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7월 세계 식량가격은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 31%나 올랐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해서 가격이 올랐다는 얘긴데요. 한국에서는 때때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기는 하지만 먹거리 자체는 풍성하잖아요. 그래서 식량부족 문제가 쉽게 체감되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식량위기, 정말 심각하죠?
조현: 그렇습니다. 이런 식량난, 식품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은 기후 변화로 인한 날씨 때문입니다. 보통 20년 이상 지속되는 가뭄을 대가뭄이라고 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대가뭄이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 때 보다 70% 이상 자주 발생하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식량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들, 예를 들어 미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생산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생산도 줄고 무역도 마비됐잖아요. 1차적으로는 세계 농부들이 피해를 보겠지만 앞으로 우리의 식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승재: 걱정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북한의 농업 생산량은 전 세계에서 하위권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매년마다 지정하는 세계 식량 부족국가 중 하나로 북한이 빠짐없이 발표되고 있는데요.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도 지난 9월 노동신문을 통해서 “가장 절박한 과업은 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조현: 북한은 실질적으로 생산을 늘리는 방법을 모른다고 할 수 있어요.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토지인데요. 토지를 국가에서 관리하니 품종 배치나 재배 방식이 지역의 특성에 맞게 이뤄지지 못합니다. 또 주체농법이라면서 국가에서 지정한 작물들을 심으라고 강요합니다. 토양에 따라 어떤 곳은 벼가 잘 재배되고, 어떤 곳은 콩이 잘 재배되고 이런 차이가 있을 거 아닙니까? 또 땅이 부족해서 새 땅 찾기를 한다며 산에 있는 나무들을 다 내리찍고 다락밭을 만들었는데 이러다 보니 해마다 비가 오면 흙이 다 흘러내려 산사태가 나는 거죠.
이승재: 해를 거듭할수록 북한에서 수해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였군요. 제가 가장 안타까웠던 건 북한에서 농업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때가 1970년대라는데요. 50여 년이나 지난 지금이 그때에 비해 생산량이 작다는 것이거든요.
조현: 정확히는 그때의 반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농업생산이 국민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식량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뤄지니까 그래요. 실은 제 전공이 농축산이기도 하고 식량문제는 제가 정말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요. 그래서 전 ‘굿 파머스’라는 단체, 해석하면 ‘좋은 농부들’이라는 뜻인데요. 이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굿 파머스’는 농축산 전문가들이 놓아서 북한과 동아시아 국가의 저소득 농가의 소득을 높여주기 위해서 우량 품종과 기술을 전수하고 재정도 지원해서 농촌활성화를 위해 일하는 NGO단체입니다. 저도 이 단체에 소속되어 북한 대신 아시아 국가들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제가 가진 농업기술을 전수하면서 돕고 있는 거죠. 저희 단체는 주로 라오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를 돕고 있습니다.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 축산업과 연계해서 가정과 마을을 살리는 방법을 택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조사를 통해서 그 지역의 기후와 토지에 맞는 작물과 가축을 선정하는 겁니다. 작물의 씨앗이나 품종들을 기부하고 소나 닭, 가축을 마을에서 협동으로 키울 수 있도록 보급합니다. 또 가축의 분뇨를 이용해 친환경 비료 만드는 기술도 전수하고요. 그렇게 토양을 옥토로 만들어 생산성을 높입니다. 현재 3개 국가에 20~30개 정도 농장을 만들어 주었는데 정보 당 생산량이 높아져서 현지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공산권 국가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저희 활동에 우려를 표하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일단 눈에 보이는 결과가 좋다 보니까 현지 관심도 많이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승재: 선생님도 그 사회에서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치는, 훌륭한 엘리트로 인정받고 계시겠네요. 들어보니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땅을 비옥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이해되는데요. 하지만 한국도 이렇게 땅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지는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조현: 땅을 잘 관리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차근차근 해야 하는 일입니다. 농업은 결국 자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농업 분야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어요. 지금은 80세가 넘으신 조한규 씨라는 농부입니다. 한국에선 ‘조한규의 자연농업’이란 책을 내셨고요. 일본에서는 ‘토착미생물을 살린다’라는 책도 쓰셨습니다. 이분은 땅의 근본을 살리는 것이 최고의 농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땅을 살리기 위해 토착미생물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셨어요.
이승재: 토착미생물이란 땅 안에 있는 미생물을 말하는 거죠?
조현: 네. 땅 속 2km 이내 토양에 살고 있는 미생물입니다. 기본적으로 땅에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낙엽과 열매, 곤충, 동물 등이 발효되면서 미생물이 풍부합니다. 이것이 식물과 나무의 주요 영양분이 되죠. 살아 움직이는 생화학공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한규 씨는 이 토양을 잘 관리하는 법을 연구하신 건데요. 이 분이 내놓은 농법에는 재밌는 것들도 많습니다. 돼지 똥이나 쌀뜨물로 유산균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걸 가축에게 먹이면 영양과 면역력을 높이는 음용수도 되고요. 분뇨를 청소할 수도 있는 거고 식물에게도 유익한 영양제가 되죠. 흔히 병충해 때문에 농약을 많이 쓰는데 생수병에 구멍을 내고 막걸리와 천혜녹즙을 넣어두면 벌레들이 먹다가 빠져 죽습니다. 이걸 또 발효시키면 좋은 영양제가 된다네요. 닭들에게 먹여도 되고요.
이승재: 이런 농법을 자연농업, 요즘은 친환경 농업이라고 하죠. 이젠 한국에서 친환경농업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분이 자연농업을 주장하셨을 1970년대 당시는 한국도 무조건 생산량을 높이던 시대였거든요. 엄청나게 농약을 썼을 때였죠. 이런 상황을 북한과 빗대어 보면 지금 북한과는 맞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조현: 그렇겠네요. 당장에 빨리 생산하고 많이 먹여야 하는 북한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북한도 지금 토지를 제대로 관리하는 법을 몰라 생산해 내지 못하는 거잖아요. 조한규 씨는 말씀하신 것처럼 70년대에는 자연농업의 소출이 적기 때문에 나쁜 사람 취급도 받으셨다고 해요. 간첩이나 국가음모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잡혀가는 안기부에도 의심을 받고 끌려가 고초를 당하셨답니다. 하지만 1980년대~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라고, 한국에서 해외 농산물의 수입 개방이 이뤄지면서 한국에서도 값싸게 해외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되자 이런 상황이 오히려 그를 살렸다네요.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으로 자연농업을 위한 농산물의 품질 고급화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결국 그가 쓴 책은 동이 나도록 팔렸고 조한규 씨는 1995년부터 충청도에 자연농업 연구원을 설립해서 한국 내외 2만여 명 농민들에게 자연농법이론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한국을 빛내는 엘리트인 것 같아요. 자연농업이란 처음엔 소득량이 적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농약을 뿌려 농사한 것보다 훨씬 좋은 작물을 생산해 냅니다. 장기적으로는 미래 한국과 세계 식량 안보를 위한 중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그렇습니다. 조한규 씨는 한국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가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2000년 이후 자연농업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지만 일본 NHK방송은 이미 1998년에 그를 이달의 아시아인으로 선정할 만큼 먼저 주목했죠. 현재 인터넷에서는 그의 농법을 따르고 많은 생산량을 얻게 된 외국인들의 극찬이 이어지고 있고, 세계 28개 국가에서 조한규 씨의 연구를 따른 ‘자연농업 보급기지’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농업기술, 이른바 K-농업 열풍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