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난주에 저희가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 인터넷으로 ‘여성’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뉴스가 가장 많이 올라와요. 여성의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탈레반이란 단체가 아프가니스탄을 집권하게 되면서 위기에 놓인 여성들이 탈출하고 있습니다. 유엔이나 국제 인권단체에서는 탈레반을 규탄하면서 여성 인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움직임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죠. 그 외엔 또 인도 소식도 올라오는데요. 인도에는 고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폭행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어요. 아주 심각한 문제죠.
조현: 네. 저도 뉴스를 보는데요 지금이 21세기잖아요. 이렇게 문명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이나 지식 수준이 높아진 시대에 지구 한 켠에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사실 북한도 마찬가지에요. 여성이 많이 핍박받고 있고 드러나진 않았지만 솔직히 가정폭력이나 성범죄도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북한 정권은 여성에게 “혁명의 수레바퀴 한 쪽을 담당하라”고 강요하는데 그 뜻은 사실상 존중받는 인간의 삶을 포기한 채,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 남자들에게 또 다시 복종하라고만 강요하는 겁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북한에서처럼 여성이 남자가 해야 하는 육체노동을 똑같이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일에 대한 결정권이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존중받는 삶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남성들이 여성을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쉽지 않겠지만 여성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면서 차별에 대해 반대한다거나 혹은 개선할 수 있는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제 솔직한 바람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우리가 한국의 나혜석이라는 분에 대해 얘기했었죠. 과거 한국도 남녀차별이 아주 심했는데 이분은 여성 화가이자 문학가로서 작품활동을 통해 여성인권운동에 앞장서신 분입니다. 이분이 해방 이전에 활동하셨어요. 비록 당대엔 배척받는 삶을 사셔서 지금 그분의 무덤이 어딨는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런 분들이 초석이 되어 지금 한국 여성은 얼마든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습니다.
조현: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 방송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훌륭한 여성들을 많이 알게 됐는데요. 한 분 더 소개하자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는 이길여 여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1950~1960년대에 여성들이 많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편견을 깨고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공부했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분입니다. 한국에서 지금 굉장히 크고 유명한 가천길병원의 설립자이기도 한데요.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1960년대엔 미국 뉴욕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실습도, 현실체험도 하다가 그 다음엔 일본에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이승재: 비행기를 타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여성 혼자의 몸으로 정말 대단하시네요.
조현: 맞아요. 보니까 이분의 신념이 봉사, 애국이더라고요. 이분 생애를 보면 사실 재미난 이야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감동됐던 것은 이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6.25를 겪었다네요. 같이 공부하던 남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내가 조국에 빚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나라를 지킬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래서 애국적인 맘으로 의사도 되고,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가 되고, 큰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업가도 되고, 한국의 기초 의학 발전을 견인한 일도 한 겁니다. 이런 분이 엘리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승재: 그렇습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노력과 실력도 갖췄겠지만 그 시절 이 일을 해내기까지 사회적인 차별과 따가운 시선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런데 사실 이런 분들이 애국하신 거에요. 여성도 얼마든 할 수 있다를 보여주셨고, 실제로 이런 분들 때문에 여성들도 얼마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1980~1990년대엔 여성들의 활약이 대단해졌어요.
조현: 그렇습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수많은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예술계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조수미라는 대단한 성악가가 있더라고요. 이분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요리만 하던 여성들도 집에서 살림만 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 재능을 살려 꾸준한 요리 연구를 해서 세계적으로 한식을 알리는 여성들도 상당히 많아졌어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 여러 분야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이제 없어서는 안될 그런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성들이 직접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일부 정치인들과 사회단체들, 여성들이 함께 꾸준히 양성 평등 운동, 사회운동을 벌인 결과 지금은 여성가족부도 설치되고 그랬잖아요.
이승재: 그렇습니다. 여성가족부, 여성들이 사회와 가정에서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기도 하고 또 감독하기도 하는 기관이죠. 여성가족부가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육아를 하면서도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기도 하고요.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성들은 육체적으로 약하잖아요. 여성이 직접 여성가족부에 신청하면 한국 내 성범죄자들의 현재 위치나 그들이 사는 집들을 알려줘서 안전하게 피해 다닐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런 식으로 법적이나 생활면에서 여성의 삶과 질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데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요. 계속 제도를 개선하고 또 개선하죠.
조현: 그렇습니다. 북한은 사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여러 법조항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권리는 거의 보장되지 못하고요. 여성의 권리를 책임지는 부서 하나도 없습니다. 여성들은 그저 북조선여성동맹을 통해 당에서 지시하는대로 나가서 일하고 가정에서 남편에게 봉사하고, 애들 교육만 잘하는 것이 여성이라고 인식하죠. 개인의 능력과 개성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아닌 순전히 남자들과 당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것이 애국이라는, 여성에 대한 이런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사실 제가 보기엔 북한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 여성들인 것 같아요. 장마당에서 일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가장의 역할을 다 하는 거 아닙니까?
조현: 네. 맞습니다. 북한 여성들이야 정말 생활력 강하죠. 북한에서도 여성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사회에서 인정하지만 않을 뿐입니다. 북한에서 그렇게 삶을 견뎌내다가 한국에 온 여성들을 보면 북한 여성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곧 적응해서 여기서 석사, 박사도 금방 따내고요. 일하는 여성들은 자기 적성을 찾아 금방 기술도 배우고 돈도 잘 벌고 살아갑니다.
이승재: 그렇습니다. 여성이란 남성을 돕기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이 갖지 못한 또 다른 장점을 채우는 존재죠. 그런 면에서 북한 남성도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 스스로도 내가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 지금은 비록 불투명해 보이지만 내가 세상에서 더 가치 있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끊임 없이 고민하고 또 시도한다면 언젠가 북한 여성도 지금보다 자유롭게,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을거라 밑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오중석, 웹팀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