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선생은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한국은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하는데요. 작년 스승의 날, 경상남도 진해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답니다. 스승의 날이라면 학생이 스승께 꽃을 달아드리고 감사를 표하는 날인데 이 학교에선 되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깜짝 선물을 했다고 하네요. 전교생이 먹을 두툼한 고기, 스테이크 500인분을 즉석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구워줬다는 겁니다.

조현:저도 그 뉴스를 봤습니다. 학생들 마음에 스승의 은혜가 절로 새겨질 것 같아요. 스승의 날에 대한 의미를 오히려 더 깊이 느끼게 한 소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북한에서 좋은 스승이 있었는데요. 평성수의축산대학의 수학부 교수였던 김태경 박사가 기억납니다. 수학이라는 과목을 축산사업 발전과 정말 잘 연관시켜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제대군인 학생들은 군대나가서 고생하고 왔다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학생들 밥이나 술도 꼭 사주고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신 분입니다. 지금도 많이 생각나네요.

이승재:그런 분이 평생 기억에 남죠. 자, 이렇게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선생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눠봅니다. 북한도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면서 교원양성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뉴스를 봤는데요. 다만 선생님은 북한의 교원들 지식이 아직 좀 부족하다고 지난주에 말씀해주셨어요.

조현:그렇습니다. 북한은 교원을 뽑는데 실력이 필요하지 않으니 교원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나 선발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고요. 한국 교사들은 일단 교사가 되는 시험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학과 지식이나 입시 교육에 있어서는 단연 최고라는 사실을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국 교사들이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한국 교사는 정년보장이 되는 직업이니까 한번 들어서면 안일한 태도로 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기잖아요?

이승재:사실 저 어렸을 때는 배우면서도 교육방식이 너무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선생님이 간혹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그런 선생님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방식은 해마다 새로 연구, 발표되고 그러면 자율적으로 방학마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배워서 다음 학기에 새로운 교육방식으로 가르치시더라고요.

조현:한국 선생님들이 가장 대단해 보이는 점이 바로 그겁니다. 저는 진정한 교원이라면 잘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교과서에, 시험에는 나오지 않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는 심각한 문제가 많잖아요. 기후 위기, 사회적 양극화, 인구 감소, 세대 간의 불통 등 이런 부분까지도 한국 교사들은 모두 신경 쓰고 그 해결책을 배우는 분위기거든요.

이승재:맞아요. 특히 어렸을 때는 선생님의 말씀을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배운다고 하잖아요. 이 시기엔 선생님의 교육방식에 따라 사고관이 형성되고, 관심분야가 생기기도 하고, 원하는 직업을 정하기도 하죠. 물론 중고등학생이 되면 입시교육에 치중하게 되지만요.

조현:그래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인생이 변한다고 하는데요. 북한 청취자 분들도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트로트 가수중에 김호중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노래를 잘 해서 성악가를 꿈꿨는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혼한 부모님 대신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성악에 재능이 있는 다른 친구들은 비싼 비용을 들여서 성악 수업을 받는데 자긴 그걸 못하니까 아마 좀 엇나간 모양이에요. 그래서 조직 폭력배들과 어울려서 불량한 생활을 하고 그 이유로 고등학교 퇴학 위기를 맞게 되는데요. 이때 그의 재능을 알아본 김천예술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당시 예의도 없고 불성실한 이 친구가 해당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전학도 받아주고 또 이 친구를 잘 달래면서 "내가 너를 노래로 먹고 살게 하는데 내 전 재산을 걸겠으니 절대로 무단결석하지 말고 폭력도 행사하지 마라" 이러면서 이 학생이 성실하게 성악을 공부할 수 있도록 가르쳐줬다는 겁니다. 사실 이 선생님 자체가 대학교수가 될 수도 있을 만큼 훌륭한 성악가였는데, 성대결절 때문에 노래를 못하고 고등학교 성악선생님이 됐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실망감이 컸다고 하지만 이 분은 자신이 그렇게 된 이유가 '김호중이라는 훌륭한 제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키워냈다고 하더라고요. 이 선생님과 김호중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파파로티'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정말 감동이 큰 영화입니다.

이승재:저도 그 영화 '파파로티'를 봤습니다. 제자가 방황하지 않고 가진 재능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애쓰는 이야기였는데, 실화라는 건 알았지만 그게 바로 가수 김호중 씨의 이야기였다니 진짜 놀랍네요. 그렇다면 우리 탈북 학생들은 어떤 인생의 스승을 만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현재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2천 5백 명 정도의 탈북 학생들, 남한의 교육방식에 적응은 잘하고 있을까요? 아직은 어려움이 많겠죠?

조현:일반학교에 다니는 탈북학생들이 늘면서 학교마다 코디네이터라고 하는 탈북학생 전담 상담교사 등이 생기고는 있는데요. 아직까지는 한국 공교육에서 탈북민에게 전문적인 교사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현재 탈북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교육기관은 국내에 있는 탈북민 대안학교들입니다. 탈북민 대안학교는 1:1로 부족한 학력 공백도 채워주고, 한국생활 적응을 돕는 다양한 교육과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일단 탈북 학생이 한국출신 학생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서 대학에 가기는 어렵고요. 대학마다 일정 수의 탈북민 특별전형이 있는데, 이 시험 준비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한국의 교육부가 탈북민들의 정규학교 적응을 위해 탈북학생 전담교사 배치 및 학습지원에 나서고 있는데요. 아직 그 수는 좀 적습니다만 통일과 북한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탈북민이 1,200여 명 정도 정착해 있는 부산의 김석준 부산시교육청 교육감은 작년에 "다문화나 탈북민 자녀들이 소외받지 않도록 이해와 공존교육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말을 했는데요. 솔직히 아직은 탈북민들에게 차별의 시선이 남아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과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니, 시간이 지나면 젊은 세대들은 우리보다 훨씬 쉽게 정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승재: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탈북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교육과정을 보면 대부분 '리더십 교육'이라는 게 있는데요. 결국은 통일 후를 생각한 미래 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현:리더십 교육이란 지도자 교육이라는 뜻인데요. 탈북 청소년들의 리더십 교육이란 그 청소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지도력, 사람들과의 소통능력을 잘 발현시켜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 능력이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남북을 모두 경험한 탈북 청년들이 통일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그 능력을 이끌어주는 거죠. 우리 탈북 학생들한테는 특히나 중요한 이유가 차세대 엘리트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일 후를 떠나 지금은 작은 모임부터 학교나 직장 등 조직에서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내는 지도력은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잘 배워야 하고 그래서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중요한 거죠. 어떤 선생님한테 어떤 말 한 마디를 듣고, 어떤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학생의 자질과 인생관, 세계관이 다르게 형성되니까요. 저도 이 리더십 교육으로 우리 탈북학생들이 한국에 더욱 잘 정착하고 얼마나 달라질지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이승재:결국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 탈북 청소년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하겠네요. 네. 2주간 '선생님'을 주제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저한테 가장 깊이 남았던 건 선생이란 잘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잘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는데요. 어느 사회에서나 정말 중요한 책임과 역할을 짊어진 선생님, 남북의 선생님들이 각자의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가 알아주는 참 엘리트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꿈꿔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