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는 누구인가 (1)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학생들이 음악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학생들이 음악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시작하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진행을 맡은 이승재입니다. 앞으로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 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오늘이 남북 엘리트의 역설 첫 시간인데요. 청취자 여러분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신용건: 저는 북한이탈주민입니다. 북에서는 외화벌이에 종사하면서 주로 해외무역 일을 했었고요. 여러 해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생체험을 했었죠. 한국에는 올해 3월에 들어왔습니다.

이승재: 올해 들어오셨으니 따끈따끈한 최근 소식들을 많이 알고 계시겠네요. 저도 기대가 됩니다. 우리 프로그램이 엘리트를 통해 본 남과 북의 사회, 그리고 그 사회 이면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아 보려고 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엘리트라는 말입니다. 엘리트… 북한에서는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닐 것 같아요. 선생님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신용건: 북한에서는 엘리트라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접했지만 느낀 바를 다소 이야기한다면 엘리트는 지적 능력을 쌓아서 부를 창조한,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런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승재: 네.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사전에서 엘리트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첫째는 특정분야에서 뛰어난 사람, 둘째는 사회 지도층이나 지배계급 이렇게 나오네요. 어떠세요. 북한에서도 비슷할까요?

신용건: 그래요. 북한사람 입장에서 ‘엘리트는 최고’라는 인식이 드는데 북한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당연히 엘리트가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의 엘리트는 어원상 뿐만 아니라 실제 본질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재: 그렇다면 오늘 첫 시간에는 남한과 북한사회의 소수 특권층으로 불리는 엘리트라는 개념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 지부터 살펴 봐야겠네요. 사실 남한에서 엘리트라는 말은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 쓰였어요. 권력층, 똑똑한 사람, 지도자층 이런 의미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양하게 되는 단어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간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그런 느낌도 있어서요. 하지만 북한에서의 엘리트는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지네요.

신용건: 북한사회는 현재 합선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정치 대로, 경제는 경제 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남한에서 생각하는 엘리트의 느낌이라면…정치에서의 엘리트, 경제에서의 엘리트, 민간에서는 자기 노력에 의한 엘리트로 갈라지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엘리트들이 북한에서 생각하는 엘리트는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 내부에서 볼 때 대학을 나오고 지식을 쌓았다고 해서 엘리트로 갈 수 있는 기초론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승재: 북한에서 자기 노력으로 엘리트가 되기는 어렵다는 말씀이라면 돈이나 출신성분처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북한에서의 엘리트는 남한에서 비유적으로 쓰는 금수저와 비슷할 것 같네요. 금수저라고 들어보셨어요?

신용건: 네 한국에 와서 들어봤습니다. 북한에서 말하면 백두산 줄기…. 그러니까 발통이 좋다라고 하는데, 그 백두산 줄기가 한국의 금수저와 같다고 봅니다.

이승재: 금수저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남과 북에 똑같이 적용하기가 어렵겠네요. 남한에선 그 개념이 좀 더 폭넓게 쓰이거든요. 금수저는 부자, 권력층들의 자손… 힘 안 들여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을 뜻하지만 더러 상대적으로도 쓰이거든요. 예를 들어 저같은 경우 저 스스로는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또 저 같은 사람도 금수저가 될 수 있는 거고… 하지만 백두산 줄기는 다른 얘기잖아요.

신용건: 그래도 북한의 금수저, 백두산 줄기가 3~4대를 걸쳐오다 보니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이승재: 하지만 남한에선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어도, 그 반대말인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엘리트의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공부 잘해서 의사, 판검사, 고위공무원 같은 엘리트로 꼽히는 시험에 합격하면 되거든요. 북한에선 이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인가요?

신용건: 북한에서 금수저가 아닌 사람들은 금수저의 꿈을 당췌 꿀 수가 없습니다. 천재일우의 기적 아니면 상상할 수가 없어요. 대 끝에서 대가 나고 싸리 끝에서 싸리가 난다는 것이 북한의 신분제도를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죠. 다시 말하면 백두산 줄기는 말을 더듬어도 방송에 출연할 수 있지만 출신성분이 농민이라면 그 사람이 태어날 때 농촌 연고자라는 딱지가 붙게 됩니다. 그것이 법화, 제도화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금수저가 아닌 사람이 금수저 같은 삶을 꿈꾼다는 것은 ‘미꾸라지가 용 잡아 먹는 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승재: 속담 하나로 엘리트에 대한 정의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네요. 남한에선 피타는 자기 노력으로 의사, 판검사가 되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인정해 주거든요. 근데 북한주민들도 당연히 꿈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도 오랜 세월 북한의 평범한 인민이셨는데 꿈 없으셨어요?

신용건: 있죠. 간부가 되는 겁니다. 북한 부모의 심정도 여기와 마찬가집니다. 자식 앞날 생각하고 한 생을 바치려는 그 맘 차이가 없습니다. 공부와 과외를 시키면서 “커서 간부가 되려면….” “너 공부를 잘해야 간부가 될 거 아니냐..” 이런 말을 입에 붙이고 삽니다. 이것이 부모들의 소박한 소원이고 자라나는 세대들의 꿈이죠. 간부 그 자체가 엘리트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그 엘리트층에 한 발이라도 들여놓아야 아이의 삶이 결정되는 거죠. 하지만 엘리트층에 들여놓을 수 있는 계단의 층수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승재: 막 열변을 토하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요즘 북한의 엘리트들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신용건: 북한에선 사실 간부나 노동자 할 것 없이 월급의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월급을 줘도 가치가 없고요. 간부라 해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녜요. 사회주의 분배원칙에 따라서 주니까… 한달 생활은 고사하고 한 달 담배 피울 돈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부들이 왜 잘 사는가? 그들이 가진 권력을 휘둘러서 다스릴 수 있는 백성이 있어요. 권력과 정치의 예속물로써 백성은 간부들에게 차례진 막강한 탄압의 대상입니다. 이걸 제도화해서 전 사회에 일률적, 일색화를 시켰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좋다, 나쁘다 자기 의사에 관계없이 간부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때문에 간부는 정권이 쥐어준 권력을 가진 엘리트로서 백성들의 피땀을 무한히 빨아들일 수 있다는 거죠.

이승재: 네. 오늘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동시에 그 사회를 움직이는 소수의 사람들, 엘리트에 대한 정의만 내렸는데도 그 차이가 엄청나네요. 그래서 앞으로 엘리트를 통해 남과 북의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더 있을 것 같습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 앞으로 남과 북의 엘리트층이 양쪽 사회에 어떤 변화와 발전, 혹은 쇠퇴를 가져왔는지, 또 어떤 자리매김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도 폭넓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저희는 다음주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