 북한의 당성 높은 간부와 그 가족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죠.

신용건: 북한에서는 이런 소식을 많이 접하지 못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엘리트급 대사가 탈북했던 외교관이 탈북했던 일부 사람들만 알게 됩니다. 그러다가 선전이라는 목적이 있을 때, 그 내용을 왜곡되고 다르게 꾸며서 이용할 뿐이고요. 한국에 와서야 탈북한 북한 엘리트급을 보게 됐습니다. 며칠 전에 CNN보도도 제가 봤습니다. 김정은의 핵문제를 가지고 그분이 말씀을 하셨고 이번 당8차 대회를 가지고도 분석을 하셨더군요. 같은 당일꾼이라고 해도 같은 지배계급이라고 해도 해외생활하는 사람들은 정말 엘리트 급입니다. 한국와서 태영호, 장승길 씨를 봤고 그보다도 앞서 황장엽 선생의 탈북이 가장 큰 엘리트의 탈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분들이 서술한 책도 보게 되면서, 북한에서 나도 몰랐던 세계가 너무 많고, 북한 내부 주민들조차 모르고 있고, 외부인들은 얼마나 북한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까 생각도 해봤고요.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승재: 남한과 북한에서의 엘리트에 대한 개념이 좀 많이 다르다는 걸 매주 이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되는데요. 자신의 능력으로 엘리트가 될 수 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선 출신성분이 좋고 당성이 투철한 간부들만이 엘리트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엘리트라면 해외에 파견됐다가 북한으로 돌아가도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이런 분들이 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많이 탈북을 할까요?

신용건: 네. 탈북민 3만 5천 명이나 된다고 해도 그들 모두의 탈북 동기가 대동소이하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해외생활하는 엘리트급의 탈북 역시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주민들 자체도 그들의 탈북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 한다는 것이죠. 만약 황장엽, 태영호가 탈북한 것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됐다면 그들의 탈북에 대해서 공감하거나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앞세우게 됩니다. ‘과연 모자란 것이 없는 사람이 왜 탈북한 걸까?’ 물론 봉우리 위에 올라서면 더 높은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겠죠. 그분들이 해외생활을 하면서 보고 느낀 만큼 추구하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행동을 하는 거죠. 그들은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대조국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년간의 해외생활을 통해 대조적인 두 사회를 직접 체험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좋고 나쁨을 인식하게 되고, 남은 여생을 놓고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미 인식은 했지만 말과 행동은 다르게 해야하는 모순에 빠져서 심리적으로는 늘 안정치 못했을 겁니다. 더군다나 당성이 투철하다는 말은 북한에서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당성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혁명에 동참해야 하는 겁니다. 이상이나 이념적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 혁명에 임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느끼고 있는 분들 중에서, 그에 따른 행보가 결국 탈북으로 이어진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어떤 북한주민보다 큰 위험을 무릅쓰고 탈북한 해외 파견 엘리트들, 그 여러가지 이유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게 바로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부분이었거든요. 1990년대 미국에 망명한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의 아들은 북한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한국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일도 있어요. 이에 대한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신용건: 네. 제가 어느 책에선가 이런 내용을 본 기억이 납니다. 입국하라는 당 지시가 떨어졌는데 공부하던 자녀가 한국대사관 자녀들과 한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서 한국 대사관과 연결이 됐다고 하더군요. 그런 수기 비슷한 책을 봤는데 이분 책인가 봅니다. 탈북의 여러 동기들이 있는데요.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먹기 힘들어서 탈북한 유형이 많았잖아요? 현재는 먹기힘들다는 이유는 적어요. 탈북하는 주민들의 인식이나 해외생활을 하는 엘리트급의 인식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나는 이만큼 살았으니까 이만큼 향유해봤고 이 정도에서 살아야 얼마나 살겠는가’라는 것이 부모들 입장이라면 그 다음에 제일 암담한 것이 자식들의 미래입니다. 부모들이 더 많이 알고 세계를 더 많이 내다보고 사회를 더 많이 인식할 수록 자녀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남보다 더 강해요.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나와 다년간 해외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자기가 그만한 위치까지 올라왔다면 정말로 더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 위치를 차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 대를 생각해 볼 때 자기와 같은 엘리트급까지 무난히 올라서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자식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해외 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꿀물을 먹어보고 지저분한 물을 마시겠다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녀들은 대놓고 호소하는 거예요. ‘사상과 종교는 둘째치고 안 가면 안 되겠느냐, 여기가 더 좋지 않느냐’ 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흔들리는 것이 부모고 또 흔들려야 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겐 자기가 힘과 기회가 있을 때 자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최대의 책임은 바로 탈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에 대해서 저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승재: 듣고 보니 이해가 가네요. 그럼 해외체류하는 엘리트들의 복귀 거부라던가, 유학생 엘리트들의 탈북이 북한 사회에 주는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신용건: 상대적으로 유학생이나 해외생활 엘리트들은 대단히 적다고 봐야 합니다. 그 몇몇이 탈북한다고 북한이라는 큰 집이 영향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북한 정권이 아직도 건재하는 이유는 자기에게 차려진 믿음과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으로써, 삶의 부를 성취하려는 엘리트들의 필사적인 사투가 그대로 충성으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독재가 존재하고 영수와 공생할 때만이 이뤄질 수 있는 게 엘리트들의 삶이고 야욕입니다. 최고의 엘리트라고 하면 황장엽 선생을 들 수 있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그 이상의 엘리트가 탈북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큰 엘리트가 탈북하였지만 북한 주민들에겐 배신자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무 배부르니까 못된 장난만 치다가 도주하는 것이라고 의문시하고 욕을 합니다. 탈북 엘리트를 반역자라고 선전하는 북한의 선전이 일반 주민들에게 잘 먹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일반 주민들의 탈북에 비해 볼 때 엘리트들의 탈북은 오히려 북한 주민들에게 역설적으로 전달됩니다. ‘저들은 우리의 피땀을 짜서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왜 갔을까?’ 일반 주민들의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겁니다.

이승재: 외부에서 북한 엘리트의 탈북을 바라보면 체제에 대한 불만과 고통을 벗어나려는 노력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진자들의 더 갖고 싶은 욕망처럼 보인다는 점, 그래서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역설처럼 느껴지네요.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