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북한에서도 남한 드라마가 인기라던데요. 작년에 나온 ‘스카이 캐슬’ 이란 드라마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보면 한국의 부잣집 엄마들이 다들 자기 애들을 서울대 의대 보내려고 혈안이 됐어요. 그 정도로 한국에선 의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생각하거든요.
신용건: 한국에 오니 의사의 가치가 대단히 높더만요. 한국은 의사가 검사, 판사와 같이 3대 ‘사’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만큼 의사의 가치가 높고 그들의 역할이 크다 보니,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평균수명 자체가 올라가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승재: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나요? 그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까 저는 이런 현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말씀하시는 느낌이… 북한에선 그렇지 않은가 봐요?
신용건: 북한에서 의사는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잔돈벌이나 하는 일입니다. 북한은 다 무너진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도 교육과 의료만큼은 사회주의 본색을 지키라고 정책적으로 인민에게 요구합니다. 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에 비해 반드시 표면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무상치료, 무료교육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그 시스템이 다 무너지고 인민 내부 생활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돌아간 지 30여 년이 됩니다. 위정자들은 사회주의라는 다 허물어진 집을 가지고 그것이 ‘빨간 사회주의다’라고 도색을 해야 해요. 그 도색을 위해 무상치료와 무료교육을 끝까지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니 의사들이 환자로부터 담배 한 갑을 받기가 힘들어요.
이승재: 사회주의 이념 때문에 북한에선 의사가 한국에서처럼 최고의 직업이 아니라 단순한 근로자라는 말이군요.
신용건: 네. 월급이 대단히 보잘것 없어요. 의사들은 정말 자기 개인 일에 부대끼기 힘들어요. 출근을 만출근을 하거든요. 출근은 다 하는데 받는 월급이 술 한 병 정도? 국정 가격에 준한 월급이라는 거죠.
이승재: 그렇다면… 물론 북한에서 자기 직업을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의사란 인기가 좀 없는 직업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신용건: 아닙니다. 대신 이제 자본주의적인 생활방식에 따르는 물질관계가 북한 사회에 형성 됐잖아요. 인민들의 인식 자체가 의사들도 살기 힘들다는 걸 압니다. 인민들도 자기 노력을 바친 만큼 사회에서 금전적 이득을 챙겨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자기가 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그 노력의 가치를 스스로 보상해주는 버릇이 생겼어요. 좋은 풍이라고 할 수 있죠. 다 의무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인사차림을 해요. 최근에 들어선 그것이 민간에서 이중가격으로 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주사바늘 한번 꽂아주면 천원 혹은 이천원 이렇게요.
이승재: 의사에게 돈을 준다는 게 병실이나 순서 같은 걸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치료받기 위해 의례적으로 뇌물을 고이는 행위가 아니라는 건가요?
신용건: 아닙니다. 그 정도는 뇌물로 생각 안 되고요. 도덕적인 측면으로 평가됩니다. 만약 그런 인사차림을 안 하고 싶다면 규정대로 치료받으면 돼요. 한국에서도 의사의 진료를 받고 그로부터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 가야지 약을 주지 않습니까? 그냥 약국 가면 약 안 주잖아요. 북한에도 절차가 있습니다. 진료소에 가면 됩니다.
이승재: 제가 듣기론 북한에서 진료소 가도 의사 만나기 힘들다고 하던데요.
신용건: 네. 사회주의 의료 시스템엔 왕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료소에서 왕진을 나가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지금 누가 이득 나지 않는 왕진을 부르면 고운 얼굴로 갈 의사가 없거든요. 의사도 다른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하니 진료소 가면 당일 근무자가 1명 정도만 있습니다. 진료 받기도 어려운데 받아 봤자 뻔하고 빤한 소리예요. 고급스러운 치료를 받고 싶다면 기술이 좋은 의사를 자기가 자초하는 겁니다. 그러니, 의사가 요구하지 않아도 인사차림을 해야 다음 치료도 쉬워지죠. 이건 호상 협력의 관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승재: 북한에선 의사가 일반 근로자와 별반 다르지 않아 직업적인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인사차림도 받고, 왕진도 하게 되면 실력이 좋은 의사들에게 환자가 몰리면서 벌이가 달라지겠네요.
신용건: 네. 대신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모범 의사가 됐다면 의술이 높은 만큼 고임이 많아요. 예를 들어 충수수술을 하나 했다면 한 끼 식사를 조직하고 집도의에게 10만원, 간호원들에겐 5만원 혹은 옷을 한 벌씩 사 준다던가, 그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인사차림을 하는 겁니다. 북한도 이젠 배를 째고 출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절제하고 출산을 한다고 하면 ‘아! 그 수술은 얼마 들어간다’ 이런 기준이 있습니다.
이승재: 그런 관례가 자리 잡았다면 의사들의 실력 차이도 점점 더 벌어지겠네요. 한국에서 실력 있기로 소문난 의사를 만나려면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거든요. 최근에는 실력에 더해서 친절까지는 갖춰줘야 이제 환자들이 찾아와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장사니까요.
신용건: 네. 그래서 도덕적으로 돈을 지출해주다 보니 의사들은 그것을 거부감 없이 다 받아요. 이렇게 자기 살림을 유지해 나갑니다. 다음으로 농장이나 산림구역에서 좀 침술도 있고 봉사성도 있고 그렇게 신망이 있는 의사들은 팬들처럼, 주치의처럼 의사를 집으로 불러서 혈압 재고 주사 찌르고… 이렇게 초빙해서 관리받는 환자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승재: 모든 직업이 다 자기 계발이 필요합니다. 특히 의사는 정말 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데요. 병이라는 건 점점 다양해지고 있고 이 가운데 우리 생명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되는 일이니까요. 한국 의사들은 꾸준히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오는 사람도 많고요. 한 분야에서 전문의가 되었더라도 어떤 병이나 질환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 의사들도 이런 연구와 자기 계발이 있겠죠?
신용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못해요. 동의학이나 내과 등은 자리지킴을 하는 의사들이 많죠. 하지만 직접 집도를 하는 외과의사들을 중심으로, 자기 실력으로 올라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인지하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지방 리의 진료소 의사라고 해도 자기가 놓은 침 한대가 효과가 있어야 콩 1KG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자기 사활이 걸린 문제니까 점점 경쟁력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북한의사들은 재래식이고 경험주의적이라고 해도 대담한 시도가 많이 있고, 기술적으로 약하다고 무시하기는 힘들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승재: 네. <남북 엘리트의 역설> 오늘은 의사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잔돈벌이 정도 하는 일에서 실력과 명성을 갖춘 엘리트로 변화하는 북한 의사의 모습도 새롭게 엿볼 수 있었는데요. 지배 계층으로서의 엘리트는 아니지만 인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엘리트로 성장한 북한의 의사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엔 북한 사회에서 의사들이 끼치는 영향력과 이들이 일으키는 작은 변화들에 대해 들어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