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영재교육 (2), 거꾸로 사회 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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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북한의 영재교육 또 얘기해보죠. 북한이 국가적으로 영재를 교육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어요. 예술 영재들, 맞죠?

신용건: 그때까지만 해도 사상의 일색화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1960년대 초에 김정일이 정계에 발을 들여놨고 그로서는 후계자로 선출되냐 마느냐 하는 데서 선대 수령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정일이 선택한 방식이, 사상으로 김일성주의를 일색화하기 위한 사업, 즉 영수를 찬양하기 위해 전 사회에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영수를 찬양하기 제일 좋은 수단, 바로 선전선동 수단에서 제일 큰 영향이 있는 것이 예술 분야니까요. 이를 양성하기 위해 영재교육에 힘을 놓게 된 것입니다.

이승재: 아, 그래서 북한의 영재다 하면 예술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군요. 지금은 북한에서 김일성주의가 완성됐다고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젠 예술이 아니라 또 다른 분야에 주력할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지난주에 도내 1고등중학교, 평양외국어학원 이런 영재교육 기관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신용건: 지금은 금성학원이 국가적인 수재양성기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엔 금성예술학원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다양한 수재를 양성하고요. 특히 IT산업이 활성화되고 전 세계적으로 4차산업시대가 당도하면서, 금성학원에선 중1때부터 벌써 전문적으로 정보산업을 위한 교육을 진행합니다. 알고리즘 작성, 프로그램 작성, 컴퓨터의 모든 기초부터 시작해서 전문적 교육을 받습니다. 이들이 북한 해커의 미래, 기본체입니다.

이승재: 북한의 미래다… 졸업하면 그야말로 지식에 있어선 북한의 최고 엘리트가 되겠네요.

신용건: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최고 엘리트급 교육을 받는 중등생들이죠. 금성학원에서 정보산업, 컴퓨터를 배운 학생들은 리과대학이나 국방대학으로 진출합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가 최고 엘리트 대학인 것 같지만, 사실 북한 실질적 과학기술의 가장 밑바탕, 핵심은 리과대학과 국방대학입니다. 어느 정도로 급수를 볼 수 있냐면 바로 이 국방대학에 김정은 명칭을 달았어요. 보이지 않고 소문나지 않았지만 봉쇄된 지역에서 일체 출입을 금지시키고 철저한 감시 속에서 교육하는데요. 리과대학은 그런대로 공개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방대학은 들어가면서 군복을 입습니다. 그 안에서 조직생활을 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게 되죠. 국방대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는데 해커가 되는 프로그램, 전자기파나 스텔스를 뚫는 분야, 이렇게 비공개적인 학문이 다 있습니다. 결국 군사기술이라고 하면 그 자체가 경제를 능가하는 첨단과학기술의 총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 거기서 바로 해커양성을 위한 사이버전 인재들이 양성되는 겁니다.

이승재: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엘리트는 자신의 노력으로 올라간 자리에서 개인적 성과를 이룰 뿐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의 예를 든다면, 뛰어난 과학자가 태양열 에너지 사용기술을 만들어서 전기 절약을 시켜준다던지, 더러운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공기청정기’ 이런 걸 만들어서 호흡기 병에 걸리 않도록 도와준다던지 이런 거요. 그런데 북한은 이 엘리트들이 국가의 목적으로만 이용된다는 거잖아요?

신용건: 일단 그렇게 수재급이 공과를 전공했더라도 일반 사회에 나가서 자기가 엘리트로서의 꿈을 실현하긴 힘듭니다. 공과대학, 이과대학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국가적 차원에서 쓰이지 못하고 사회에 나갔다? 그러면 대학 졸업생이라는 간판 밖에 남지 않는 것이죠. 배운 그 많은 지식과 정말 첨단 기술을 사용할 데가 없다, 인정받을 데가 없다는 거죠. 그럼 이과대학 최우수 졸업생이 공장에 나가서 배운 기술을 품값으로 바쳐서 화학전문가로서 성분 추출하는 일에 종사하고 푼돈을 받아서 삽니다. 이런 인생이 부지기수죠. 연구생, 박사원생, 화학전문가들이 잘못 발을 들여서 생활의 고역에 시달리다 보면 약을 생산하거나 이런 부분에 잘못 이용됩니다. 결국 북한은 수재를 양성해 놓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회 악의 근원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힘 없는 자가 엘리트로서의 삶을 누리자면 최고의 경지에서 반드시 국가에 종속되는 인물로 선발되어야만 하는 거죠. 로봇과 다름없이 지정해준 구역에서 지정해준 일과 지정해준 삶에 종속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없죠. 단지 먹고픈 것 먹고 그래도 선생님이나 박사님이나 연구사님이나 이런 호칭으로 불리면서 닫힌 구역 안에서 작은 행복의 삶을 창조해 나간다? 이 정도. 뭐 창조한다기보다 ‘보장받는다’ 이렇게 표현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승재: 네 저도 충분히 공감이 되네요. 선생님은 남북한의 두 체제를 경험하셨잖아요? 남한에서 자란 영재와 북한에서 자란 영재가 각각 성공한 어른이 됐을 때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런 거겠죠.

신용건: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독수리라고 합시다. 그런데 휘발유 넣는 도람통 뚜껑을 따서 여기에 독수리 한 마리를 넣고 다른 한 마리는 밖에 놓자고요.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한쪽에서는 독수리가 날아오르는데 도람통의 독수리는 제 아무리 독수리라도 솟구치질 못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북한(사람)의 머리라고 녹슨 머리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능력과 자질, 천부적 기질이 있는 민족인데요. 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차례진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로 상승하는 길? 이것은 각자 자기에게 달렸습니다. 자기의 노력만큼, 자기의 열정만큼 날 수 있습니다. 물론 날면서 구름을 만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바람을 만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이것은 사회적 요인이고 운명이라고 보자고요. 하지만 절대다수의 운명들은 성공할 수 있다는 전제가, 우선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통해 엘리트로 갈 수 있는, 열려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북한에서 흔히 “땅 속의 보석도 꺼내서 닦아야 빛이 난다”는 말이 있는데 꼭 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땅 속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있겠습니까? 꼭 찾아서 닦아야만 빛이 난다는 거죠. 이것만이 북한에서 엘리트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도 봅니다

이승재: 북한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만 어린이가 나라의 역군, 곧 국가의 미래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떤 사회가 고여 있듯이 계속 그 자리에 있다면, 국가의 미래가 될 아이들의 교육이 어떤지, 영재교육의 방향이 어떤지도 잘 살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우리의 미래를 여는 길일 테니까요.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