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 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지난 달에 북한 외교관 한 명이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조성길 전 이탈리아 대사대리에 대한 뉴스 보셨어요?
신용건: 네. 봤습니다.
이승재: 같은 탈북민으로서 느끼는 바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신용건: 이러다 김정은이 오지 않겠는가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안 좋습니다. 어찌 보면 배반이 아닐까요? 받은게 너무 많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나가서 유학을 할만큼 최고의 엘리트 대접을 받았고요. 지금 위치에 올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잖아요. 그들이 누린 모든 부의 전제는 북한 백성들의 피와 땀입니다. 그런 면에서 고찰해 보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죽을 각오로 탈북한 꽃제비 출신의 탈북자와 비행기를 타고 세계 여러나라를 일주하며 ‘여기 가면 잘 살겠네’하며 오는 엘리트층과 좀 차이가 나지 않을까, 이런 섭섭한 생각도 듭니다.
이승재: 그렇겠네요. 그러고 보면 북한 외교관, 정치인의 탈북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분들을 보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북한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았을 만한 분들이 왜 탈북을 했을까 하는 것이거든요.
신용건: 탈북민들 중에는 계층이 많습니다. 다들 여러 이유와 곡절이 있어 탈북했겠지만 지금같이 해외 유학생이나 북한 내 엘리트들은 기본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인데요. 대부분 물질적인 부를 내려놓고 정신적으로 한 수 앞을 내다 본 사람들입니다.
이승재: 한 수 앞을 내다 봤다, 그러니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사는 대신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정신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탈북을 선택한 것이란 말씀이신가요?
신용건: 맞습니다. 말했듯이 넘어오시는 엘리트들은 다들 부자일 겁니다. 사람의 욕구엔 끝이 없듯이 제 주머니에 있는 돈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고요. 북한 사람들은 내가 품고 있는 돈이 언젠가는 폭발할 시한폭탄이라는 의구심도 갖고 있습니다. 또 돈이 있다고 해도 북한에선 자유롭게 쓰지도 못합니다. 대한민국에선 치킨 배달을 해서 돈 5만원을 벌어도 그건 법이 보호해주고 은행이 지켜주고 사회적으로 침범 받지 않는 내 재산입니다. 여기서 단 한 푼이 북한에서 백만 냥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흔히 북한에선 ‘수입 대 지출’ 이라는 말을 잘 하는데 이것이 잘 맞지 않으면 보위부 1위 감시대상입니다. 그러니 엘리트층에서 아무리 많이 벌었다고 해도 과도하게 사용하면 시야에 들어옵니다. 소비생활에서의 향락이 인간 생활의 질을 상승시키지 않나요? 그런데 시야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 돈을 마음대로 쓰고 싶은 욕망도 생기고요. 왜 있는 돈도 못 쓰느냐 의심도 갖게 되고 이런 거죠. 남들보다 엘리트층입니다. 일반인들보다 좀 더 높은 경지에서 자기 삶에 대해 연구해보고 삶의 길을 지향하는 방법으로 탈북을 하는 거죠. 이것이 엘리트의 탈북입니다.
이승재: 지금 말씀이 제게는 가장 와 닿는 것 같아요. 실제로 여기 탈북민들을 보면 생각보다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어려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북한에선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들어보니 북한 엘리트가 되면 ‘주어진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해 보겠다’ 그런 의지가 생길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떤 이유로 나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신용건: 꿈이 이뤄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가마입니다. 가마가 있어야 합니다.
이승재: 가마요? 물 끓이는 가마?
신용건: 네. 기자님은 인류 최대의 발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승재: 음… 저는 바퀴인 것 같아요.
