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기자의 손에 쥐어진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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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봅니다. 남한에는 크고 작은언론사가 많지만 웬만한 언론사의 기자가 되려면 언론고시라고 할 만큼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경쟁률도 높아서 그만큼 시험을 통과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선생님은 지난주에 남한의 기자보다 북한의 기자가 훨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권력이 강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북한에서 기자가 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조현:아니에요. 북한은 남한에 비해선 쉽습니다. 남한의 대형 언론사나 방송사들은 기자 한 명을 뽑기 위해, 뽑는 기업이나 지원하는 사람이나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먼저 지원자들은 학교 성적이 좋아야 하고요. 이렇게 성적 가지고 1차로 추려놓으면 2차로 논술시험을 치른다고 들었습니다. 이거 합격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3차로 면접시험을 보는데요. 면접을 통해 이 사람의 취재능력은 어떤가, 인간관계 능력은 어떤가, 또는 정치성향 같은 것도 검증한다고 합니다.

이승재:그렇죠. 어떤 회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6개월이나 1년간의 인턴 제도도 있어요.

조현:그렇다네요. 언론사에 따라 인턴 제도를 두고 얼마간 일을 시켜봤다가 제대로 된 능력을 보이지 못하면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반면 북한은 노동신문, 민주조선 같은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평남일보 같은 지방신문도 일단 기자로서 들어가면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원의 자격을 줍니다. 기자는 북한 사회에서 굉장한 엘리트지만 별도의 시험은 없습니다.

이승재:그럼 토대가 좋거나 하면 바로 선발인가요?

조현:당연히 토대가 좋아야 하고 성적도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문사에 가서 한두 번 글재간을 보이면 되는데요. 가장 최고의 능력이라면, 당의 정책을 대변하는 직업이니 당성이 있어야겠죠. 지난주에 제가 북한에서 기자는 자기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고 그랬거든요. 자기 기사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기사 잘못 쓰면 해임이나 철직당해요. 그런데 한국은 기사 잘못 쓰면 국민이나 사회 앞에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그러나 북한은 기사가 잘못되면 "당 앞에 책임져야 한다"고 교육받습니다.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이 완전히 다르죠.

이승재:그렇군요. 기자가 선전선동부 부원의 자격을 얻는다면 북한 내에서야 영광이겠습니다만 사실 기자로서 큰 의미는 없는 것 아닐까요? 저는 기자라면 자기가 쓰고 싶은 글, 자기가 알리고 싶은 사실을 자기 언어로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조현:맞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기자라는 직업의 정의가 다릅니다. 육하원칙에 의해 기승전결이 있는 짧은 문장을 쓰는 것만 똑같습니다. 저는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사회에서 옳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사실을 바로, 즉시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워 국민들로 하여금 바른 방향을 찾아가도록 돕는데 있다고 봐요. 기자의 취재를 통해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승재:그렇죠. 어떤 분을 예로 들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이분은 참 본받을 만한 기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나요?

조현:한국계 미국인 기자 중에 강형원이라는 사진기자가 있어요. 60세 가까이 되신 분인데 이분이 미국 유명 언론사 AP통신, 로이터통신에도 근무하면서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 1992년 LA흑인폭동,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9.11테러, 이라크 전쟁까지 목숨 걸고 위험한 현장을 발로 뛰면서 그 순간을 기록한 사진기자입니다. 1988년에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다 경찰로 오해 받아 시위대에게 폭행당한 적도 있다고 하고요. 비슷한 시기에 북한에 직접가서 발로 뛰면서 취재한 적도 있습니다. 이분으로 인해서 전 세계에 고통 받는 곳이 얼마나 많이 알려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분은 기자들에게 수여하는, 언론계의 노벨상이라는 퓰리처상도 두 번이나 받았는데요. 바로 이게 엘리트고 이게 기자죠. 북한처럼 없는 일을 만들어 쓴다거나 지도자를 찬양하는 글을 쓰는, 정권의 나팔수를 기자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승재: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겐 솔직히 로동신문의 글들이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기자마다 각자의 정해진 분야가 있습니다. 정치를 전문으로 취재하는 기자, 혹은 경제나 문화, 사회의 범죄만을 취재하는 기자도 있고요. 북한도 비슷한가요?

조현: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과학기술이나 농업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선 세계적인 과학기술의 흐름을 잘 알고 어떤 발명품이 나왔는지, 누가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냈는지 빠릿빠릿하게 소개하는 전문기자의 글들을 찾아볼 수 있어 좋았죠. 북한에선 기자가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기는 하는데 어떤 특화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집중 취재하는 기자는 없어 보입니다. 요새 코로나19로 한국 사람들이 의학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했어요. 해외에서 신약을 개발했다거나, 코로나 예방주사가 몸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항체를 만들어내는지, 이런 건 전문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요즘 눈에 띄는 분야가 있는데요. 의학전문기자라는 몇몇 기자들이 TV뉴스에 나와서 그림을 보여주면서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주더라고요.

이승재:맞아요. 한국에 의학전문기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아시는 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조현:네. 이 분들이 단기간에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들도 오랫동안 노력했기 때문에 해외의 백신, 신약개발 과정을 쉽게 파악하고 전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기자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기 분야에 대해 깊은 지식을 쌓는 것이 정말 중요해 보입니다. 엘리트라는 게 북한처럼 권력을 가졌다고 엘리트가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하는 것이 진짜 엘리트라고 저는 생각하니까요. 요즘에 탈북민들이 설립한 언론매체들이 많은데요. 대부분이 북한정권을 비판하면서 탈북민들이 바깥에서 북한 정권의 변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죠. 저도 이 분야에 아는 지인들이 많은데요. 사회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이 아닌, 철저하게 실력을 갖추고 국제사회에도 호소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저도 탈북민 기자들이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다면 그중에서도 공부를 많이 한 기자, 계속 공부하면서 실력을 갖춰나가는 기자들의 기사를 주로 찾아보고 있고요.

이승재:지금 말씀하신 대로 남한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서만도 여러 사람, 여러 기자의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선생님께서 한국의 이런 많은 기사들이 한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도 있어 좋지만 때론 오보나 성급한 결론도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셨는데요. 그럼 선생님도 한국에서 기사를 볼 때 이 기사는 좋은 기사다, 혹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기사다, 이렇게 판단하시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조현:같은 사안도 보는 시각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표현이 가능한데요. 저는 꾸준히 기사들을 탐독하다 보면 믿고 보는 기자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몇몇 신뢰 가는 기자들의 기사를 먼저 살펴보고요. 어떤 사람들은 대형 언론사 기자들을 더 신뢰하기도 합니다. 또 정치 같은 경우는, 한국에선 자신의 정치성향에 따라서 선호하는 언론사 뉴스가 따로 있습니다. 보수언론은 현 진보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마련인데 진보언론은 반대로 야당을 비판하죠. 한국 사람들은 각자 입장에 맞춰서 신문을 선택해서 보더라고요. 물론 양자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 모두 탐독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습니다. 저는 기자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 하고요. 그만큼 그들의 기사를 읽는 대중도 열심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무분별한 뉴스를 분별하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재: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바른 시선과 정확한 보도 그리고 사회를 올바로 변혁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하는 사람이 바로 기자라는 것, 그래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것 북한 청취자 여러분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네요. 다음 주에도 더 유익한 소식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