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 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선생님, 오늘은 엘리트층의 직업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하는데요. 같은 직업이라도 사회적 지위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등이 남과 북에서 다 다를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한국에서 대표적인 엘리트로 꼽히는 분들이죠. 법조인에 대해서 얘기 나눠보지요. 남한에선 검사, 판사, 변호사를 법조인이라고 하거든요.
신용건: 북한에선 이런 사람들을 통틀어 법관이라고 부릅니다. 법관은 검사, 판사, 보안원이 있어요. 변호사는 법관에서 배제됩니다. 북한 주민들의 인식에서 변호사라는 개념은 사실상 없어요. 변호사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승재: 변호사라는 개념이 없다, 저로선 굉장히 놀랍네요. 잠시 변호사에 대해 짚고 넘어가보죠. 한국에선 누구나, 자신이 사회적으로, 혹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국가나 공공기관, 기업 등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도 가능하고요. 재판은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재판에서 이기려면 자기 입장을 대변해주는 변호사가 있어야 합니다.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내가 재판에서 이기고 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북한은 그렇지 않은가보네요.
신용건: 북한 법상에는 변호사가 공적변호사와 사적변호사로 있습니다. 법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상설적인 변호사를 공적변호사라고 하고 사적변호사는 개인이 청구할 수 있는 변호사인데요. 그런데 사적변호사에 대한 개인의 요구가 허락되지 않아요. 그저 법조항에 불과합니다. 재판은 형식일뿐이고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검사, 판사, 취급자인 예심원이 ‘어느 정도로 끌고 가야겠구나’ 벌써 내적인 약속을 합니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서 변호사가 박자를 맞춰줍니다. 한국에 와 보니 어마어마할 정도로 변호사의 역할이 크더라고요. 북한 변호사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개념을 지킨다라는, 표면상 겉치레에 해당하는 직업이다 보니 변호사들이 피심자들을 변론해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그런 활동으로 진행되지 못합니다.
이승재: 말씀을 들어보니 북한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예를 들어 금전이나 폭력 등의 피해를 입었다던지요. 이런 경우에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처럼 들리는데요. 그렇다면 북한 변호사들은 무슨 일을 하나요?
신용건: 각 도, 각 시에 변호사협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부기관도 아니고 인권을 보장한다는 식의 민간단체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각 도, 각 시에 1~2명 있어요. 이 사람들은 재판하기 열흘이나 보름 전에 피심자를 두세 시간 만나보고, 재판 때 변호를 하는데 꼭두각시나 같습니다.
이승재: 억울함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얘긴데, 그럼 판사와 검사도 법적으로 권한이 없나요?
북한은 정치적으로는 3권분립을 하지 못했습니다. 형식적으로만 3권분립을 떠들지만요. 하지만 법에서는 제딴에는 3권분립을 하다고 해서 보안소와 검찰소, 재판소 이 세 개의 독자성을 만들어 주었어요. 그러나 이들의 가장 큰 업무는 사실 정책 감시입니다. 그저 조선노동당이 내려보낸 방침과 정책을 어떻게 집행하는가 정책감시가 이뤄지는 기관들일 뿐입니다. 일반 범죄나 형사 범죄를 제대로 보지 않아요. 하지만 필요하다면 형사범죄를 취급할 권능은 있습니다. 그저 기본적인 일들이 정책감시, 즉 공장기업소들이 최근 당의 방침을 어떻게 집행하는가, 단위 협동농장일꾼들이 당의 방침을 어떻게 집행하는가 이런 겁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정책감시 관련해서 법 집행은 각 기관마다 대체로 공정한가요?
신용건: 사실 재판과 검찰이 잘 맞지 않습니다. 법전은 하나인데 법전이 세부화되지 못하다보니 유관이 너무 많아요. 검사는 피심자를 살리고픈데, 인간적으로 뇌물문화가 풍성하다 보니까 판사는 자기가 뇌물을 먹지 못했다라는 감정에서, 같은 법전을 놓고 다르게 걸고 듭니다. 그럼 교화소 1년짜리가 5년이 되는 거예요.
이승재: 남한에선 사회가 발칵 뒤집힐 일이네요. 남한에선 3심제도라고 해서 첫 번째 재판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다른 판사와 검사들에게 3번까지 심판을 다시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럼 직업적으로 북한에서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되려면 역시 법을 공부해야 하기 보다는 출신 성분이 좋아야겠네요?
신용건: 북한 역시 원칙대로라면 법을 전공해야죠. 법에 기초해야 공정하게 모든 사건을 취급할 거 아닙니까? 하지만 법을 전공하지 않아도 검찰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방 단위의 검사 등용은 해당 지방 당위원회, 군당위원장이라던가 조직비서라던가 이 계층에서의 합의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검사되는 것이 힘들지 않아요.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도 줄타기를 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 비해서 보면 법에 정통하고 그에 맞는 학력과 경륜을 쌓는 힘든 공정이 사실상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승재: 남한과는 거의 직업적인 태생부터 다르네요. 남한에선 판사, 검사, 변호사 되려고 10년 동안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엘리트로서 인정을 받고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 거죠.
신용건: 북한 법관은 높은 수준이 못됩니다. 흔히 검찰소에 10명이 근무한다고 합시다. 법을 전공한 사람은 2명 정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농업대학, 산림대학, 공업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건 하나를 담당할 때 즉석에서 법전을 뒤져서 ‘이 사람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으니까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가야겠구나’라며 자기 감정대로 조서를 씁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한 부서에 1명 정도,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저 사람은 어떻게 검사를 하나’ 이렇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승재: 남한에서 법관이 되면 일단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 어려운 공부를 해냈다는 데서 기본적으로 존경을 받고요. 법관으로서 사회적인 명망과 인품, 영향력까지 갖춘 분들 중에는 정계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사법에서 입법으로, 그러니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떤 문제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판단하다가, 정치인이 되어 사람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일을 하는 거죠. 북한에서 법관의 영향력은 어떤가요?
신용건: 흔히 북한에서 “한 가족, 한 계층에 법관 한 명은 꼭 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살아가기 편하죠. 그런데 북한에선 ‘법관’하면 공정성이라기 보다 독재성이 먼저 떠오릅니다. ‘법관’이 능력이 있다 그러면 ‘저 사람은 그만큼 못됐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승재: 그러면 엘리트는 엘리트인데 지식과 실력을 갖춘 엘리트라기 보단 간부 즉 권력형 엘리트다?
신용건: 네. 어떤 측면에선 좀 더 힘있는 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일꾼이 100명이라면 검사는 1명인 격입니다. 어제의 농업전문학교 학생이 졸업하자마자 인맥에 의해 검사가 되었다면, 오늘부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북한의 법관은 직접적으로 인민들을 탄압하고 인민들의 피땀을 빨아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승재: 네. 오늘은 남과 북, 같은 엘리트로 여겨지지만 그 태생부터 의미까지 전혀 다른 법조인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남한에서 인터넷으로 ‘법의 목적’을 검색해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특히 국가기관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법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다” 남과 북에서 법조인의 역할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 다음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