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안녕하세요.
이승재: 지난 시간에 이어서 미래를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탈북민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지난주에는 IT전문가들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오늘부터는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금융 인재들, 금융 전문가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봅니다. 먼저, 북한의 금융환경도 최근 들어 많이 변했다죠? 평양에서는 한국처럼 물건 살 때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고 들었거든요. 곳곳에는 카드에서 현금을 뽑아 쓸 수 있는 ATM기기도 설치됐다고 하더라고요.
조현: 일부 도시들에서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래 카드’ 같이 금융기관들에서 카드가 출시됐어요. 지난 시절엔 중앙은행 하나, 단일 은행제도였거든요. 지금은 상업은행이 생겨서, 일부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투자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금융제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변화들은 평양과 함흥같은 대도시 일부에서만 가능하고요. 이 카드도 선불카드여서,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은행에 맡겨야만 사용할 수 있는데요. 아직까지는 은행이 북한 주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승재: 아, 은행이 신뢰받지 못한다... 보통사람들이 ‘은행’하면 떠올리는 ‘예금’의 경우는 원금이 손실되지 않아요. 고객이 맡긴 돈은 안전하거든요. 북한 은행은 혹시 그게 안 되는 건가요?
조현: 네. 2009년 화폐개혁을 하면서 화폐의 가치를 100분의 1로 떨어뜨렸어요. 당시 주민들이 정말 장마당에서도 먹지 않고 쓰지 않고 허리띠 졸라매고 모은 돈을 은행에서 돈을 매일, 사람 당 10만원 씩 밖에 바꿔주지 않아서 모두 손해를 봤거든요. 그래서 최근 북한 돈주들을 중심으로 중앙은행을 대신하는 사금융이 성행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사금융은 얼마만큼의 이자를 물어야 된다는 일정한 기준도 없고요. 여기서 돈을 빌렸다가는 한 달에 5%, 10% 이자를 내야 되기 때문에 너무 위험한 요소가 많습니다.
이승재: 그럼 선생님도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땐 은행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조현: 네.; 한국엔 은행이 참 많지 않습니까?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내가 선택해서 거래할 수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대단히 놀랐는데요. 제가 처음 통장을 개설하면서 북한처럼 생각하고 ‘여기다 돈 넣어도 괜찮겠나’ 하고 통장을 펼쳐봤는데, 만약 잘못되더라도 국가에서 5000만원까지는 보장해 준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더라고요. 45만 5천 달러 정도나 되는 돈이잖아요. 인민을 위한다는 북한정부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국민을 위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예금 외에도 노인이 되면 매달 돌려받을 수 있는 연금저축,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드는 청약저축도 있고요. 은행들이 다양한 상품을 내놓아서 주민들의 경제생활이 원만하게 진행되게 하고요. 쉽게 저축하고 또 쉽게 투자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또 놀랐던 것은 한국엔 한국계 은행만 있는 것이 아니고 외국계 은행도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외국은행에도 얼마든지 내 돈을 자유롭게 맡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런 것들 처음엔 아예 몰랐죠. 금융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이승재: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도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개념이나 용어를 공부해야 할 정도로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최근에 한국 언론에 나온 기사를 보니까 탈북민 10명 중에 6명은 한국의 금융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고요.
조현: 맞습니다. 그래서 탈북민들을 돕기 위해 북한 출신 금융전문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탈북민의 안전한 금융생활뿐 아니라 미래의 남북한 경제 협력을 준비하기 위해 금융사전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승재: 남북한의 다른 금융 용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활동도 하고. 장기적으로 큰 그림으로 보자면 미래의 글로벌시대, 통일시대에 제대로 된 금융 정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텐데요. 이런 부분에도 힘을 쓰시는 금융전문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현: 여기에 제일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이 아마 산업은행의 김영희 박사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이 분은 북한에서도 원산경제대학을 나왔거든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 경제학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 은행시스템의 변화’ 이런 주제로 논문도 많이 썼고요. 다양한 학술대회나 세미나 이런 데서 북한의 금융체제와 한국의 금융체제의 차이를 분석하고, 실질적으로 북한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금융 협력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이런 연구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도시경제, 지방 도시들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반대로 평양, 평성 같은 유명한 도시의 금융제도와 사금융에 대한 글도 굉장히 많이 썼습니다.
이승재: 저도 북한의 경제 관련한 자료가 필요할 땐 김영희 박사의 인터뷰나 연구 자료를 많이 참고하는데요. 저뿐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이분에게 자문을 구할 만큼 영향력이 큰 분이죠.
조현: 그렇습니다. 또 후배들도 많이 양성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경제를 전공했거나, 또는 한국에 서 금융 계통에서 일하는 청년 탈북민들이 모여서 만든 앱이 있는데요. 남북한의 각종 금융정보와 경제정보를 모아놨어요.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남한에는 북한과 협력하는 자료로 이용되게끔 만들었거든요. 김영희 박사가 여기도 시간을 내어 가서 봐주고 도와주고 조언해 주고 이런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또 남북한의 경제 협력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한반도 경제를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방안도 많이 내놨고요. 향후 통일이 되면 북한의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고, 북한 금융 전문가를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 또 유일독재의 수단이었던 조선중앙은행의 개혁방안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승재: 대단하네요. 김영희 박사는 물론 북한에서 회계 업무, 금융 관련 일을 하긴 했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을 텐데요.
조현: 맞아요. 이 분이 북한에서 원산경제대학을 졸업했는데, 거긴 경제 전문가를 양성하는 거의 최고 대학이거든요. 여길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은행 관련 일을 하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한국의 금융 상식은 전혀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인가는 꼭 하겠다’라고 생각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 가서 한국의 금융 체제를 공부했고 이후에 산업은행에 취직을 해서 여기서 처음부터 다 배웠다고 하고요. 이어서 석사, 박사 학위를 공부하는 과정에 한국의 엘리트들과 접촉하면서 자신이 차지한 위치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경제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그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하네요.
이승재: 결국 많은 탈북민들이 그렇듯, 자유세계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북한과 고향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잊지 않은 거군요. 네. 김 박사가 지금의 경제전문가라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정말 피타는 노력이 있었을 텐데요. 감사한 것은 이렇게 능력있는 전문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시간에도 미래사회를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또 다른 탈북민 금융인들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오늘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