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지난주에 우리가 사회적으로 엘리트층에 속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에 대해서 얘기해 봤는데요. 남한에서 판사, 그러니까 법관이라는 직업은 되고 싶다고 해도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하기 어려워 아무나 될 수 없지만 늘 선망의 직업으로 꼽히는데요. 북한에서도 법관이 되고 싶은 직업 중 하나라면서요?
신용건: 맞습니다. 제일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사실 법관은 사람들이 제일 경멸하는 직업인데요. 인민들이 경멸한다는 것은 인민들과 직접적으로 접촉이 많은 대상이라는 얘기죠. 당 일꾼에게 뭐 걸렸다고 해서 당장 입는 피해는 없어요. 그런데 오늘, 자전거를 타고 가다 지나가는 법관에게 걸렸다 칩시다. “너 자전거 번호가 없구나. 면허증 좀 보자” 이렇게 말한다고 해 봐요. 자전거 면허증 소지하고 다니는 사람이 북한에서 몇이나 됩니까? 면허증 없다고 말하면 벌금 5천원 때립니다. 교화소 수감자들 보면 70~80%가 법관과의 개인적 알력 관계에서 시작된 범죄항목입니다.
이승재: 그러니까 북한에서 법관은 법대로 공정하게 판단을 해서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얘기네요. 그래서 사람들이 경멸하면서도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거죠?
신용건: 네. 원래 법은 사명 자체가 사회성과 집단성을 잘 유지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런데 북한에서 법은 얼마든지 흔들리고 변할 수 있어요. 왜? 법 위에 군림한 누구 하나 때문에. 법은 그 한 사람의 감정에 맞춰야 해서요. 결국 나머지 인민 모두를 그 일의 도구로 전락시킨 겁니다.
이승재: 아니 북한에도 헌법절이 있고, ‘헌법에 의해 인민들의 자주적인 권리와 행복한 생활이 담보되고 있다’고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법 적용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건가요?
신용건: 김정은이 정권을 잡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떠들던 것이 법치주의입니다. “법을 강화하고 세분화하고 법무생활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높여라”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법무생활지침서들이 출판되어 발포됐어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형사소송법을 제외한, 민사소송이나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 또 국가경제 체제에서의 법무생활지침이고요. 형사소송법에 대한 지침서는 없습니다. 북한에선 형사소송법 자체가 극비입니다.
이승재: 그래요? 그런데 사실 형사소송법은 주로 범죄를 다루는 법조항들이니까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선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신용건: 그렇죠. 그런데 바로 그것을 공개하는 날에는 저들의 수술도구가 다 드러나는 겁니다. 현재 북한 사회, 물질문화 생활이나 경제생활이 사회주의 법전이나 사회주의 이론에 맞춰서 돌아가고 있지 않아요. 그런 조건에서 법을 다 공개해 놓으면, 사람을 잡아 그 사람을 취조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이 자기 정당성에 대해 얼마든지 증명하고 변론할 수 있잖아요.
이승재: 그렇군요. 반대로 한국에선 법이 완전히 공개되어 있습니다. 궁금하면 언제든 인터넷을 통해서 법조항을 찾아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만약 북한의 인민 모두가 실생활에 적용된 것과는 다른 법 규정을 알게 된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겠네요.
신용건: 그래서 법은 법대로 조정하고 있고 이것을 비밀로 하고 있으면서 독재수단으로 이용해야만 주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북한에서의 법은 인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질서 원칙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승재: 북한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북한에서 법관이 엘리트이면서 왜 경멸의 대상이 되는지 잘 알겠습니다. 반면 한국의 판사, 검사, 변호사 중에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는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계로 진출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법을 토대로 사람을 구제하거나 형량을 선고하다가 법을 제정하는 입법의 영역에 들어서는 건데요. 북한은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하셨죠?
