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지난 1월 16일 독일에서는 독일 유명 음악대학의 대표 연주자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독일 멘델스존 대학 콩쿠르'가 열렸다고 합니다. 음악 분야에선 거의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독일에서 열린 이 대회에 한국인이 참가했다는 것만도 자랑스러운 일인데 이 대회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4명이 1위, 2위, 공동 3위까지 휩쓸었다네요. 뉴스 보셨죠?
조현:네. 사실 많이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음악인들이 유럽 등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콩쿠르에서 1등 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니까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음악인들이 워낙 많아서 아는 사람만 나열해도 100명이 넘겠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그렇게 어렵다는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과 성악에선 세계 최고라는 소프라노 조수미 등 말할 수 없이 많잖아요?
이승재:맞아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 중에 잘 알거나 좋아하는 음악가가 혹시 있으신가요?
조현:네. 제가 좋아하는 성악가 중에 임선혜 씨라고 있는데 지금 유럽에서 활동한 지 20년쯤 됐습니다. 처음 이분이 유럽에 건너갔을 때, 한국 성악가가 음악극(오페라)무대 주연으로 서는 건 어려웠다네요. 서양인의 역할을 동양인이 맡아 하는 것도 어색하고 실력이 좋더라도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던데요. 하지만 지금 그녀는 20년째 활동하고 있고 이제는 그런 편견조차 없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한국 성악인 다수가 유럽, 미국 등 세계무대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하고, 전문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세계 굴지의 오케스트라에 수석 단원으로 있죠.
이승재:그런가 하면 북한에도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 있을 텐데 세계무대에서 연주를 들어볼 수 없다는 것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북한 음악'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아리랑 공연이나 단체 무용, 체조 이런 것만을 떠올리거든요.
조현:한국에선 대중가요와 전문악기로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 즉 고전음악이 전혀 다른 분야잖아요. 북한은 그렇게 음악을 종류로 분류하기가 어렵습니다. 북한 정권은 문화예술이 인민대중의 정치사상적인 교화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 음악인들은 사람을 선동해야 하는 선전부의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그래서 노동당 지시 아래 비슷비슷한 음악 스타일만 나오는 겁니다.
이승재:그래서 그런가요? 가끔 인터넷 동영상으로 북한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호소력이 가장 큰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남한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클래식, 고전음악이라도 이해와 공감성이 강한 음악이 인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극(오페라) 중에서 사랑을 주제로 하거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아픔을 표현한 노래 같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것들이 인기를 얻죠.
조현:지금 성악곡을 말씀하셨는데 기악곡도 마찬가집니다. 쇼팽의 녹턴이라 불리는 야상곡을 들으면 잔잔한 물가에서 배 위에 누워 밤하늘의 별빛을 보는듯한 느낌이 느껴지잖아요. 이런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 북한 음악이 세계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북한에도 클래식 음악인을 양성하기 위해 인재들을 선발해서 중국, 러시아, 이태리에 유학 보내기도 하는데요. 훌륭한 콩쿠르의 입상자도 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의 김광숙도 러시아의 유명한 콩쿠르 입상자 출신이었는데요. 이 보천보전자악단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에 전자음악을 도입한 그룹이었고 고전음악, 세계 클래식, 러시아, 유럽음악, 명작 등을 알리는 역할을 했었죠. 당시 만수대예술극장에서 고정적으로 활동하던 만수대예술단을 쫓아내고 극장을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승재:그랬군요. 보천보전자악단은 지금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북한에서도 시대에 따라서 떠올랐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음악 그룹들이 많이 있었네요.
조현:북한 예술인의 현실이죠. 북한의 음악인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위해 어릴 때부터 교육된 사람들이다 보니 실력이 좋아도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장담합니다. 한때 정말 잘 나갔다가도 어느 순간 혁명화를 가고 음악계에서 완전히 퇴출되기도 하죠. 워낙 최고위층에 가깝게 있으면서 그들의 비리를 많이 알게 되다보니 그 과정에 말 한 마디라도 잘못하거나 몰라야 할 것을 알게 된다면 한순간에 추락하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 음악인에겐 "태양이 암만 좋아도 가까이 가면 안 된다"라는 말도 돕니다. 아까 말했던 보천보전자악단의 김광숙, 이분희, 조금화, 이경숙, 이제는 다 사라진 인물이 됐거든요. 어린 나이부터 인민배우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도 오래 가지 못하고 한순간에 이슬처럼 사라지니 누가 열심히 노력해서 음악인이 되고 싶을까요? 지금은 김옥주가 대세고 은하수관현악단 출신의 서은향, 황은미가 소프라노의 양대산맥이라고들 말하는데 아마 이들도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이승재:음악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남북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겠군요. 사실 한국 음악인들에게도 요즘은 어려운 시기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들이 취소되고 있으니 음악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겠죠. 해외로 유학을 가서 최고 학위를 받아오더라도 세계적인 명성과 함께 큰돈을 버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고요. 하지만, 주변 음악인들을 보니 굳이 성공을 보장받지 못해도 유럽이나 북미로 음악공부를 여전히 많이 하러 가더라고요.
조현:예술인의 생명은 자율성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하고 싶어서, 자신의 음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는 것이죠. 듣자 하니 예전에는 한국에서 고전음악 전공자가 꽤 부유한 느낌을 주는 엘리트라고 인정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분위기는 또 달라졌습니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음악인들이 예전처럼 그렇게 부유한 이미지만은 아닌 것 같아요. 또 국내에서만 배웠든 해외 유학을 다녀왔든 자신만의 색깔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평생 한 길을 걷고 있는 음악가들이 엘리트로 인정받죠. 그 이유는 엄청난 노력 때문입니다. 음악으로 세계무대에서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음악 자체를 배우고 연마하는 것도 어려울 거예요. 게다가 지금 한국 음악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클래식음악을 자유롭게 즐긴 지는 오래 되었지만 유명 극장에서 클래식 연주를 들으려면 비싼 표를 사야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음악계가 어려움을 겪다 보니 세계 곳곳의 클래식 음악인들이 클래식이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더욱 많은 일반 사람들에게 파고들 방법을 찾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에서 음악공연이 이뤄지는 유명한 극장, 서울 강남지역에 있는 '예술의 전당'도 옛날에는 별명이 부자의 전당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의 취약계층이나 보통계층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정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승재:네. 유명하지 않은 지역 예술가들에게 무대를 쉽게 빌려주기도 하고요. 또한 정상급의 엘리트 음악인들이 먼저 나서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작은 합창단과 같이 무대에 서는 등 차별과 계층의 벽을 허물기 위해 활동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요.
조현:그렇습니다. 한국에서 수많은 음악 엘리트가 나오는 이유는 이렇듯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통해 이루고픈 목적들이 명확하기 때문인 거죠. 북한에서 유명음악인도 당연히 인민배우라는 엘리트로 인정받지만,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이겨도 잘해도 결국 내 것이 아니라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걸어 쟁취할 이유가 없겠죠. 자유와 창의력,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미래가 차단된 사회에서 과연 훌륭한 음악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승재:그렇습니다. 오늘 대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예술인의 생명은 자율성이다" 이 말씀이 깊이 남았는데요. 북한 음악인들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연주와 노래는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요? 세계인들이 함께 북한 음악인들의 작품을 즐길 날을 기다리며 오늘 방송 마칩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