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북한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악기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벌써 2년 전이네요. 남한 여성과 북한 남성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한국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얻었는데 들어보니 북한에서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조현:네.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 같습니다. 한국 여성이 낙하산을 타다 북한에 잘못 착륙해서 북한 군인을 만나게 되고 그 군인 집에 숨어 살다가 북한을 탈출하는 내용인데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을 희극처럼 유쾌하게 풀어낸 드라마였습니다. 이 드라마 작가들 중엔 탈북민도 있었다는데 그래서인지 북한의 상황을 비교적 잘 고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재:거기 남자 주인공 리정혁 동무, 이 사람이 피아니스트로 나왔잖아요. 저는 북한에서 피아노는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가 아니라고 들어서 탈북민들에게 이 드라마는 어쩌면 현실성이 없는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조현: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오히려 더 와 닿더라고요. 극중에서 리정혁이 총정치국장 아들로 나오거든요. 북한에선 2인자의 아들인데 피아노보다 더한 것도 배울 수 있겠죠. 북한에선 '대중악기'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하모니카나 손풍금 등을 말하고요.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같은 것들을 전문악기라고 하는데요.

이승재:한국에서 흔히 클래식 악기라고 말하는 것들을 북한에선 '전문악기'라고 부르는 거네요.

조현:맞습니다. 전문악기는 웬만한 집안에선 배우기 힘듭니다. 그중에 피아노가 제일 배우기 어려워요. 일단 악기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전 북한에 있을 때부터 피아노 치는 남자가 정말 부럽더라고요. 피아노를 비롯해 전문악기들은 만수대예술단, 조선피바다가극단, 윤이상음악단 정도에서만 연주할 수 있는데 주로 만수대예술단에서 독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요. 북한에서 말하는 고전음악과 남한에서 말하는 고전음악은 다르거든요.

이승재:아 그런가요? 어떻게 다르죠?

조현:일단 전문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곡 자체가 다릅니다. 한국에선 전문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고전음악 혹은 클래식이라고 하는데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같은 중세나 현대 유럽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거든요.

이승재:그렇죠. 저는 북한 관현악단이 '조선은 하나다',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이런 곡들을 연주하는 걸 봤는데요. 혹시 이런 곡들이 북한에서 말하는 고전음악인가요?

조현:정확합니다. 이런 음악을 전문악기로 대중 앞에서 공연하는 경우도 솔직히 많지는 않고요. 한국에서 흔히 즐기는 클래식 연주도 간간이 있는데 그건 정말 고위층, 수뇌부를 위한 거죠. 외국에서 대통령이 방문한다거나 해야 베토벤, 슈베르트를 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부잣집 권력계층의 자제로서 전문악기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드물 것 같습니다. 저부터도 한국에 와서야 수많은 고전 음악가들을 알게 됐어요. 북한에서도 차이코프스키, 베토벤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름을 잘 못 들어본 작곡가들, 로시니, 말러, 브람스, 그리그 정말 많더라고요.

이승재:그렇군요. 말씀하신 대로라면 '고전음악' 하면 남북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르겠네요. 한국에서 말하는 고전음악 즉 클래식은 몇 세기 전 유럽 작곡가들이 만든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떠올리게 됩니다. 전문악기를 사서 이런 곡들을 배운다는 건 한국에서도 비용이 꽤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대부분 빠르면 예닐곱 살부터 초등학교 시절까지 전문악기 한 가지 정도는 배우는 편입니다. 그러다 실력이 좋으면 커서 전문 연주가로 성장하기도 하고요.

조현:저는 한국에 와서, 곳곳에 흔하다고 하는 태권도 학원만큼이나 피아노 학원이 널려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만나는 한국 사람마다 대부분 어릴 때 피아노를 조금씩 배워봤다고 하더라고요.

이승재:피아노는 기본적인 소양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수업 비용이 가장 저렴하고 배울 수 있는 학원도 많으면서 악기는 굳이 안 사도 되니까요.

