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얼마 전 북한의 제6차 당세포비서대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1만 명이나 모였죠?
조현: 북한 같은 1당 통치국가가 아니라면 세포비서라는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개념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세포비서는 사회 하부 단위의 정치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데요. 민주사회의 정치책임자와는 달리 북한의 정치책임자는 가정생활, 경제생활은 물론 사생활까지도 통제하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포비서는 북한 노동당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하부구조를 장악하기 위해 만든 공산주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세포비서가 가정에서 남편과 와이프의 싸우는 문제, 애들 교육하는 것까지 다 관리를 하는데 가정에다 빗대어 말하면 남편과 아이들의 모든 생활을 다 관리하는 엄마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승재: ‘엄마’ 하면 따뜻하고 자상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사생활까지 간섭한다니까 솔직히 거부감도 좀 드네요. 한국에선 사생활까지 관리하는 사람은 없고요. 하부조직, 말단조직과 비슷한 개념을 찾아보면 각 지역마다 있는 통장이나 아파트 동 대표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분들은 거주하는 주민이 잘 살고 있는지, 가난하거나 아픈데 돌볼 사람이 없어 고생하는 건 아닌지, 주민이 불편한 것은 없는지 등등을 파악합니다. 보통은 자기 동네를 위한 봉사심으로 일하는데요.
조현: 네. 맞습니다.
이승재: 그러다 보면 이분들이 자기 지역을 좀 더 발전시켜보겠다는 의지도 갖게 되죠. 그럴 때 구 의원, 시 의원 선거에 나가는 겁니다. 거기서 당선되면 동네주민이 아니라 구민, 시민을 위해서 일을 하고 그만큼 영향력도 커지죠. 북한도 이렇게 하부조직에서 상부조직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나요?
조현: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세포라는 조직이 지역의 발전이나 자기 세포성원들의권익이나 생활조건 개선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고요. 이 조직은 철저하게 노동당 지도부의 발전을 위하고, 노동장의 지시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한국처럼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포비서라는 직위를 갖고 좀 더 출세하는 단계를 거쳐 지위가 올라갈 수는 있지만 그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 통장들처럼 시 의회에 출마해서 지역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승재: 이런 것도 궁금하네요. 남한은 지역의 통장, 아파트 동 대표를 선출하는데도 투표를 합니다. 북한의 경우는 아무래도 노동당의 임명이겠죠?
조현: 네. 그렇습니다. 형식 자체는 세포성원이 거수가결 하는 방식입니다. 위에서 지도 내려간 사람이 “땡땡땡 동무를 세포비서로 세우는데 찬성하는 사람들은 손을 드시오” 하면 손을 들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데서 안 들면 정치적으로 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 당에서 퇴출당하죠.
이승재: 그렇게 되면 세포비서들이 가장 눈치 봐야할 권력은 노동당이 되겠네요. 한국에서는 작은 규모의 통장, 동 대표부터 구·시 의원,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들도 가장 기본적으로는 유권자에게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신뢰를 얻을 만한 약속 즉 공약을 걸고 선거에 나서는데요.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자기가 속한 지역과 공동체를 잘 알아야 가능하겠죠.
조현: 저는 한국에서 시의원, 도지사나 국회의원 선거 다 참여해 봤는데요. 대개 선거에 나오는 분들이 진짜로 국민을 하늘처럼 여기는 거예요.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애씁니다. 국민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연구하고, 이 지역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공부를 많이 해서 실질적으로 지역발전에 어떤 정책이 좋은지 추진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지역에 넓은 땅이 있는데 거기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의 일자리도 창출되고 지역 사람들의 소득도 올라가겠죠. 이런 식으로 모든 공약과 정책들은 주민들의 실질 소득 증진을 위해서, 그리고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지향된다는 겁니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주민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 더러 길에 나와 주민들에게 인사도 하고 명함도 돌리면서 내가 이런 정책을 관철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승재: 한국 사람들은 선거, 투표가 아주 익숙한데요. 때로는 이 제도가 정권을 심판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 7일에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가 있었는데요. 원래 시장은 임기가 4년인데 이번엔 두 전임시장이 임기중 성추행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도중 사임하게 됐고요. 그래서 치르는 보궐선거였는데요. 이런 경우는 잘 없는 일이라 선생님도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조현: 저도 한 표 행사했습니다. 선거 당일 밤에는 개표방송 보면서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됐으면 기대도 하고 마음도 졸였습니다. 이번 선거에 참가하면서 한국이 북한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투표라는 민주적 행동을 통해서 내가 선택한 사람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어요. 한국사회를 보면 선거를 통해서 당선된 사람들, 그들만의 공약과 그 공약을 실천하는 과정 중 행동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다양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번처럼 권력자의 잘못된 행동으로 국민의 이익이나 인권이 침해될 때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시민들이 얼마든지 정권의 발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요. 사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갔는데…
이승재: 네. 국회의원이 총 300명이고 그들이 소속된 당은 7개 정도 되니까 한 개의 당에서 180명이 나왔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죠. 한국에선 사람들이 거대여당, 공룡여당 이렇게 말할 정도입니다. 그랬는데 이번 서울, 부산시장 선거에선 반대로 야당 측의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승리했어요.
조현: 네. 1년만에 사람들 맘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1인의 생각으로 지배하는 북한적 시각으로 보면 정치적으로 혼란스럽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이번 선거에 참여하면서 그만큼 다양성이 보장되고 민주주의적 생각이 실천되는 제도가 진행됐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는 전혀 다르게 정치인들이 시민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서울시장, 부산시장도 여성들에게 권력을 가지고 접근하다 보니 그런 행동이 나타난 거지만, 시민은 이런 대단한 엘리트들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습니다. 남한 정치인과 북한정치인의 다른 점은요. 북한 정치인은 최고 지도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고요. 남한 정치인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승재: “정치인 윤 모씨, 무릎 꿇고 현충원 참배, 민심 받들겠다”, “충북 민심 달래기, 광역철도 반영 약속”, ‘민심에 방점 찍은 정책, 국민 놀랄 정도의 변화 보여주자”, “여야 잇단 좌충우돌, 민심 모르나”, “문 대통령은 민심 수용해 야당과 소통행보” 지금도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한국의 기사 제목들입니다. 엘리트층인 정치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민심이라는 거죠. 북한에서도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말이 당연한 날이 곧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