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사람들은 그를 대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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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태권도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지금 세계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인구는 2억 명이 넘고 특히 미국에서만도 8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저 어릴 땐 큰 애들한테 맞고 다니지 말라고 태권도를 배웠는데 지금 미국 학부모들은 다른 이유 때문에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친다죠?

조현: 미국에선 태권도의 교육적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5년 전만 해도 미국 11개주 600여 개 공립학교에서 태권도를 정규과목으로 채택했다고 하니 지금은 더 늘었겠죠. 미국의 한 교육가는 "미국은 토론 위주의 수업, 충분한 교육 자금 등으로 교육 선진국으로 알려졌지만 인성교육은 부족하기에 태권도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태권도가 중시하는 게 예의범절이거든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또 격파 성공과 승급 시험을 통과하면서 자신감을 쌓기도 하고요. 열심히 배운 무술로 남을 공격하기 보단 자신과 가족, 이웃을 지킨다는 태권도 정신이 미국 학부모들에게 와 닿은 것 같습니다.

영화배우 이소룡, 세계 복싱 챔피언 알리의 스승이자

미국 정치인들의 그랜드 마스터 故 이준구

이승재: 그렇군요. 이렇게 태권도 정신이 해외에서도 잘 자리 잡은 이유는 바로 세계 곳곳에 진출해서 태권도를 가르친 한국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죠?

조현: 그렇더라고요. 지금부턴 한국에서 대사범이라고 불리는, 가장 처음으로 해외에 태권도를 보급시킨 어른들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준구 사범이라고 계신데요. 미국 연방의원과 영화배우 이소룡, 세계 복싱 챔피언으로 아주 유명한 무함마드 알리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고 구소련으로도 진출해 태권도에 세계화에 기여했던 인물입니다.

이승재: 이 분 잘 알죠. 유명한 분이잖아요. 이준구 대사범은 주로 미국 상류층에 태권도를 보급했는데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이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태권도 대부, 전 세계를 다니며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 분"이라고 극찬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현: 그렇습니다. 1932년생인 이준구 대사범은 태권도에 빠졌던 어릴 때 미국 영화를 보고 미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살아야겠다는 꿈을 키웠다네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6.25전쟁에서 미군 통역병으로 복무했고 전쟁 후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대학을 다니며 태권도 보급을 시작했답니다. 당시 강도를 당한 미국 연방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태권도를 배우면 강도를 당하지 않는다"고 설득해 태권도를 배우게도 했고요. 이어 1965년엔 미 하원에 태권도장을 설치하고 미국 상하의원 300여 명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준구 사범은 조지 부시 대통령 때는 아시아태평양정책자문 위원 등 차관보 급에 해당하는 위원직을 얻기도 했습니다. 1999년엔 미국 건국 200주년을 맞아 스포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금세기 최고의 무술인 상'을 받았고, 2000년엔 미국 정부로부터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하고 유명한 이민자 203인"에 선정됐는데요. 여기엔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라 불리는 아인슈타인, 발명왕 에디슨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미국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3년 미국 워싱턴 시는 '준리데이' 즉 '이준구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죠. 동양인으로서는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네요.

