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베이징 올림픽이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한국인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종목이 바로 속도빙상(쇼트트랙)인데요. 총 9개 종목에서 한국이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따냈습니다. 특별히 속도빙상 제일 마지막에 열린 여자 1500m, 한국 최민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냈던 경기를 볼 땐 저도 손에 진땀이 나더라고요.
조현: 네. 그랬죠. 사실 이번 올림픽이 문제가 좀 많았잖아요. 불법 약물을 복용했다 적발된 러시아 선수도 있었고요. 속도빙상에선 중국 선수에게 유리한 편파판정도 심했는데 그걸 어린 한국 선수들이 묵묵히 이겨내고 얻은 메달이니 메달 하나하나 딸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도나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올림픽에서 문제가 되는 편파판정이나 불법 약물 복용 이런 것들이 공산권 국가에서 유독 일어나는데 잘못을 뻔뻔하게 부인하는 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 모습은 경직된 사회주의의 민낯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죠.
공산 국가에서 유독 많은 불법 약물 복용
사회주의의 민낯?
이승재: 그렇습니다. 편파판정이나 불법 약물 복용 때문에, 몇 년 동안 성실하게 올림픽을 준비해온 선수들이 피해를 보게 되어 저도 마음이 안타까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들 정말 잘 싸워줬습니다. 사실 수년 전만해도 한국이 속도빙상에서 거의 메달을 쓸어 담았습니다. 메달의 반 정도가 한국 몫이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다른 나라 실력이 좋아지면서 메달 수가 많이 줄었거든요.
조현: 한국 선수들이 그동안 잘 성장해서 다른 나라 지도자가 됐잖아요. 이번에 실력이 눈에 확 띄었던 웽그리아(헝가리)나, 개최국 중국도 감독이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속도비상계의 수많은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인입니다. 아무래도 그 영향이 크겠죠. 또 한국의 대표종목이라고 하는 하계올림픽의 양궁, 태권도 등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지도자들이 많더라고요.
이승재: 네. 말씀 잘 해주셨습니다. 오늘 주제가 태권도거든요. 생각해보니 북한도 태권도 전통을 잇는 종주국이라고 자부하잖아요. 그에 비해 선수나 지도자는 국제무대에서 잘 보이지는 않네요.
북한은 왜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하지 않을까?
조현: 일단 남북의 태권도가 다릅니다. 남한은 세계태권도연맹(WT) 소속, 북한은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입니다. 원래는 북한식 태권도가 더 유명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남한의 것을 공식 인정하다 보니 세계적으로도 남한식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북한은 자존심 문제도 있고 또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생각해서 올림픽 같은 세계무대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승재: 북한의 태권도가 남한과 그렇게 많이 다른가요?
조현: 남한 태권도는 스포츠의 성격이 강한데 북한 태권도는 완전한 격투, 싸움입니다. 사람을 심하게 때리고 얼굴도 가격할 수 있고요. 남한과 달리 손을 이용해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일단 스포츠는 화합과, 단결, 즐거움이 있어야 하잖아요. 게다가 스포츠에서 대중성은 상당히 중요한데 북한 태권도는 이와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 유행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제 생각엔 북한식 태권도가 우리 민족만의 강력한 무술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태권도는 두 종류가 있는데요. 하나는 대중체육으로써의 태권도입니다. 이건 학교에서 국민체조 배우듯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는 전문 태권도인데, 전문 태권도는 학교나 도장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나 도장이 1개 시, 군에 1개 정도 뿐입니다. 전문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학교 내에 10~15명 참여할 수 있는 소조가 있다는 뜻인데요. 보통 여기 출신들이 국제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로 성장합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태권도 인구는 상당히 적어요. 한국엔 동네마다 태권도 학원이 넘쳐나고 부모들은 이사하면 새 학교만큼이나 태권도 학원부터 찾거든요.
분단과 함께 정통성마저 둘로 나뉜 남과 북의 태권도
북한 태권도는 미제 침략자를 무찌르기 위한 격투?
