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선생님 k-호미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k-호미는 코리아 호미 그러니까 한국의 호미라는 뜻인데요. 지금 한국의 호미가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네요. 한국은 제법 도시화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지만, 외국은 주택에 사는 사람이 많으니 자기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는데 호미가 아주 획기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4~5 달러 하는 호미가 외국에서는 몇 십 달러씩 팔리고 있다는데요. 알고 계셨어요?
조현: 네. 저도 신문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외국 기자들이 한국에 호미 만드는 대장공을 취재하러도 왔었잖아요. 저도 농업 쪽은 잘 아는 전문가인데, 한국에서 손으로 일하는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공의 실력은 가히 세계적입니다. 물론 외국에는 삽 밖에 없었으니 ㄱ자로 꺾여 손쉽게 정원을 가꿀 수 있는 호미라는 기구 자체가 꽤 유용하겠지만, 제 생각엔 한국 기술자들 실력이 정말 최고여서 더 인정받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k-호미라는 말이 나오고, 외국에서 한국 기술자들을 취재하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오는 게 아니겠어요?
이승재: 해외에서 호미가 유명해지면서 취재까지 왔던 그 대장공, 그 호미 기술자가 바로 영주대장간의 석노기 씨라는 분입니다. 대장공으로 일한지 올해로 자그마치 55년째라고 하는데요. 지난해만 만 개 이상의 호미를 만들어 팔았는데 절반은 해외에서 사 간다고 하네요.
조현: 네. 대단하군요.
이승재: 이처럼 하나의 기술을 가지고 외길을 쭉, 오래 걸으신 분들은 한국사회에서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또 존경도 받고 있죠. 정말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면 한국에선 보통 ‘장인’ 또는 ‘명인’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런 기술 중에서도 특별히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기술 있잖아요? 방금 얘기했던 호미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고요. 그 전통 기술을 보유했다면 이 분에 대해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고 국가에서 ‘무형문화재’라고 추대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해주고 있거든요.
조현: 네. 저도 무형문화재라는 제도를 한국에 와서 알았는데 북한의 사적물, 역사유물 같다고 할까요? 다만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귀하다고 인정해주는 거니까, 저는 그 무형문화재를 기술 엘리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다른 점이 있어요. 한국은 전통문화를 인정하고 계승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관련된 기술을 가진 분들을 무형문화재라는, 일종의 엘리트로 대접하는데 북한은 전통문화라는 보물처럼 여기는 개념이 없다고 봐야 할까요?
이승재: 오래도록 이어져온 민족만의 문화가 북한에도 없지는 않을 텐데요.
조현: 예.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한국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에도 많은 기술이 있죠. 대장기술, 목공기술, 선반기술도 있고요. 한국에서 전통문화를 지키는 귀한 기술이 있다면, 북한에서는 노동당의 사적물을 만들고 노동당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기술 장인으로, 명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당의 필요에 의해 잠시 재능이 소비되는 인력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서 가야금 있잖아요. 저는 북한의 가야금 밖에 몰랐는데 그것은 요즘 연주하기 쉽게 개량된 현대식 가야금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한국 오니까 개량 가야금은 물론, 오래 전에 연주됐던 전통 가야금까지 만드는 장인이 있더라고요.
이승재: 저는 최근에 허진규라는 한국의 옹기 장인, 무형문화재를 알게 됐습니다. 이 분 역시 미국의 한 매체에서 직접 취재까지 한 분인데요. 이분의 옹기 인생과 철학을 담은 영상이 전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까지 올라서 외국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 분은 “제대로 된 옹기를 만들려면 10년 이상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런 말을 했는데요. 어디에서든 빨리빨리를 강요받는 세계의 젊은이들에겐 감동이 된거죠.
조현: 저도 봤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이분 때문에 한국의 전통문화에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을 감동시켰다는 건 그런 사람이나 기술이 요즘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의미 아닐까요? 그런데 좀 아쉬운 점도 있어요. 이 분이 인정받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쭉 외길을 걸어 옹기 기술을 배웠다는 것인데, 한국은 이렇게 외길을 쭉 걸어 훌륭한 경지에 오르면 인정을 받잖아요.
이승재: 북한은 그렇지 않나요?
조현: 좀 역설적인 것이, 북한은 어차피 외길이거든요. 직업이동의 자유가 없습니다. 큰 이변이 없다면 같은 직업을 가지고 쭉 이어 살아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다만 기술이 좋고 노하우가 많더라도 그 가치를 한국처럼 인정받지 못해서 아쉬운 거죠.
이승재: 사실 기술 인력이 없다면 그 사회가 절대 돌아갈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북한은 아직 한국이나 외국처럼 정보화와 신기술의 수준이 높지는 않으니까 이런 기술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북한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셨지만 뛰어난 기술력으로 이름이 알려진 분은 안 계신가요?
조현: 한국에는 좋은 기술 가진 분들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들이 있잖아요. 생활의 달인이라던가, 여러 다큐멘터리도 있고요. 하지만 북한에는 그렇게 기술인들이 주목받지는 못합니다. 잘 알려질 수가 없죠. 제가 생각해보니,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몇몇 기술자들이 떠오르네요.
이승재: 어떤 분들이지요?
조현: 평양에는 아주 유명한 자동차 정비하시는 여성 기술자가 있습니다. 북한은 부품이 많지 않으니까 뭘 갈아 끼우려 해도 직접 선반을 이용해 깎고 다듬어서 부품을 만듭니다. 이 분야에선 최고 실력자죠. 또 순천에는 다리가 불편한 한 장애인이 수제 맞춤형 신발을 만드시는데 이 분한테 신발을 만들면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공장에서 만든 새 제품은 비교가 안 됩니다. 그리고 또 제가 살던 평성의 공훈이발사, 그 분은 30년 이상 이발을 하셨는데 사람들의 체형과 얼굴형 이런 것들을 보고 정말 딱 적합하게 머리를 다듬어주는 기술자였거든요.
이승재: 방금 공훈이발사도 말씀하셨는데 ‘공훈’이라는 말이 앞에 붙으면 사회적으로는 꽤 인정받는 거죠?
조현: 네. 그렇습니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20~30년을 일하고 당성이 있다면 공훈이라는 말을 붙여서 국가에 충성하는 기술자라고 인정해주는데요. 그것이 명예 정도는 됩니다. 다만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거나 하는 그런 이점은 없어요. 저는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 있다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엘리트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추앙하는 직업은 아니더라도, 뛰어나다면 박수 받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아까 호미랑 옹기 만드는 분들만 봐도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장인이 되지 않았나요? 그게 바로 엘리트가 아니고 뭡니까?
이승재: 기술 하나를 갖고 외길을 쭉 걷는 사람들, 한국에선 그것이 선택이고 북한에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인데요. 하지만 개인이 평생 연마한 한 가지 기술이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고,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기술인을 인정하고 또 존경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다음시간에도 남북한 기술인들의 이야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