신용건: 아하, 그렇겠군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제 생각엔 가장 위대한 발명이 가마 같습니다. 불과 물은 인류가 생존하기 전부터 존재했고 인간은 발견했을 뿐이죠. 하지만 인간은 가장 위대한 ‘가마’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끓이는 개념으로부터 창조된 거잖아요. 터빈이 생겨서 전기를 만들고 전기가 돌면서 인류 문명이 창조되었습니다. 가마는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물질들을 끓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승재: 굉장히 심오하면서 철학적입니다. 남한과 북한 사회를 각각 가마라고 보신다는 거죠?
신용건: 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같은 조선 민족이라도 서로 다른 진화와 운명의 길을 걷겠죠. 한국에서 꾸는 꿈을 북한에서 꾼다? 환경이 다르다면 그 결과는 천양지차일 것입니다. 저는 자본주의를 찾아 나온 것은 아니고요. ‘앞으로 내 인생을 잘 끓일 수 있는 좋은 가마를 만나야겠다. 나의 꿈을 이뤄보자’ 이것이 제가 탈북한 동기였습니다.
이승재: 훌륭한 가마를 찾아 나왔다, 가슴이 찡합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같은 뜻으로 오셨겠죠. 사실 많은 탈북민들이 “사회주의, 사회주의 하지만 사실 북한에선 돈이면 다 된다”고 하는데, 돈이 좀 있으셨던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면 또 돈이 다가 아니라는 거네요.
신용건: 저는 못살지는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살면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기와집에서 살았으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잘 산 것입니다. 그런데 왜 왔는가? 지금 북한에선 알면 안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담벼락을 높이 쌓고 한 줄기 빛도 보면 안 됩니다. 한 줄기 빛을 보고 따라가면 동굴 입구가 보이고 동굴 밖을 나가면 광명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빛을 본 이들은 ‘이 방향으로 가보자’ 하고 죽음을 각오한 걸음을 시작하는 겁니다. 탈북민 3만 5천 중에 고난의 행군 때 오신 분들이야 고생 많으셨죠. 하지만 지금 온 사람들은 북한에서 제 할 일은 다 해놨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그들 마음 한 구석에는 세상을 내다 본 엘리트적인 의식의 변화가 있었고, 체제에 대한 반감을 탈북이라는 자기 행동으로 표현하는 용기를 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그럼 한국에 오셔서 김대 출신이나 평양 살던 분들, 군 장교들 같은 소위 엘리트층이었던 분들을 좀 만나 보셨나요?
신용건: 네. 탈북민 일부를 만나면서 느낀 건 ‘역시 사막에서 온 생명체구나’였습니다. 탈북민들이 정말 생활력이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탈북민 모임에 갔는데 그분들 타고 온 차 보고 놀랐어요. 한국 분들도 국내산 차를 타는데 서울 바닥에서도 보기 힘든 수입제 차들을 타더라고요. 한국 온지 얼마나 됐냐고 물으니 5~10년 됐대요. 이들 중 한 분은 북한에서 군장교 했던 분이었는데 아마 한 연대급 대대장 이상은 됐을 겁니다. 한달에 얼마를 버냐고 물었더니, 1개월에 700만원을 벌었답니다.
이승재: 700만원이면 6천 달러 이상인데 무슨 일을 하시기에 로임이 그리 많으실까요?
신용건: 잘 시간도 없이 10년 넘게 4가지 일을 하셨답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맘이 찡했습니다. ‘이런 정신력으로 한국에 사니까 수입차를 타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북한 주민들이 모자라거나 잘못 변이 되어서 퇴화된 것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탈북민이라면 여기서 엘리트의 삶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모습을 봅니다. 통일이 돼서 이런 북한사람의 힘과 정열, 한국의 재력과 기술 및 발전된 문명이 화합할 때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이승재: 네. 탈북의 이유로 더 좋은 가마를 찾아 나왔다, 이 얘기를 듣는 내내 한국 역시, 탈북민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훌륭한 가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자 다음 주에는 직업 얘기를 해볼 텐데요. 남한에서 엘리트라 불리는 직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또 북한과는 어떻게 다른지 알아봅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