미국에 이어

남미에서도 태권도 전설로 불리는 그랑 마에스트로 문대원

이승재: 정말 훌륭한 분이네요. 전 세계가 그렇지만 특히 미대륙에서 태권도가 더욱 인기인 것 같아요. 남미의 멕시코는 이미 인구의 10% 이상이 태권도 수련자라고 합니다. 온두라스의 전 대통령 프로포리오 로프 로사는 한국 사범에게 태권도를 배운 유단자인데요. 새벽 5시부터 배우면서 육체를 단련한 것은 물론 겸손, 예의 등 정치인으로서 지녀야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네요. 수년 전 이분이 빨리 한국에 가서 3단을 따고 싶다고 말했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조현: 그렇습니다. 남미쪽에도 태권도 전설, 태권도 대통령이라 불리는 대사범이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여전히 태권도를 가르치는 문대원 대사범인데요. 50년 넘게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30만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고 이 가운데 유단자만 4만 명이 넘는다네요. 충청도 출신의 문대원 대사범도 젊은 날 미국 유학중에 열린 무술대회에 태권도로 출전해서, 당시 인기 있던 일본의 가라테로 출전한 선수들과 겨뤄 3년 연속 우승했답니다. 그러니 미국 온갖 무술대회로부터 초청장이 쇄도하고 결국 운명적으로 멕시코 무술대회에도 초청받게 됐죠. 이를 계기로 1968년부터 멕시코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의 제자들이 1969~1975년까지 멕시코 무술대회에서 계속 우승하면서 태권도의 인기는 가라테를 앞섰고 때문에 멕시코엔 태권도 돌풍이 일어났다네요. 이분은 또 집 없는 멕시코 소녀들이 2~3년 머물며 직업교육을 받는 기숙학교나 한국 수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를 찾아 소외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줬고요. 결국은 다혈질의 멕시코인들에게 태권도 정신을 심어 모범적인 시민으로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문대원 대사범은 이 공로로 그동안 멕시코 정부로부터 훈장과 수많은 표창을 받았다고 하고요. 한국에서도 그를 자랑스러운 태권도인, 세계적인 태권도 영웅으로 표창했다고 하네요.

전 세계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은 모두 한국인?

작년 열린 도쿄올림픽만 봐도 전 세계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이 대부분 한국 사람입니다. 이들 중 특별히 유명한 분은 태국 국가대표팀의 최영석 감독을 들 수 있습니다. 2002년부터 20년 동안 태국팀을 지도하고 있는데 태국을 세계적인 태권도 강호로 성장시켰죠. 최 감독의 지도로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태국팀이 좋은 성적을 얻었는데요. 결국 작년 도쿄올림픽에선 태국 여자 선수가 태권도 금메달도 따냈습니다. 태국 국민들은 최영석 감독을 국민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고요. 태국 정부까지 나서서 최 감독의 귀화를 추진했다고 하는데요. 최 감독은 태국 현지에서 태권도와 관련해 더 원활하게 활동하기 위해 최근 귀화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올림픽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지금 남한과 북한의 태권도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지난주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북한식의 태권도도 충분히 장점이 있다, 남북이 연합해서 태권도를 발전시키고 더욱 세계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런데 마침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이 2032년 하계올림픽을 공동으로 유치하는데 협력하기로 했고, 이어 2021년에 서울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제안서를 제출한 상황입니다. 이 성과를 이뤄내는 데는 아무래도 태권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네요.

남과 북 태권도로 힘을 합치면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 가능하다

조현: 북한도 태권도를 민족의 전통무도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남한의 경우,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류의 중심엔 이미 태권도가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태권도 선수들이 어느 한쪽에서라도 참가하지 않는다면 상징성에 심각한 결여가 있을 뿐더러 서울-평양 올림픽 자체가 무산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결국 남북의 태권도 협력이 절실하다고 봐요. 기술체계, 경기규칙 등을 함께 조정하고 협력한다면 이를 시작으로 다른 분야에까지 남북 협력의 여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제가 북한의 운동선수들이 의료적 혜택을 잘 받지 못해서 훌륭한 선수라고 인정을 받을수록 결국엔 더 많이 힘들어하고 심지어 마약중독자가 되어간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제 남북 공동 올림픽 개최라는 주사위가 던져졌으니 이를 계기로 북한의 태권도 선수와 지도자도 한국처럼 세계적인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이승재: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태권도를 세계에 보급한 지도자들, 그 노력으로 태권도는 세계에서 연일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욱 궁금해지네요. 태권도를 배우는 외국인들, 태권도를 극찬하는 외국인들, 이들 인생엔 태권도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다음 시간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