조현:그러니까요. 학원에 피아노도 많고 학교, 교회, 대형 건물들 1층에도 맘대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가 있더라고요. 이보다 좀 더 넉넉한 형편이면 피아노 외에 다른 악기도 배우던데, 연습용 전문악기는 크게 돈 들이지 않고도 구할 수 있는 것 같고요. 북한은 일단 선생님도, 악기도 없으니 배우기는 힘든데, 어렵사리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방과 후 소조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집에서 경제력이 받쳐주면 각 도에 있는 예술전문학교나 중앙의 음대에 갈 수 있지만 악기 자체가 워낙 비싸니 이런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권력층이죠.

이승재:그럼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악기를 가진 사람도 소수일 텐데 자동적으로 사회적인 성공이 보장되는 건가요?

조현:아닙니다. 일단 한국처럼 연주기회가 많지 않아요. 한국은 수많은 무대가 있습니다. 클래식 연주가 아니더라도 전문악기들이 대중가수 무대에도 나오고 하다못해 결혼식에서도 연주하는데요. 북한은 음악을 해서 먹고 살긴 힘들어요. 북한에서도 있는 집에서 자식을 교육시킬 때는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려 하거든요. 그런데 음악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라면 김정은 앞에서나 연주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그걸 감안해 악기를 배운다는 건 정말 부자인 거죠.

이승재:사실 한국에서도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클래식 연주가로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은 정말 많죠. 그래서 음악대학 졸업 후 실력이 좋으면 교향악단에 들어가 연주가로 활동하거나 교수가 되기도 하고요. 교원, 혹은 아까 말한 동네 음악학원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뛰어난 음악가들은 세계를 무대로 콩쿠르라고 하는 국제 경연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고 인정을 받아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되기까지 뒷바라지가 필요한 게 사실이에요.

조현:네. 하지만 한국에선 돈이 없다고 음악을 아예 못 배우는 건 아니더라고요. 제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주인공은 천재적인 피아노 연주 능력을 가졌지만 정상 이하의 장애아입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죽을 병에 걸렸고 형은 건달이고... 굉장히 어렵게 살아가지만 정말 목숨 걸고 노력해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인정받는 내용이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서 충분히 가능한 얘기더라고요. 제가 아는 음악인 중에 문지영이라고 서른이 채 안된 피아니스트가 있는데요. 부모는 장애인이고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씩 주는 보조금을 받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피아노학원도 못 다녀서 집에서 건반그림을 놓고 피아노를 연습했다네요. 한국에선 신문사, 각종 대학, 기업 등에서 주최하는 피아노 경연대회들이 많은데요. 열심히 연습해서 이런 대회에 입상하면 일회성의 장학금이나 혹은 장기로 악기공부를 할 수 있는 후원금을 받을 수가 있고요. 이런 대회 입상 경력이 쌓이면 좋은 대학에도 갈 수 있습니다. 문지영 씨도 이런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경연대회에서 입상하고 서울에 있는 유명 음대에 간 건데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연대회, 이탈리아의 부조니 콩쿠르에서 세계인들과 당당히 겨뤄 1등을 했습니다. 이 대회는 정말 수준 높은 연주자가 나오지 않으면 1등을 안 준답니다. 그런 대회에서 15년 만에 1등을 해낸 거예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국에선 자신이 간절히 원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엘리트가 될 수 있지요. 하지만 북한은 그저 권력계층의 자녀들이 악기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그 사회 내에서만 인정하는 엘리트 계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이승재:한국의 음악인들이 역경을 딛고 세계에서 인정받는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지난 1월 16일에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독일 유명대학의 대표연주자들이 기량을 겨루는 '독일 멘델스존 대학 콩쿠르', 수많은 국가의 학생들이 참여한 이 경연대회에서 한국인 4명이 1위, 2위, 공동 3위까지 모조리 휩쓸었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