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한국은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여러 후보자들이 민심 특히나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조현: 저도 후보자들이 얘기하는 공약들을 들어보는데요. 어떤 후보들은 취업 못하는 청년들을 위해 일정기간 돈을 준다고도 하고, 개인 개발비용으로 해외여행 비용을 주는 것도 생각해 보겠다느니, 혹은 결혼하면 국가에서 얼마씩 주겠다느니 이런 공약도 내보이는데요. 사람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것보다 청년들이 마음껏 일하고 무한정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를 풍성히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저도 선생님도 청년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꿈을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인 거죠. 그런데 남한은 그렇다쳐도 사실 북한의 청년들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젊은 날을 오롯이 국가를 위해서만 보내야 하잖아요.
조현: 개인의 삶이 없는 거죠. 남자는 10년 이상 군대에 다녀와야 하고요. 대학생들도 공부는 커녕 틈만 나면 공사에 동원되는 등 고된 일을 해야 하잖아요. 한국은 군 복무기간이 2년도 안 되는데다가 대학생들이 공사장 가서 의무적으로 일하는 경우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청년들한데 “젊어서 고생은 금 주고도 못 산다”며 탄광이나 염전으로 보내고 있어요. 청년이 발전할 기회가 없죠.
이승재: 너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지난주에 선생님께서 혁신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는 청년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예로 남한의 한 청년이 아프리카에 가서,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죠.
조현: 네. 학교에 대형 전기충전기를 설치해 주고, 아이들에게는 작은 가정용 충전기를 하나씩 전해줬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공부하는 4~5시간 동안 학교에 있는 대형충전기에 자기 충전기를 꼽아 놓으면 그게 충전이 다 됩니다. 아이들은 각자 충전기를 가지고 집에 가서 불도 밝힐 수 있고요. 이런 아이디어로 아프리카에서 5000명 이상이 집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고 합니다. 외국을 자유롭게 다니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한국 젊은이라서 가능했죠.
이승재: 저도 너무 감동이 되었던 사례였어요.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만 만약 선생님도 지금 청년시절로 되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조현: 제가 축산을 전공했잖아요. 보통은 ‘축산’하면 소젖을 생산해서 우유로 만들어 파는 것까지만 생각하는데요. 생산과 가공 그리고 유통을 비롯해서 이 모든 작업이 일어나는 공간을 관광상품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져서 지역발전까지 함께 이룰 수 있거든요. 이렇게 지역 농업이나 축산업 특성에 맞는 지역활성화 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승재: 정말 훌륭한 꿈입니다. 하지만 북한 청년들에겐 현실적이지 못한 꿈이죠. 어쩌면 북한 청년들이 한류에 매료된 것도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세계를 엿보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북한 당국마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니 청년교양보장법이니 이런 법안을 만들어 통제할 만큼 청년들 사이의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면서요?
조현: 당연하죠. 이제 북한사람치고 한국 문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탈북한지 10년이 되었는데 그 이전에 제 딸이 한국 드라마를 보더니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는 치마를 사달라더군요. 제가 그거 구하러 평양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몇 달전에 우리가 BTS이야기도 했는데요. 지금 그들 노래 모르면 북한에선 시대에 뒤떨어진 아이 취급당합니다. 한국식 말투 따라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요. 오죽하면 북한 당국이 ‘오빠’소리도 못하게 하잖아요. 한국 문화가 북한 젊은이들을 바꾸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승재: 그래서 그런걸까요? 최근엔 북한의 고위층 자제나 신분이 꽤 높은 젊은이들의 탈북도 많아지는데, 상당수가 한국을 알게 되어서, 한국에서 살고 싶어서 빠져나왔다는 증언도 많았거든요.
조현: 고위층 자제의 탈북이 많아지긴 하는데 진짜 고위층의 자녀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들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니 북한에 많이 남아있고 오히려 민중들을 외면한다고 봐야죠. 하지만 그중 소수 탈북한 사람들은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 바로 그 정보가 있었던 겁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였다가 한국에 들어온 태영호 씨도 자식을 노예로 만들 수 없어 탈북했다잖아요. 그도 외국에 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봤기 때문인 거죠. 최근에 저는 집안 배경도 좋고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앞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데도 탈북한 한 청년과 식사를 했습니다. 왜 탈북했냐고 물으니까 그가 그러더군요. 학교를 졸업하면 분명 핵미사일 개발하는 곳으로 발령날거고 거기서 일하면 먹고는 살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고요. 이 청년도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알고서 세상에는 다양한 인생이 있다는 것,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정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이승재: 그렇다면 그 정보를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북한 엘리트 계층, 그들의 자녀 아니겠습니까? 북한은 계속 대물림되는 사회니까 이들은 앞으로 북한을 이끌어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사실 한국도 이젠 젊은이들이 전쟁이나 민주화를 위해 피 흘렸던 과정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기성세대와는 사고방식이 또 다릅니다. 이를 빗대어 북한을 생각해보면 북한의 젊은이들도 앞으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이 다른 세상을 그려볼 수도 있고요.
조현: 당장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금의 변화들이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초석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 청년도 한국의 소식을 접하면서 드라마나 노래 뿐 아니라, 우리가 얘기했던 것들, 한국과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청년들의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북한 청년들에게 영향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북한에서 엘리트라고 인정받는 간부, 젊은 간부들도 바깥세상에서 보면 그들이 엘리트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북한 정권의 수하, 노예라고 우리가 보고 있잖아요. 그 이유가 뭡니까?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유잖아요.
이승재: 말씀을 듣고 보니 북한에선 한국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삶과 엘리트의 삶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네요. 북한에서 말하는 엘리트, 그러니까 당 간부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인생,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북한 청년들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조현: 저는 정보만큼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봅니다. 지금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자기 분야에서 엘리트가 된 이유는, 그들이 세상을 잘 알고 세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36세 이준석 씨가 한국의 제1야당 대표가 된 것은 한국 젊은이들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요. 수많은 사업가들은 얼마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파악해 냅니까? 그래서 저는 북한 청년들이 세계 속의 엘리트가 되려면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북한같은 세상에서 공개적인 장소나 토론회에서 얘기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분명히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가능하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며 공유하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상대의 생각도 알게 되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있는 조언도 듣게 될 것입니다. 남한에서 말하는 엘리트라는 것이 사회나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삶이잖아요. 이런 얘기들이 꼭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진짜 자기 자신의 삶, 엘리트의 삶을 살게 하는 지름길이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승재: 네. 그렇군요. 많이 알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세상이 인정하는 엘리트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