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조현: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노동신문을 보면 요즘 들어 북한이 계속 과학을 강조합니다. “5개년계획수행의 첫 해를 과학으로”, “과학기술의 번영이 초석원-동력”, “과학농사제일주의 앞세우자”... 과학자라는 직업은 세계 대부분에서 엘리트라고 인정받는 직업인데요. 북한 사회도 비록 대접이 후하진 않지만, 국가 번영에 있어 과학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현: 네. 맞습니다. 북한의 과학 이야기는 해방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해오던 이야기입니다. 1960~70년대는 ‘기술혁신’을 계속 강조했거든요. 그러다 최근 들어와선 ‘과학’이란 말로 첨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술혁신’을 강조할 때는 그나마 자재나, 주변에 있는 것들 가져다 뭔가 만들어내고 혁신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죠.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려 해도 물질적 조건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보장되지 않아서요. 과학기술이 강조되고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이게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대로 계속 과학을 강조하다 보면 과학자들의 역할도 좀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승재: 북한 과학자들은 본인이 원하는 주제가 아니라 국가가 필요한 연구만 해야 하고, 그 주제는 대부분 인민들이 자력갱생으로 살게 하는 방법들이라고, 지난주에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그동안 인민생활의 질을 알게 모르게 향상시켰을 거예요.
조현: 네. 정말 많죠. 경제난 들어서면서 북한의 전체 주민들이 식량난과 질병으로 엄청 고생했는데, 제일 많이 인민생활에 도움주고 있는 것이 인조고기입니다. 인조고기 만드는 기술은 콩에서 기름을 빼고 대두박이라고 하는 것을 프레스로 밀어서 식품으로 이용하는 건데요. 대두박에 일정 정도의 단백질이 있기 때문에 주민들 단백질 공급에도 상당한 정도로 도움을 줬습니다.
이승재: 과학자들이 만든 음식이군요. 고기를 먹을 수 없어 만들어진 음식인데 이젠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어요. 고기를 자주 먹는 탈북민들도 고향의 맛으로 인조고기 먹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조현: 네. 맞습니다. 또 다음으론 국가과학원 미생물연구소에서 어떤 학자가 항암제를 발명했어요. 이게 약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예방하거나 일정 정도의 암 진행을 막을 수 있고 위, 간, 대장 쪽에 상당한 정도로 항암효과를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엔 변압기가 있습니다. 국가과학원 연구사들과 약전전문가들이 같이 만들어낸 건데요. 북한의 전력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열약합니다. 전압도 원래 220V가 들어와야 하는데 100V도 안 들어오고 전류 자체도 60Hz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약 30~40Hz밖에 보장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들어오는 전기를 변압기에 연결시키면 텔레비전이나 냉동기도 돌아가고 조명도 좀더 밝게 볼 수 있어요. 지금 북한의 웬만한 가정에는 변압기 한두 대 쯤은 다 갖고 있고요. 또 변압기 자체를 자동화할 수 있도록 반도체를 도입해서 상당한 정도로 변압기 질을 높였습니다. 생활에 많이 도움을 주고 있어요.
이승재: 그렇군요. 한국에선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힘든데요. 저는 북한을 생각할 때 전기보다 더 염려되는 것이 추운 것 있잖아요. 그게 가장 걱정되더라고요.
조현: 네. 평양에선 원래 주택 자체 난방이 거의 안 되고요. 특히 중심지역 같은 데는 평양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수를 돌려서 가지고 난방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난방연구소 과학자들이 자그마한 연탄불 가지고 온수를 제작해서 그 온수를 방안에 돌려 자체로 난방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해서, 이게 굉장한 도움을 줬습니다. 이 기술이 평양뿐만 아니라 청진이나 함흥까지 전해져 상당히 큰 도움이 됐고요.
이승재: 지금 말씀하신 건 한국에서 1970년대~80년대 많이 썼던 연탄보일러와 같은 원리네요.
조현: 네. 그렇습니다.
이승재: 지금 한국에선 연탄보일러 사용하는 집은 거의 없을 것 같고요. 가스를 이용한 보일러나, 요즘은 전기보일러도 많이 쓰는 추세죠. 어쨌든 국가가 시킨 연구는 아니었지만 과학자들이 직접 난방수를 데우는 보일러 기술을 개발해서 인민들에게 보급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해 보이는데요. 사실 이게 당연한 연구인데 북한사회에선 이를 불법으로 여기는게 문제거든요.
조현: 예.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이런 개인적인 연구는 불법으로 되어 있고, 심한 경우에는 처벌까지 받는 사례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 와 보니 한국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일단 연구과제를 자기가 선택할 수 있고요. 세계, 미국, 유럽 등지에서 먼저 선행된 연구자료들을 앉아서 인터넷으로 다 검색할 수 있어요. 또 연구자들과 만나 토론할 수도 있으며, 이런 세계적 판도에서 과학발전의 흐름을 읽고 자기가 택한 연구를 좀더 발전시키거나 첨단화 해나가는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북한 과학자들도 한국과 같은 상황이면 얼마나 좋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또 북한은 과학자들이 해야만 하는 정책과제라 해도 정부가 또는 당이 팀을 구성해주지 않으면 내가 연구하고 싶은 사람과 연구할 수 없거든요. 한국은 제가 하고 있는 연구를 위해서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이 팀을 구성할 수 있더라고요. 이런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 있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부러웠습니다.
이승재: 지식의 소유 권한, 이런 것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한국에선 내가 한 연구는 내 것이라는 지식의 소유권이 있잖아요. 그것이 과학자들에게 엘리트로서 자존감을 갖게하고 더 훌륭한 연구를 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조현: 네. 그렇습니다. 북한 같은 경우는 아무리 힘들게 연구했어도 내 것이라 인정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입니다. 남한에서는 저작권이나 특허권 같은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발명하고 내가 연구한 것에 대해서 권한을 가지고, 이것이 나의 명예도 되고 돈도 되고 사회적으로는 남에게 도움도 주는 역할이 될 수도 있는데요. 북한에 특허권이라는게 있긴 한데 대한민국의 특허권과는 완전히 달라요. 북한은 내가 연구를 했는데도 내가 공유하고 싶은 사람과 공유를 못 하고요.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공유할 수 있는 법입니다. 실질적으로 소유권한을 국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라 ‘국가특허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승재: 과학자들에겐 이런 꿈이 있다고 합니다. 나의 연구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강렬한 열망, 그리고 그 성공과 함께 기록될 나의 이름 석자… 이것을 잘 아는 사회가 진정 과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