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안녕하세요.
이승재: 나라마다 최고의 대학이 있죠. 이 최고의 대학을 나와 사회 각 분야에서 엘리트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한 엘리트의 산실로써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다면 한국엔 서울대학교를 들 수 있는데요. 서울대 교정은 누구나 쉽게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선망의 학교를 미리 방문해 꿈을 키우는 경우도 많죠. 선생님도 가보셨죠?
조현: 서울대에 가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공부에도 관심이 많고 북한에 있을 때도 김일성종합대학에 굉장히 가고 싶어했는데요. 한국에 와서 서울대가 얼마나 좋은가 궁금했거든요.
이승재: 어떠셨어요?
조현: 먼저 학교 위치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자락에 학교가 딱 자리 잡고 있는데 울창한 수림 속에 캠퍼스(교정), 관리동, 기숙사가 다 들어가 있어서 정말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라 생각했어요. 규모 자체도 어마어마해서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돌아야 하는, 거의 도시 같았어요. 북한에서 이런 광경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죠.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도 용남산이라고 하는 산 아래 있긴 한데 학교 내에 나무보다는 김일성 찬양하는 기념비, 김정일이 대학 다닐때 왔다갔다 했던 위치나 학생들과 이야기하던 장소들에 표식비들을 세운 것이 많아요. 공부하는 학교인지 역사박물관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서울대엔 정말 예쁜 나무들을 많이 심어 놓았고 나무 그늘에 보면 의자(벤치)가 다 있어요. 학생들이 거기 앉아 공부도 하고, 때론 맥주나 치킨도 나눠 먹을 수도 있는데 김일성종합대학은 그런게 허용되지 않죠. 그 외에 서울대학교 안에는 여러 식당도 있고, 가게, 미용실, 체육관, 운동장 정말 없는게 없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승재: 저도 자주 놀라가는데 갈 때마다 공부도 할 수 있고 편안하게 쉴 수도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서울대가 현재 학생 수가 2만 7천여 명이 되고요. 전공 과목 수는 거의 90가지가 된다고 하는데요. 국제사회의 평가를 보죠. 영국의 한 평가기관에 따르면 서울대의 학문 수준이 아시아에서는 10위, 세계적으로는 40위 전후가 된다고 합니다. 한국 내에서만 보면 서울대 출신들이 학계에 많이 포진해 있고요. 검사 같은 고위직 공무원도 많고, 그 외에 다양한 연구원, 의사 등등 대부분 한국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로 살고 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도 북한의 주요 정치 일꾼을 배출한다고 들었는데요. 김일성종합대학에 대해선 공개가 된 객관적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김일성종합대학이 종합대학이지만 주로 정치적 학문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맞나요?
조현: 맞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이 1948년에 생겼는데요. 초기만해도 정치사〮상적으로만 교육했기 때문에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는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엔 공학부, 의학부, 농학부를 김책공대, 평양의학대학, 원산농업대학 이렇게 따로 독립시켰거든요. 김일성종합대학은 법학이라던가 경제학, 정치, 철학, 역사, 외문학부 이런 학과들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전후에 들어서 학제, 학과구성, 교육과정을 세계적 흐름에 따라 반영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1999년도에 컴퓨터과학대학, 2001년에는 문학대학, 2010년도에 재정대학을 신설했고, 그 다음에는 평양의학대학과 사리원에 있는 계응상농업대학을 단과대학으로 편입시켜서 지금은 그런대로 종합대학의 규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도 김일성대가 나라의 자존심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개선할 방법을 열심히 찾았고 학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최근에는 캐나다, 프랑스, 호주, 스위스 등 유럽국가와도 교류를 한다고 합니다. 해외에도 학생들을 보내는데 물론 성분이 좋거나 고위급 간부의 자녀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려는 노력은 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승재: 그럼 이제는 사회에 나왔을 때 김일성대에서 배운 전공을 잘 살려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좀 있다는 말씀이죠?
조현: 사실 김일성종합대학이 수준이 있고 실력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인정이 안 되는 데는 바로 대학의 입학에서부터 출신성분, 사상성 이런 것들이 중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졸업을 하고 나가면 당장 북한사회의 엘리트 그러니까 간부로 취업하는 확률이 높아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면 인문사회계열 졸업생한테는 ‘전문가’, 이공계열 졸업생한테는 ‘기사’자격을 주거든요. 졸업하면 자기 전공분야로 가기는 갑니다. 주로 중앙기관에 많이 가고요. 군대, 보위부, 안전기관 이런 데 많이 취업합니다. 이름을 달았다는 이유로 항상 어디든 우선권인데 취업에서도 당연합니다.
이승재: 김일성대를 나오면 대학에서 배운 학문과는 큰 상관 없이 간부가 되는 게 취업 1순위라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로 경쟁이 치열할 것 같은데요. 한국의 서울대도 정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실력이 좋으면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전국에서 아주 뛰어난 인재들만 오니까 학교에서 1등을 해도 입학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특권층’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하죠. 누가 서울대 입학하면 “너 신분 상승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정말로 신분 사회잖아요. 선생님도 축산 분야의 뛰어난 연구자인데 김일성종합대학을 못 가신 아쉬움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조현: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제1지망으로 지원했을만큼 가고 싶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같은 귀국자 출신 학생이 김일성대학에 간다는 건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제 길이 좀 열렸다고 볼 수 있어요. 각 도의 수재들을 공부시키는 ‘1고등학교’라는 제도가 나오면서 정말 수재로 인정되는 애들은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가 성분을 좀 개조할 수 있는 기회를 받기도 합니다. 바람대로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부모가 농민이라도 정말 머리가 좋아서 1고등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최고라고 인정되면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또 졸업해서 연구소를 가는 등, 괜찮은 직업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승재: 한국은 나중에 나이들어서 가고 싶은 학교에 다시 도전할 수도 있잖아요. 당장 선생님도 최근에 박사과정을 수료하셨고요. 북한은 나이들어서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고 싶더라도 그게 전혀 허용되지 않나요?
조현: 그렇습니다. 아쉬운 것이, 북한의 대학 제도 자체가 한번 입학하면 졸업할 때까지 중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제가 서울대에 가서 보니까 나이 먹은 사람도 대학에 갈 수 있고 어떤 제한이 없어요.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같은 경우는 중간에 가정사정, 건강, 이런 이유로 쉬었다가 공부하지 못해요. 바로바로 퇴학시키기 때문에 학교에서 내보내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없거든요. 제가 언젠가 서울대에 갔다가 임산부가 공부하는 것도 봤어요. 그렇게 개인들의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역량을 중요하게 여기고요. 학교 다니다가 결혼해서 1,2년 살다가 애 낳고 다시 와도 되더라고요.
이승재: 네.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50~60대에도 열심히 대학강연을 들으시는 이유를 알았네요. 세계 굴지의 대학들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인종이나 신분의 차별없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뛰어난 학생들을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함께 토론하며 경쟁하는 분위기는 더 훌륭한 연구성과로 이어진다고 하네요. 다음시간에도 한국과 북한의 대학 이야기 이어갑니다. 최고의 대학이라는 두 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다음시간에도 들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