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미꾸라지가 용이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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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 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남북 엘리트의 역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 남한에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가진 게 없어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엘리트가 될 수 있지만 북한의 경우는 엘리트, 그러니까 간부가 아닌 사람들이 엘리트를 꿈꾸는 것은 ‘미꾸라지가 용 잡아 먹는 격이다’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북한에서는 계층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했는데 실제로 이런 경우가 전혀 없었나요?

신용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북한도 사람 사는 사회예요. 2500만 명이 살면 2500만이 가는 인생길이 다 다릅니다. 그 인생길에는 자기도 바라지 않았던 기적같은 기회와 순간을 맞닥뜨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기회를 잡으면 자기도 모르게 엘리트로 승화될 수 있고 계급의 탈바꿈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제일 주된 기회가 접견입니다.

이승재: 접견이요?

신용건: 네. 1호 접견이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접견하는 날에는 그의 인생에서 기적같은 변화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승재: 정말 기적같은 일일 것 같은데요.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신용건: 예를 들어 제가 노동자라고 칩시다. 공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정은이 지나다가 말을 시켰는데 그 말에 대답을 아주 잘했다면요. 김정은이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묻는데, “나는 영원히 총대를 잡고 장군님의 방패가 되고 검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한다면 김정은이 잔등을 두드려주며 “꼭 그렇게 되시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모든 김정은의 행각 뒤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기록하는 기록수가 따라다닙니다. 김정은이 ‘그의 꿈대로 군관학교에 가서 총대를 잡게 하라’고 말하면 그것이 운명의 마지막 목표가 되고 이후 체계적으로 양성이 이뤄집니다. 이미 군에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별 두 알씩 받고 승진일로의 길을 걷고요. 이 정도 되면 사단장 급수까지도 올라갑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남한에서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면 사실 뭐 일반인들에겐 영화배우나 가수 같은 느낌일 수 있어요. 사진찍고 악수하고 너무 기뻐하지만 그거 한다고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는 없는 거거든요. 한국에서 엘리트가 되기 위한 기회를 꼽는다면, 공부를 더 해서 학력을 높인다거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 각종 시험들에 통과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인데요. 북한에서는 접견 자체가 큰 기회가 된다는 게 의외네요. 하지만 접견은 제가 생각해 볼 때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겠어요? 평범한 백성들이 1호 접견을 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신용건: 그렇죠. 평백성도 가만 앉아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평백성의 의식도 이제 발전합니다. 이젠 돈으로 부대껴보는 겁니다. 지방 부모들 중에서 머리가 깬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충성의 글 작품집’을 쓴다던가, 기회를 잡아 김정일, 김정은 원수님께 편지를 올린다던가 합니다. 시나 동요들을 하나도 쓸 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인민비(중국돈) 천원 내면 다 만들어 줍니다. 어른이 다 지어서 돈을 내가지고 표지를 묶어 충성의 글 작품집 ‘햇님을 따라 피는 해바라기’… 이런 제목을 달아서 동요 동시집을 만드는 거죠. 해마다 중앙당에서 일부 부서에서 조직하는 폰트가 있는데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동요집 몇 개’ 이렇게요. 그 때 내면 됩니다. 또 도마다 군마다 이를 담당하는 선전선동부의 기관이 있는데 여기를 거쳐거쳐 층층이 돈을 내면서 김정은의 손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김정은이 직접 사인하지 않아도 권한 받은 부서에서 처리만 해도 됩니다. 운수가 좋아 사인을 받거나 한 마디 글줄 “나라의 믿음직한 역군이 되세요” 이런 것, 즉 방침을 받는다면… 그것은 “너는 이 나라에서 어디까지 가라”는 계시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지방에서 태어났다 해도 어린 나이에 김정은의 친필, 문장을 받는다면 정말 대박입니다.

이승재: 그렇게 받는 경우가 1년에 몇 명 정도 되는데요?

신용건: 도 급에서 2명 정도? 그런데 이건 부모들이 잘 몰라요. 돈을 좀 쥐고 있고 머리가 좀 깬 부모들만 알고 몰래 몰래 진행합니다.

이승재: 한국 말로 말하면 정보력이 많은 엄마들이군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건 어떻게든 운이 좋거나 기회를 잡아 잘 보인 사람들의 이야기고, 정말 뛰어나서 엘리트로 올라선 경우는 없나요? 각 지역의 수재들도 많을텐데요.

신용건: 수재들 있죠. 지방에서 태어났어도 정말 실력이 인정되면 무시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수재를 장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 도급 수재 1고등생이 200명이 입학한다면 그래도 2~3등까지는 실력을 봅니다. 나머지는 뇌물로 진행하는 거고요. 이 속에서 뛰어난 실력을 나타내면 국방대학이나 엘리트대학에 갈 수 있고 거기서 물리학, 전자공학, 국방시스템 이런 것들을 전공하고 특정 기술을 습득했다면 국가에 바친 몸이 됩니다. 그러면 부모 형제 사회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지만, 개인의 질적 측면에서는 먹고 쓰고 사는데는 걱정이 다소 없습니다. 개천에서 용은 나지 못해도 미꾸라지가 잉어처럼 감탕에서 위쪽으로 올라온 정도? 그 정도 발전은 할 수 있는 거죠. 그 외에도 요즘 농촌계급 딱지가 붙은 사람들도 농촌 연고자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이나 의식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승재: 남한에서 엘리트가 된다는 건, 개인의 경사이면서 집안의 경사이기도 한데요. 실력있는 엘리트가 되어서도 국가가 원하는대로만 살아야 한다면… 글쎄요. 저는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아요. 남한에서는 엘리트가 되면 동네 경사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예전엔, 특히 지방에서 판사, 검사, 의사가 됐다고 하면 현수막이 붙고 동네 잔치가 벌어지곤 했죠. 남한에서 신분상승이란 의미는 한 개인이 역경을 딛고 성공했을 때 돋보이고 존경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요? 타고난 신분이 아니었음에도 간부가 된 북한의 엘리트들, 한번 엘리트가 되면 탄탄대로를 갈 수 있게 되나요?

신용건: 북한도 그 전에는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짙습니다. 같은 농촌에서 옆집 아이가 좋은 학교에 갔다고 합시다. 그럼 같이 기뻐해주는 인간됨이 옳은데 기뻐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건 내 아들인데 저 집은 돈이 많아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죠. 질투합니다. 그래서… 이렇든 저렇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엘리트가 됐다 해도 그 자리를 지키기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북한은 올라간 사람들이 아래 있는 사람보다 더 위태롭다고 말합니다. 올라갈 수록 처신을 잘하고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 합니다. 한국이나 외국에서 북한 공개처형에 대해 많이 얘기하죠? 자 보세요. 공개처형 땅땅 쏠 때 매달리는 사람들 보면 다 엘리트입니다. 일반 평백성이야 연쇄살인사건이나 몇십 명을 살인하지 않은 이상은 총구 앞에 매달리는 사람없어요. 권력의 희생자들은 다 엘리트들입니다.

이승재: 네. 그렇군요. 어떻게든 계층을 뛰어넘으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들… 그렇게 애를 써서 엘리트 계층에 올라섰는데도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합니다. 어렵게 계층을 뛰어넘은 엘리트들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신분이 상승됐을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북한의 엘리트들 그 다음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그 얘기는 다음시간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 다음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