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세계가 지금 미얀마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선 버마라고 하죠. 올해 2월 1일부터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겁니다.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지금 민주화를 위한 비폭력 시위에 나섰지만, 군부가 현재 굉장히 폭력적으로 진압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선생님, 자유의 세상에 나와 민주화를 위한 시민항쟁을 직접 본다는 것이 남다를 것 같아요.
신용건: 일단 충격적이었습니다. 슬프기도 하면서 첫째는 ‘시위도 일어날 수 있구나’ 부러웠어요. 아무리 독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미얀마 정부를 타고 앉았다지만, 북한 실정과 비교해보면 ‘아! 저렇게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자유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목숨까지도 내거는 자유, 그런 자유까지도 무시당하는, 그야말로 독재 이상의 국가가 북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좀 암담했습니다.
이승재: 안그래도 여쭤보고 싶었어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왜 북한에선 정권을 반대하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까. 목숨 건 투쟁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선생님도 이런 말 여러번 들으셨잖아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북한은 그럴 수도 없는 구조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신용건: 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삼권분립이 초보적 상식입니다. 결국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미얀마 정부와 군부간의 권력 분할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제어하거나, 쿠데타로 억누르거나, 탄핵시키는, 이런 행위들이 진행될 수 있는 거죠. 북한의 권력구조는 분립이 없어요. 정치, 경제, 모든 권력과 법이 영수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철저한 독재가 보장될 수 있는 곳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제 반항심이 주민들이나 사회심리 속에 만연되어 있지 않습니다.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억압을 받았어요. 총칼로 다스리는 독재가 아니라 정말 감람나무 잎을 휘두르는 아름답게 가공된 독재입니다. 오랫동안 수긍하며 살아온 북한 사회 심리가 반발, 반항이 되기까지 아직은 좀 맹아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승재: 그래서 북한에선 잘못된 것에 대한 저항의식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긴데요. 반면에 미얀마 시민들은 절대적으로 독재의 부당성과 지금 폭력진압의 잔인성을 세계에 알리고 지속적으로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이 바로 청년들, 즉 손전화 인터넷, SNS가 가능한 세대들입니다. 저도 미얀마의 한 청년이 유창한 한국어로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을 전하는 걸 봤는데요. 선생님도 미얀마 청년들의 움직임을 보셨죠?
신용건: 역시 집단적인, 군중적인 행위나 투쟁이 일어나자면 결속도 되어야 하고 중축이 되는 인물이나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중추적인 역할, 미얀마 청년들이 사회발전의 엘리트적 역할을 맡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수단이 손전화나 인터넷, SNS라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은 여기 맞는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단 인터넷, SNS가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국제사회가 내부를 전혀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청년들이 그 어떠한 활동을 해도 국제사회가 호응해주지 못합니다. 설령 미얀마 청년들 같은 투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제사회와의 연대성이 되어 더 큰 불길로 타오르기까진 힘들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승재: 기본적으로 북한의 청년층이 독재정권에 반발할 수 없는 사회구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럼에도 흔치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일들이 있었죠?
신용건: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전국적으로 특대형 사건들이 많이 제기됐습니다. 그 중에 한 사례를 보면요.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부터 산골이라 할 수 있는 지방 어디에서, 20여 명 청년들이 규합돼서 조직 체계를 다 세웠어요. ‘김정일이 어느 순간엔 죽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죽으면 그땐 우리 사회를 향해서 돌진할 것이다’ 이렇게 자기네 딴엔 타이밍을 잡고 기다렸습니다. 김정일이 뜻밖에 상상보다 좀 빨리 사망하였습니다. 부고가 나자마자 ‘때가 왔다. 내일 새벽6시까지 다 모이라’ 그런데요. 모이자 마자 다 체포됐어요.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는 우국지사처럼 큰 소리를 쳤는데 실제로 김정일 사망하고 모이라는 지령이 떨어지니까 심장이 오들오들 떨리는 청년이 더 많은 거예요. 그래서 부모들에게 터놓은 겁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또 어느 정도인가? 자식을 손목을 잡고 보위부에 가서 자수 시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북한의 현실이에요. 그런데 자수하고 보니까 20명 중에 30%가 자수하러 간 거죠. 실제로 보위부는 지켜보고 있었어요. 분명히 그 조직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자수한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결국 청년들은 그때 ‘내가 자수하길 잘했구나’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편집물로 만들어서 선전용 영화를 만들어 필요한 단위들에 배포하고 교육을 합니다. 보위 일꾼에게 참고자료처럼 만들기도 하고요. 그 사례를 볼 때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직 북한 청년들의 의식과 결속이 맹아적이고 아직은 질적인 결집이 되지 못한다. 왜, 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나 이념에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욕망에 휘둘려서 결속이 됐던 것이거든요. 그러니 정확한 노선이 없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언제… 이런 게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애들 장난, 장난인데 좀 심한 장난 정도로 평가될 만큼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반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승재: 그게 어떤 식으로든 성공했다면 역사적으로 다른 평가를 받았을 텐데 결국 애들 장난으로 평가받았다는 게 참 씁쓸하네요. 다만 요즘 북한 젊은이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장마당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익힌 세대들은 북한 정부의 계속된 규제와 간섭에 불만이 크다고 하던데요.
신용건: 일단 사회 기본층이 2030 세대가 아닙니까. 저도 2030세대가 이제 주력이 될 때 정말 큰 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일반적인 기원이고요. 청년들이 주력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17살에 학교 졸업하면서 맹인이 아니라면 100% 군대에 나가야 되거든요. 사회에 남아있는 청년들이 거의 없습니다. 또 청년 운동은 대학가가 기본 아닙니까? 그런데 대학구성을 보면 직통생이라고 하는 18세 정도의 입학생들이 15%밖에 안됩니다 나머지는 다 제대군인들이에요. 군대 내에서도 핵심인물이었고 당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35세 전까지 대학가에 머무니, 대학의 주력이 당원이 되고 말아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재 그렇고, 그런 와중에도 북한 청년들이라고 생각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청춘의 힘과 끓는 가슴을 가지고 반발해 보고픈 마음은 있습니다.
이승재: 열정과 패기가 가득해야 할 젊음의 순간을 군대에서 보내야만 하는 북한의 청년들, 전 세계 역사에서 변혁의 중심엔 청년들이 있었고 청년들은 새로운 사회의 엘리트가 되어 세상을 이끈 것과는 다른 모습인데요. 북한의 청년 엘리트들이 세상에서 주목받는 날들을 기대해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