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최근 북한 동향을 보니까 기술, 기능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하고 있더군요. 얼마 전 노동신문에는 “북한 당 조직, 기술자 기능공들과의 사업에 힘을 넣자” 이런 기사도 게재됐고요. 얼마 전엔 평양에서 북한 최고의 미장공까지 뽑는 대회가 열렸다죠?
조현: 맞습니다. 평양에서 만 세대 살림집 건설공사가 한창인데 아마 그걸 위해 열린 행사일 겁니다. 미장이란 것이 엄청난 육체노동이잖아요. 북한에서 미장 경쟁을 한다는 건 기술이 높은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한 경쟁이죠. 거기서 1등을 하면 TV에 한두 번 우승기 훈장을 들고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들 삶의 질은 미장 경연에서 1등했다고 해서 결코 높아지지 않습니다. 만약 남한에서 TV에 한두 번이라도 나왔다면 아마 그 미장공에게는 많은 의뢰, 주문이 들어와 금세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남북한이 다른 점이죠.
이승재: 우리가 지난주에 한국의 손기술 장인들에 대해 이야기 해봤습니다. 하나의 기술을 꾸준히, 몇 십 년 동안 연마한 기능공들 중에 실력이 정말 뛰어나다면 한국에서는 그 분야의 장인이나 명인으로 인정해줍니다. 게다가 그 손기술이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면 인간문화재,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으로도 인정해주고요.
조현: 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부도 따라오게 되는 것 같아요.
이승재: 그런 경우가 많죠. 북한 기능공들은 이와 달리 같은 일을 오래 했다고 해서 인정받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도 요새 계속 손기술을 강조하는 것보니 북한도 손기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 아닐까요?
조현: 북한에서 최근 기술자, 기능공 등을 자주 언급하는 경우는 사실 지금 북한 경제난 때문에 사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말고는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욱 몰아치는 거죠. 그저 몸으로 때우라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도 미약하게나마 손기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전엔 사회 통념상,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필요에 따라서 인정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천시받기도 했죠. 물론 실력이 좋은 경우 노동당의 당원이 되는 등 인정을 받았지만 그건 또 사회적인 존경과는 다른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경제난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을 때 이들이 자기 기술을 갖고 돈을 벌기 시작한 겁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기술을 가지고 미장공, 목공들이 여기 저기 불려다니며 일을 하게 됐죠. 그것이 상당한 정도의 부로 이어지면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기능공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어요. 심지어 사회적인 부를 창조하고 그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까지 합니다. 계획경제 속에서 활동할 때와 달리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돈도 벌고 사회의 인정도 받게 된 거죠.
이승재: 그렇군요. 최근 한국도 손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전기기술이나 용접 등등 손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화이트 칼라 즉 양복을 입고 다니는 직업을 선호했는데요. 사실 이런 직업은 보통 60대 초반, 직장마다 정해진 나이까지만 일할 수 있거든요. 반면 숙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그 경력이 오래되고 실력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되고요.
조현: 네. 말씀하신대로 한국 사회는 북한과 다르게 기술이 쌓이고 쌓일수록 대접받는 사회인데 그게 참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
이승재: 지난 시간과 이번 시간, 선생님 말씀을 종합해보니 북한에선 손기술 인력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닌데, 이제는 시장경제가 더욱 발전하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데요.
조현: 네. 그렇습니다.
이승재: 그렇다면 지금 북한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미장공도 언젠가는 세상이 내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북한에서 대접받는 직업이 될 수도 있을까요?
조현: 맞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얘기하다 보니 제가 북한에서 만났던기능공들이 생각납니다. 2000년대 들어와 북한에 한창 집을 짓는 바람이 불었어요. 정부가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니 개인들이 투자해서 집을 짓는 것이 시작된 거죠. 제가 아는 미장공은 작업도 엄청 빨리하고, 예쁘게도 하고, 조경도 잘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또 목공 잘하는 분도 있었는데 이분은 정부에서 내놓은 디자인이 아닌, 이태리 가구 같은 사진들을 보면서 직접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정말 근사하게 만들어서 사람들 존경을 받았던 생각이 납니다. 한국에 있는 탈북민의 경우도 손기술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서 견디기 어렵고 적응하기 힘든 이유 때문에 혼자 일할 수 있는 손기술을 배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기술을 배운다면 그것이 쭉 내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내가 사회에서 대접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리모델링이 열풍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사갈 때 자기가 들어갈 새 집이 오래되고 낡았다면 리모델링이라는, 내부를 모두 철거하고 벽부터 벽지, 전기배선, 주방기구, 가구 등을 모두 다시 설치하는데요. 여기에 미장공, 도장공, 도배공, 가구공, 전기공, 모두가 달라붙게 됩니다. 요즘 4차산업시대, 4차산업혁명 이런 말들 많이 하는데 어쩌면 이런 시대에 기능공들은 더 필요한 일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대체할 일꾼이 별로 없어요. 컴퓨터가 노동과 정교한 손기술을 대신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말씀하신 것처럼 탈북민들 중에 한국에서 손기술을 배우고 꾸준히 연마해서 잘 정착하신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봐도 탈북민들은 기술을 가진 분들이 다른 분들보다 좀 더 안정적으로 정착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조현: 맞는 말씀입니다. 저와 같이 한국에 왔던 친구들 중에는 기술 가지고 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사는 탈북민이 많습니다. 한 친구는 울산조선소에 가서 용접을 배워서 10년 동안 꾸준히 일해서 지금 집도 사고 장가도 가고 애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고요. 또 다른 친구는 한국에서 전기배선을 배웠습니다. 원래 전기 쪽에 재능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공부하고 전기기술자 자격을 얻었는데요. 지금 여러 건설현장으로부터 이 친구에게 많은 주문이 엄청 와서 지금도 굉장히 바쁘게 지내고 있답니다. 물론 북한에서 이런 기능공으로 일했다면 그 일이 지긋지긋했을 수도 있고요. 험한 일 안 하겠다고 맘 먹고 탈북한 사람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여기선 그런 일이 천한 일이 아닙니다. 낮은 계급의 일이 아니죠. 그 일은 내 자산이 될 수 있고 나를 이 사회에서 엘리트로 만드는 첫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승재: 선생님이 후배 탈북민들께 손기술 배우라는 조언도 많이 하신다더니 이런 이유였군요.
조현: 그렇죠. 손기술이 힘들지만 정말 오래, 잘 노력하면 사회적으로 부도 축적하고 존경도 받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북한에 계신 기능공들, 지긋지긋할 수 있지만 북한이 아닌 다른 사회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는 엘리트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재: 네 비록 몸이 힘들 수 있지만 “4차산업시대에 오히려 필요한 것이 손기술을 가진 직업이다, 자부심을 갖고 힘을 내셔라” 선생님의 이 말씀이 깊이 남습니다. 청취해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