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우리 프로그램 이름이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잖아요. 프로그램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이쯤에서 남북한이 생각하는 엘리트의 차이를 한번 다시 짚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엘리트인데 북한에서는 아닌 경우가 많죠?
조현: 그렇죠. 예술인이 그런 경우입니다. 한국에선 연예인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선 연기도 잘 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또 잘 만들고 하면, 대중문화의 격을 높인 엘리트로 인정해주잖아요. 북한은 전혀 안 그래요. 예술인이나 체육인은 몸으로 때우는 직업이라고 인정 잘 안 해주죠.
이승재: 다르네요. 한국에서 엘리트라면, 집안 대대로 이어져온 정재계 엘리트층도 있지만 보통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해서 그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가 되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영향력일 수도 있고 어떤 학문적 성과일 수도 있고요. 또 윤리 도덕적인 부분일 수도 있어요. 방금 말씀하신 예술인도 물론이고요. 그에 반해 북한의 엘리트라면 어떤 직업이 떠오르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힘있는 사람이나 혹은 간부들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조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엘리트라 그러면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잖아요. 북한에서 실질적으로 인정받는 건 간부니까 그런 의미에선 엘리트는 간부가 맞죠. 하지만 북한 사람들도 지적으로 뛰어난 연구자나 대학교수 같은 교육자들을 엘리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연구자, 교육자는 노동당이 만들어낸 교육과정이나 노동당이 요구하는 정책과제에만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자기의 재능을 거기에 바칠 뿐입니다. 한국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해서 사회에 기여할 영향력은 없죠.
이승재: 물론 북한에서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는 없다지만, 그래서 북한 분들이 어떤 직업을 꿈꾸기보다는 간부가 되려고 애쓰는 거군요.
조현: 그렇다고 봐야죠. 제가 생각하는 남북한 엘리트의 차이는 자기의 재능을 위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싶은 방법대로 기여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무얼하든 강요에 의해 움직이니까, 행동하는 측면에서는 그들은 로봇에 가까운 엘리트죠. 하지만 한국에서의 엘리트는 사회를 이끌어가고 어떤 역할이나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승재: 사회를 이끌어가고 어떤 역할이나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엘리트다, 그렇다면 이런 한국의 엘리트 중에 여성들의 역할이 상당하다는 것을 청취자 분들이 아실까 궁금합니다.
조현: 모를 것 같습니다. 한국 여성들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 북한의 남녀 모두 깜짝 놀라겠죠.
이승재: 지난주에도 우리가 한국 여성들에 대해 얘기해봤는데요. 여성을 바라보는 남북한의 시선은 정말 다릅니다. 한국은 사회 각계에 여성들이 진출해있고 어떤 사회적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조현: 그렇죠. 북한은 남성을 잘 보필하는 것이 여성의 주된 임무라고 가르치잖아요.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다, 여성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한국과는 확실히 다른 부분입니다.
이승재: 그렇다면 북한에선 여성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 해도 요즘 장마당 보면 여성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거든요. 여성에 대한 인식도 곧 달라지지 않을까요?
조현: 이 질문 역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여성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고 불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시장이 형성되면서 여성의 실질적인 지위가 올라간 건 사실입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것에 의지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번만큼 나와 내 가정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니, 여성들도 자존감이 높아졌죠. 이전처럼 혁명사업이 잘 되도록 보필만 하고 애들과 남편 성공에서 기쁨을 찾는 북한 여성이 아니라, 가정을 이끌고 나가는 여성이 많아졌습니다.
이승재: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셨는데 여성에게 어떤 권력이라도 생겼다는 뜻일까요?
조현: 제가 살던 평성만 해도 지금 잘 나가는 여성 돈주들 많습니다. 식용기름 사장, 맛내기 사장, 어떤 사람은 순천에서 시멘트 공장사장인데 지금 노동당 무역부, 군부대 산하에 상당한 정도로 납품하고 있어요. 힘이 있다는 뜻이죠. 유통 쪽에도 이제 여성 사장들이 많이 보이고 또 사우나나 목욕탕 운영하는 여성도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체제가 보장하지 않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렇듯 앞으로 시장이 더 활성화되고 시장의 자율성이 높아진다면 북한 여성의 실질적 지위가 더욱 개선될 겁니다. 북한 여성들 자신이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인권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불가능한 면도 있습니다. 당장은 여성들이 노동당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남편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가부장제도가 남아있고 또한 북한 여성들의 전체적인 평균 교육수준을 한국처럼 높이려면 시간도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노동당이 주는 한계 내에서만 인권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아쉽죠.
이승재: 그렇군요. 한국도 과거엔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죠. 그래서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 열심히 여성해방운동, 여성인권운동에 앞장서신 분들이 계셨고요. 그 결과 오늘날 한국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선택해서 할 수 있고요. 실제로 실력도 굉장히 뛰어나서 저도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하는 뛰어난 여학생들 때문에 입시나 취업에서 밀린 경우가 많았거든요.
조현: 네. 한국에는 여성이 없는 분야를 찾기가 더 힘듭니다. 이미 대통령도 여성이 나온 상황이고 특히 교육계는 거의 다 여성들인 것 같아요. 한국 학교교사 70%가 여성이라서 이젠 남교사를 따로 뽑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면 취업할 때 어느 정도 가산점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걸 뛰어넘는 여성이 많아서 이 점수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과거엔 다들 아들 낳고 싶어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딸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아들 낳으면 수레 타고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승재: 맞습니다. 제 주변의 젊은 부부들 보면 재밌는 얘기가 많은데요. 요즘 남자아이들을 가진 엄마들은 학교의 여자아이들을 경계하기도 합니다. 워낙 여자들이 똑똑하고 공부 잘 하니까요.
조현: 그럴 것 같아요. 교육뿐 아니라 의료계에도 여성이 많고 방송만 봐도 뛰어난 여성 진행자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언론에 관심이 많은데 TV보면 여자 방송 기자들이 그렇게 많더라고요. 범죄사건 같은 험한 일을 취재하는 데도 여성들이 정말 잘합니다. 상황을 보는 시각이 날카롭고 섬세하니까 남성들보다 심층취재를 더욱 잘 하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TV뉴스도 남자가 중심 진행을 하고 여자가 보조진행을 했는데 이젠 대한민국 공영방송에서도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갑니다. 이 모든 것은 북한에서는 아직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승재: 한국의 젊은 부모들 사이에선 확실히 딸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 여성들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충분히 자랑이 될 만한 존재라는 뜻이겠죠. 북한의 여성도 지금은 그 역할이 한정되어 있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곧 여성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와 국가의 자랑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지금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고 또 좋은 영향을 끼치는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