신용건: 전혀 다릅니다. 법을 배우고 법관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정계, 정치라는 영역에 들어서지 못합니다. 오히려 법을 잘 알기 때문에 정치하면 안됩니다. 왜? 정치 자체가 법을 만드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부족하고 모자란 사회 안에서 정치인들이 외치는 소리 자체가 법에 어긋납니다. 북한의 정치는 독재성을 띄지 않습니까? 조선노동당의 일률적인 사상체계 밑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체제이지 서로 공존해서 협력하는 관계는 아니니까요.
이승재: 말씀만 들어보면 북한의 법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없겠는데요. 그래도 소수의 사람들, 인민을 위해 일하는 누군가는 있지 않을까, 한번 찾아보고 싶은데… 없을까요?
신용건: 존경받는 법관이면 ‘오빠시’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오빠시’라는 말 들어봤어요?
이승재: 아니오. 처음 들어봅니다.
신용건: 북한에서는 흔히 법관들 보고 오빠시라고 합니다. “이 오빠시 같은 놈아!” 일제강점기에 북한에 유명한 김일성 삼촌이라는 분이 파발경찰을 습격해서 오빠시 경찰서장을 사살했답니다. 혁명영화에 나와요. 영화에서는 일본 사람들의 악독함을 보여줘야 하니까 오빠시 역이 악독하게 나오거든요. 최근 북한의 법관들이 그렇게 악독하게 놀아요. 따라서 법관으로서 ‘좋다’, ‘저 사람은 좋은 법관이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고기 먹지 않는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모순이죠.
이승재: 그렇군요. 한국의 법관들은 은퇴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일반 회사에서 법 고문이 되어서 자신이 가진 법 지식을 활용해 또 다른 일을 하는데, 인민들이 법을 알면 안되는 북한에선 법관들이 은퇴한다 한들 무얼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네요.
신용건: 개밥의 도토리입니다. 명예롭게 그만둔다고 하면 나이 60살이 될때 제대되는 것인데요.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는, 출당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철직되거나 혁명화 딱지가 붙어 제일 힘든 공장단위나 농장단위의 일반 노동자, 농민으로 배치됩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나 농민과도 휩쓸리기가 힘들어요. 오빠시 출신인데 환영을 안 해주거든요. 잘됐다고 박수를 치고 이젠 같은 급수가 됐다고 침을 뱉으면 뱉었지, 그들과 인간적으로 동질감을 가져 곱게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법관들도 이때 겪게 되는 심리적, 경제적 고충이 큰 거죠. 남한에 와보니 ‘사’자 하나 따자면 상당히 큰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고 하지 않아요? 검사가 되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력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겸비해야 하는 지식의 탑을 쌓고, 그것을 넘어서면 자기가 쌓아놓은 탑을 다시 헐면서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까지 따라서지 않나요?
이승재: 그것 뿐이겠어요? 또 채워 넣어야 해요. 사회의 변화와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법은 계속 바뀌잖아요?
신용건: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고비를 이겨내는 그런 분들이 하는, 참 엘리트 층에서도 고급 높은 층의 엘리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수술하는 기법을 배우고 수술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에요. 검사라는 칭호를 받고 인민들의 운명을 수술하면서 점차 올라가면서 축적하는 그런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의 검사는 엘리트 급으로 본다면 급진적인 엘리트가 되는 거예요. 벼락부자 나오듯이, 하루 아침에 인맥에 의해 급진적 엘리트가 됐으니 그만큼 값과 무게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치가 요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법 집행 자체가 무게가 없는 거예요. 엘리트라기보다 그들은 좀 가짜 엘리트 같다, 그런 감이 듭니다.
이승재: 네. 2주간에 걸쳐 남북한에서 엘리트로 인정받는 직업, 법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북한의 엘리트는 엘리트지만 급진적인 엘리트, 가짜엘리트 같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누구 하나가 아닌 인민을 위한 진정한 법치국가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법관의 위상도 세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희는 다음주에 만나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