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대를 졸업해도 일류가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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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난주에 저희가 서울대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비교해봤는데요.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까웠던 점은 북한에선 청년시기에 대학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보통 20대 초반엔 대학생이라 해도 자신의 장점이나 내가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내가 정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조현: 그렇습니다. 맞는 말씀이죠.

이승재: 그래서 한국 대학생들이 많이 택하는 방법이 잠시 학교를 휴학하고 1, 2년 정도 해외 연수를 가거나 혹은 일을 해보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겁니다. 이런 기회를 학교에서 제공하기도 합니다. 해외 어학연수라던가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점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확실히 세상을 넓게 보는 기회가 되기는 하더라고요.

조현: 한국의 모든 대학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서울대학교에서도 그런 기회들이 많아 학생들이 자기 진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요즘 많이 생긴, 대학 내 장학금 제도들이 학생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죠. 북한은 김일성 장학금, 김정일 장학금 이런 제도들이 있지만 그거 말도 안 되는 허울뿐이에요. 기본적으로 학비는 내지 않지만 공부하려면 대학에서도 여러 가지 요구하는 것들도 많고요.

이승재: 무슨 요구요?

조현: 최근에도 삼지연 건설, 평양의 주택건설 이런데 동원되어 방학에 집에도 못가고, 이런 식으로 학생들이 받는 부담이 많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은 방학 때라도 교환학생 제도를 이용해 해외의 전문적인 특성을 가진 교수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장점을 배울 기회가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학생들이 성장하는 이유가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승재: 2년 전에 조선중앙통신이 김일성종합대학의 물리학 교수진의 논문이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SCI)에 실렸다는 뉴스를 발표한 것을 봤거든요. 학생들에게도 연구나 실습 기회가 있지 않나요?

조현: 김일성종합대학도 물론 실습이라는 게 있어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 가서 뭘 해라”, 선택의 권한은 거의 없죠. 그에 비해 한국은 그 실습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내 전공이나 학과가 발전 한 나라들, 예를 들어 IT를 공부하면 미국, 사회과학을 공부하면 영국과 프랑스, 이런 데 직접 가서 그런 쪽에서 연구성과를 많이 낸 교수들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으니까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청년동맹, 당 생활 같은 조직생활에서 자아비판을 해야 하는 등 이런 스트레스도 많고 심지어 북한 내에서도 다른 학생들이나 다른 대학 교수들과 교류할 자유도 거의 없고요. 사실 공부에 집중도 못합니다. 공부만큼이나 사상적으로 더욱 무장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하거든요.

이승재: 한국에서 사상 무장을 하는 학교가 있다고 하면 벌써 시위가 일어나고 학장이 쫓겨났을 겁니다. 참 저는 대학 다닐 때 정말 신기했던 것이 도서관이었어요. 단순히 책만 보는 곳이 아니에요. 책, 논문, 다양한 해외정보, 생활정보 이용 등등 ‘도서관 이용법’이란 주제만 가지고도 한 학기 강의가 생길 정도였고요. 실제로 도서관학이라는 학문도 있잖아요.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도서관도 자주 가보셨다면서요?

조현: 김일성종합대학과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서울대는 자기 연구와 관련해 수많은 연구논문 자료들을 자유롭게 찾아볼 수 있고요. 서울대학교에도 그 자료가 없다고 하면 도서관 사서들이 다른 대학에도 연결시켜서 다 찾아주는 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북한은 일단 대학에 들어와 있는 자료밖에 찾을 수 없고요. 국가가 선택한 교육자료만 볼 수 있습니다. 국가에서 승인하고 내려먹이는 공부만 할 수 있다는 뜻이죠. 또 이런 것도 다른 점이죠. 저는 수의사 출신이어서 서울대학교 수의학과에 자주 가봤는데 그 안에는 북한과 달리 정말 다양한 세부전공이 있더라고요. 내과, 외과, 애완동물, 농업현장에서의 동물, 산업현장에서의 동물, 여러 분야 중에서 내 전공을 선택해 그 분야에서만 깊이 공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주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예요. 그래서 남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과목들도 내가 선택해서 전문성을 개발시킬 수도 있고요.

이승재: 맞아요. 그래서 요즘 한국 학생들은 만약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학문과정이 진학하고 싶은 대학에 없다면, 제아무리 서울대학교라 해도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하죠.

조현: 한국 사람들은 항상 보다 나은 것, 발전된 것, 성장하는 것을 찾아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서울대에서 공부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으로 가서 더 공부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개인도 발전시키고 서울대 자체도 발전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김일성종합대학은 스스로 대학이 좋다, 전통이 어떻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것만으로 우려먹는데 아무리 두 대학이 남북한의 대표 대학이지만 김대가 서울대와 비교가 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지금이라도 김일성대가 한 나라 최고 대학으로서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큼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재: 김일성종합대학 출신들이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사실 거의 볼 수 없는데요. 아무래도 이들의 활동 영역이 세계가 아니라 북한 내부여서 그렇겠지요?

조현: 맞는 말씀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자체가 김일성의 이름을 달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래서 김씨 정권을 위한 대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에 비해 서울대학교 출신들은 내 행복과 내 가정의 안녕을 지켜주는 내 나라를 위해서 공부한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두 학교의 차이라고 봅니다. 사실 북한은 암만 똑똑해도 그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한국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는 발전하다 한계가 있으면 그 한계를 뛰어 넘어서 더 발전할 방법을 찾는데 북한은 어느 정도까지 발전하면 더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김씨 일가가 원하는 것까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라 해도 정부에 눈에 나거나 하면 바로 잘려서 직업을 잃고 최하층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물론 한국에서도 서울대 나왔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닌데, 일단 노력한 만큼의 기회는 주어지고요. 실패한 경우라도 더 훌륭한 사람이 있었다거나 하는 어떤 객관적인 조건에 있지, 대학의 틀린 교육시스템이나 정부의 잘못에 의해서 한계를 느끼는 건 아니거든요.

이승재: 서울대에 대한 세계적인 평가가 과거에 비해서 점점 더 높아지는 이유는 각 개인의 장점과 성향을 존중하고 그들이 원하는 발전의 길을 열어준 것 때문이었습니다. 개개인의 발전은 학교의 발전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국가의 성장이라는 결과로 돌아왔죠. 김일성종합대학도 세계적인 석학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들의 학문적 영향력이 학생들의 개인적 역량과도 이어지는, 발전의 선순환을 기대해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사작성: 자유아시아방송 이승재,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