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중동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는 겁니다.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탈레반은 여성에게 아주 가혹하기로 악명이 높은데요. 앞으로 여성을 어떻게 대할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조현: 탈레반이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는데요. 그때 당시 상당히 엄격한 이슬람 율법 통치와 함께 인권 침해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나 교육을 전면 금지시키고 심지어 여성이 혼자, 아니 여성들끼리만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막았다고 해요. 굉장히 안타까웠던 사실은 남성이 특정 여성과 간통했다고 지목만 하더라도 그 여성을 돌로 때려죽이는 끔찍한 사형제도도 있었다네요. 이번에 탈레반이 정권을 다시 재장악했는데 최근 뉴스를 보니까 얼굴을 드러낸 여성을 거리에서 총으로 사살했고 어제 그제도 취재를 하고 있는 외국 여기자들에게 총을 겨누며 위협했다는 것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승재: 참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이슬람 여성들은 밖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혼자 외출하는 것도 금기시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요. 그런데 사실, ‘여성 인권’하면 북한도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잖아요?
조현: 네. 그렇습니다. 이를 보며 북한 여성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북한에서도 조선노동당이 여성들에게 “남성의 혁명사업을 돕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가르치거든요.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북한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모든 여성들은 남성들의 사업 성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책제철소에 대한 소개 편집물에서 “여성들이 남편이 일하는 데 나가서 서 있기만 해도 남자한테 힘이 된다” 이런 식으로 장려하더라고요. 여성은 자기의 삶을 사는게 아니라, 남성의 성공에 오직 여성의 행복이 있다고 강조하는 점이 탈레반 못지않게 여성의 인권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승재: 그러셨군요. 선생님도 50세가 되어서 탈북하셨잖아요. 그럼 북한에 계실 때 선생님도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좁은 것이 부당하기보다는 당연하게 느껴지셨겠네요.
조현: 예. 솔직히 그랬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여성 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실질적인 평등이 어떤 것이란 걸 알기 전까지는 여성들은 남자에게 복종하고 가정에서 살림 잘하고 시집가서 시부모님 잘 보살피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여성이 남성들에게 대들거나 남성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려는 경우에는 저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좋지 않은 시각으로 봤었죠. 그런데 한국에 와서 이런 행동이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또 다른 말로 여성을 하대하는 아주 안 좋은 생각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북한에선 그저 법적으로, 선전으로만 이야기 되고 있는 여성의 권리가 한국에 오니까 실질적으로 실현되고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한국에 와서 제일 감탄했던 것은 정부 부처 중에 여성가족부가 있는 겁니다. 여성가족부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취직하고 경제생활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요. 가정에서도 남편에게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 여성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성차별적인 발언, 성추행 이런 것들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사는 탈북 여성들이 한국을 되게 좋아합니다. 한국 오면 일단 성평등 교육을 통해서 여성들 자체도 실제적인 평등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요. 북한에서 살다 왔어도 한국 여성들과도 아무런 차별 없이 인권이 보장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음에, 정부관리 영역에서도 여성의 참여비율이 높다는 것이 남북의 차이죠. 여성도 한국 정부부처의 장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도 여성이고 이번에 보니 추미애 전 장관도 대통령하겠다고 나왔더라고요. 북한에서 여성이 대통령하겠다고 나선다? 말도 안 되고 그런 꿈도 못 꾸는 게 북한 사회거든요.
이승재: 그렇군요. 사실 한국에서도 지금처럼 남녀평등 의식이 자리잡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엘리트 여성들의 역할도 컸고요. 특히 과거에는 지금 북한 여성의 삶과 비슷한 시대도 있었는데요. 1945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을 때 헌법에는 분명 여성참정권과 남녀평등권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차별은 상당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라면 정당한 노동 대가를 받을 수도 없었고 국가 건설에 동등하게 참여할 시민적 권리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진정한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과제였거든요.
조현: 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겠나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여성들의 인권이 상당히 성장하게 됐어요. 왜,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빨리 성장하게 됐을까, 실질적으로 여성 인권이 보장된 이유가 무엇일까,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성 인권을 향상시켜 온 훌륭한 여성들이 있더라고요.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여성들을 많이 가르쳤고요. 그리고 여성인권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나혜석이라는 여류 화가도 있었습니다. 해방 이전에 활동하신 분인데 근대적 여성 해방의 상징적인 인물이고 여성 운동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더라고요. 이분은 서양화가면서도 문학가로서도 유명한데요. 잡지나, 신문에 여성은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에 반박하는 글도 실었고요. 여성도 실력을 쌓아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고, 여성들의 자유학생 모임인 ‘조선여자친목회’도 조직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돕는 일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1934년에 삼천리라는 잡지에 이분이 자기 연애와 결혼, 이혼에 이르는 그런 과정과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이혼고백서를 실었는데 이게 굉장히 유명하고 또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사회가 이런 걸 받아줄 때가 아닌지라, 이런 여성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옥고까지 치르고 그랬어요. 이분의 말로는 결국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버림받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이분이 시대를 앞서 사고하고, 자신의 순수했던 성품을 가지고 가부장적 사회제도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고 자유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분이 훌륭하고 대표적인 근대 조선 여성의 얼굴이 아닐까, 여성들의 삶을 엘리트로 이끈 엘리트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지금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능력을 펼치는 여성들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여성은 단지 남성을 보필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던 시절,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이렇게 여성 인권을 외친 분들이 있어서일 겁니다. 지독했던 편견과 싸웠던 이분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이끌었고 여성들은 더 이상 현모양처만을 꿈꾸지 않게 됐습니다. 각자의 자아실현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그 결과 사회적인 지위도 향상하게 됐죠. 다음 시간에도 한국 여성의 인권을 성장시킨 또 다른 분들을 만나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