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2)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다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 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남한에서 엘리트로 손꼽히는 직업, 의사가 과연 북한에서도 엘리트일까? 지난주에 우리가 이런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북한의 의사들도 많이 변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일부 소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자기 개발도 하고 있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환자 관리도 시작됐고요. 한국 얘기도 한번 해보지요. 선생님, 한국에서 병원 가보시니 어떠셨어요?

신용건: 네. 가 봤습니다. 제가 한국와서 진찰받아 보니 북한 의사들과 상당히 다릅니다. 감기 걸려 병원 가니 의사 선생들의 입장이 상당히 무방해 보이고요. 컴퓨터 자판만 툭툭 때려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아, 이거 좀 낯가림 하는 거 아니야?’ 오해할 정도였어요. 말하자면 자기 경험이나 실질적 육감보다 나타난 증상에 따르는 컴퓨터적인 결과를 알려주는 느낌이었어요.

이승재: 한국에선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 기본적으로 컴퓨터에 모든 내용을 기록합니다. 진단이나 다음 치료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이 내용은 간호사를 통해서 환자에게 전달되고, 환자는 그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살 수 있거든요. 이게 체계적으로 일하는 방법인데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신용건: 네. 북한 병원은 진료를 한다면 첫째, 사상의학부터 떠듭니다. 그전까지 사상의학에 대해 북한은 중시하지 않았어요. 관상을 기초로 하는 것이 미신적인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던 것이 평양에 종합병원, 연구소도 나오면서 사상의학을 정식으로 논리화 하였고, 사상의학도 고려의학의 한 종류로 인식하면서 대외적으로 그것을 선전하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 병원에선 무조건 첫 번째, 맥을 짚어봐요. 그 다음, 상을 봅니다. 그 다음으로 문진을 해 봅니다. 이렇게 감각적인 방법으로 진단을 내리는데, 그 진단이 상당히 신기할 정도로 맞습니다. 그렇게 맥만 짚어보고 오장육부에 대해 다 평가를 내립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맥 좀 짚어봤으면 해서 아무리 내 대도 짚어보지 않더라고요.

이승재: 한의원에 가야지 짚어 봐요.

신용건: 아, 그런가요?

이승재: 네. 북한과 달리 한국에선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기초부터 치료방식까지 다른 분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선택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서양의학으로 치료하려면 병원엘 가야 하고, 동양의학으로 치료하려면 한의원에 가야 하는 거죠. 또 다른 점이라면 한의원은 신체 전반적으로 살펴보는데 반해 병원은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픈 곳에 따라 내과, 피부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치과, 정형외과 등 잘 찾아서 가야한다는 거죠.

신용건: 네. 북한은 1차 치료단계 즉 진료소 단계에선 내외〮과가 따로 없습니다. 진료소 의사들은 내과나 외과를 불문하고 전체적으로 일반 치료를 하면 되고요. 거기서 내과나 외과의 부분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할 때 상급병원인 군, 시 병원에 의뢰해서 보내주는 시스템입니다.

이승재: 남북한이 다른 듯 하지만 또 비슷한 부분도 있네요. 남한도 이런 개인 병원들, 저희는 1차 병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해결 안 되면, 그러니까 병이 위중하면 2차, 3차 병원에 갑니다. 3차 병원은 흔히 생각하는 아주 큰 병원, 대학병원, 종합병원이에요. 3차 병원에는 아무래도 최첨단 의료장비 등 설비나 규모가 가장 잘 갖춰져 있죠. 그만큼 실력과 경력이 높은 의사들도 많고요. 마찬가지로 북한의 군, 시 병원 의사 수준도 확연히 높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신용건: 급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총체적으로는 배치 형태의 파견이기 때문에, 그건 자기 의사라기 보다 군 당이나 간부 사업적으로 진행되는 배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흔히 학과를 선택할 때, 진짜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외과를 선호합니다.

이승재: 외과요? 요즘 한국 의대생들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쪽을 선호한다고 하는데요. 병원에서 당연히 치료도 하지만 미용을 목적으로 시술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그 외에는 또 내과… 피 안보는 쪽? 여기도 인기가 있다는데, 북한은 좀 다르군요.

신용건: 네. 북한에선 제일 선호하는 것이 외과의사들입니다. 한국처럼 고뿔이 조금 걸려 기침 몇번 해도 병원 찾아가는 그런 풍경이 아니거든요. 기침이야 아스피린 몇 번 먹으면 됩니다. 북한 사람들이 면역력이 강해요. 어지간한 고뿔들은 왔다 갑니다. 그것이 병으로 썩어 곪을 때쯤 병원에 가는데, 가면 “아, 이건 째야되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죠. 외과 대상이 됩니다.

이승재: 네. 이제야 이해가네요.

신용건: 그래서 “의학을 하려면 외과를 해라” 이것이 북한 의사들 속에서 통하는,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입니다. “내과는 전망이 안보인다. 외과를 배워라”… 외과에서 능력자들은 오늘 한번 째면 수익이 한번 크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외과쟁이들의 살림이 넉넉한 편입니다.

이승재: 지난주에 선생님께서 북한의 의사라는 직업이 남한에 비해 가치 있게 여겨지지 못하는 이유가 의사들이 로임이 적으니 치료에 집중할 수 없고 그래서 농사일까지 해야 하는 점, 그런 것들을 짚어 주셨는데요. 지금 말씀하신 것과 연관시켜 보니 가장 큰 이유가 사람들이 병원을 쉽게 갈 수 없어서가 아닐까요?

신용건: 맞습니다. 북한 의사들이 한국 의사들에 비해 가치적으로 선호받지 못하는 원인이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은 먹고 살 걱정이 없다고 보잖아요. 먹고 살되 잘 살고 좀 더 오래 살고픈 욕망은 누구나 같거든요. 오래 살려면 병원과 친해져야 합니다. 예방을 하던, 관리를 하던 그 자체가 의학을 떠난 독자의 길이 아니니까요.

이승재: 맞아요. 농담으로 우리 그런 말합니다. 평균 수명 늘어난 만큼 약값 더 들어간다고요.

신용건: 맞아요. 그러나 북한에서는 죽을 병을 만나고 난 후에야 접촉할 수 있는 사람, 그때에 고마움을 느끼는 대상자가 의사입니다. 병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의사가 알고 지내는 친구일 뿐이지 그 이상의 가치로 인정되는 경우가 없어요. 그것이 가치적으로 볼 때 한국 의사와 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선생님과 2주간 의사라는 주제로 얘기해 봤는데 제 느낌은 그래요. 북한 의사들은 남한의 의사들처럼 존경 받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가 좀 적용되면서 개인별로 위상이 높아지기도 하고 그들의 영향력도 보이지 않게 커지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생명을 살리고 치료하는 일인데, 한국의 의사들이 갖고 있는 엘리트 의식, 북한의사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신용건: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엘리트 의식이 많은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최근 북한에서 의사들의 값이 상승하고 있어요. 돈주 계층 성장을 비롯해서 북한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잖아요. 그 발전에 따라 인간 의식 자체도 발전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더 오래살고 더 유족하고 더 건강하게 살기를 지향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호담당의사가 아니라, 자기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건강을 부탁할 수 있는, 그런 기능이 있는 의사들을 한 명씩 고정해 놓고 있습니다. 이름 있는 의사들은 자기가 담당하는 대상자들을 항상 돌보듯이 그렇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가치의 상승 아닐까요?

이승재: 네. 북한에서 주어진 것만 하던 의사의 역할이 조금씩 변하고, 무엇보다 그 변화를 자신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정 생명의 귀중함을 아는 의사,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라면 엘리트로서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