이승재: 한국 태권도는 기본적으로 자기 몸을 보호하는 기술을 배우면서 개인을 절제하고 단련하는 법, 그리고 상대에 대한 예를 배우는 '교육'의 의미가 커졌죠. 영국의 한 대학에서는 태권도를 배운 아이들이 안 배운 아이들에 비해 자기조절력이 높고 문제행동은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조현: 맞아요. 그런 분위기다 보니 국제경기도 격투보단 서로 예를 갖춘 기술대결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네요. 북한 태권도는 어떤 대상 특히 미제 침략자를 무찌르기 위한, 또는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다는 이념적 요소가 많이 들어갑니다. '전쟁', '결투'의 의미가 크죠. 훌륭한 무술로써의 장점이 이런 이념 때문에 점점 희석되어가는 것도 같습니다. 북한 태권도도 나름대로 장점이 크니까 세계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잘 알리고 더욱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데 그것이 아직 잘 안 되네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간 우리가 방송에서 다뤄온 많은 직업에 비해 태권도는 일부 선택된 계층만이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이승재: 하지만 각 시, 군에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 도장과 학교가 하나뿐이라면 아주 극소수만 할 수 있다는 얘긴데 여기서 잘하면 북한 태권도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국가적인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요?
조현: 네. 실력 좋으면 태권도를 통해 해외까지도 나갈 수 있습니다. 힘드니까 부자나 권력계층은 안 할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북한 남자라면 주먹이 세야 한다는 정서가 있거든요. 그래서 돈 많거나 권력 있는 집 자식들도 태권도를 하죠.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소수만 할 수 있으니 정말 하고 싶어도 체력이 안 받쳐주면 못할 수는 있어요. 반대로 잘하면 신분을 뛰어넘어 국가종합체육선수단에 들어가 평양에도 거주할 수 있고 국제경기에도 나갈 수 있고요.
북한에서 태권도 지도자가 되면
간첩 아니면 마약중독자가 되는 이유
이승재: 계층과 신분에 상관없이 도전할 수 있다면 이거, 개천에서 용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조현: 글쎄요. 북한도 시험을 통해 1단 사범, 2단 사범, 이렇게 지도자의 급을 나누는데요. 급이 높으면 할 수 있는 일이 해외 나가서 공작반에 가담하는 겁니다. 이른바 간첩이죠. 국제경기 메달 딴 사람들이 이 일에 많이 종사합니다. 해외에서 외국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도장을 차려 정보원 일을 하는 건데요. 여기까진 그나마 괜찮은데, 그 이후의 삶은 굉장히 비참합니다. 북한에선 운동선수들이 마약중독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운동해서 금메달 따려면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겠죠. 병도 많이 들고 몸이 많이 아픕니다. 그때그때 치료받을 수도 없고요. 제가 아는 태권도 사범은 평안남도 사람인데 국제경기에 나가 금메달도 땄고 러시아 공작원 생활도 몇 년 해서 돈도 많이 벌어봤는데, 결국 마약으로 탕진하다 은행에서 도적질까지 했다더군요. 그러다 보니 아내도 달아나고 걸인이 되어 지금은 동네 애들한테 맞고 다닌답니다. 반면에 한국에선 유능한 태권도 실력자라면 아까 속도빙상처럼 해외지도자, 국제적인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해외에서 태권도 도장 차려서 한국식 예의와 문화를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많고요.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에서 봉사하면서 태권도 가르치는 분도 많은데 이분들은 현지에서 정말 훌륭하고 따뜻한 스승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태권도 배우러 온 외국인들이 그렇게 많더라고요. 이처럼 태권도는 한국을 세상에 알리고 한국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도 태권도를 '결투',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남한의 태권도가 속해 있는 세계 태권도연맹과도 교류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세계인들이 북한에서 북한식 태권도를 안전하고 편하게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면, 지금 북한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태권도 기술을 오히려 잘 전파할 수 있는 방법도 될 거고요. 북한의 태권도를 세계적인 엘리트로 성장시킬 좋은 방안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이승재: 한민족의 강력한 무술 태권도는 지금 전 세계에서 결투를 떠나 즐겁게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외국에선 대통령도 일부러 태권도를 찾아 배울 만큼 인기가 많다네요. 이처럼 한국의 태권도가 사랑받고 한국의 태권도인들이 존경받는 이유, 그 이야긴 다음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