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난 시간에도 얘기 나눴지만, 남북한 모두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한민족만의 고유한 정서와 예의가 담긴 태권도는 운동적인 면에서나 격투 면에서 훌륭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세계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조현: 한국에서 그동안 세계화를 잘 시켜서 태권도는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즐기는 유명 스포츠가 됐죠. 그러다 보니 무술, 격투로써의 장점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도 솔직히 듭니다. 올림픽 경기 보면 북한 분들은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요. 현행 태권도 경기 채점 체제는 과도하게 공격하다 조금만 실수해도 실점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 경기할 때 선수들이 몸을 조금 사리는 경향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격투로써의 태권도가 잘 보존된 북한에서도 세계무대에 그들의 태권도를 많이 알리는 노력과 태권도 엘리트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남북한은 2032년 남북 공동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신청해놓은 상태이니, 그 전까지 남북의 상징인 태권도 분야에 많은 협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태권도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TV쇼 장악
이승재: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네요. 작년, 2021년에 태권도가 또 한번 세계를 흥분시킨 사건이 있었죠. 미국 NBC방송에서 주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 '아메리카 갓 탤런트'라고 있는데요. 규모가 어마어마한 방송 경연대회라고 할까요? 선생님 보신 적 있으십니까?
조현: 연기, 노래, 춤 혹은 교예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해 마음껏 재간을 뽐내고 그중 1위를 하는 사람에겐 백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는 대회죠. 거기에 한국 태권도시범단 22명이 한 팀이 되어 참가했잖아요. 저도 봤습니다.
이승재: 네. 보셨군요. 결국 1위를 하진 못했지만 진짜 어마어마한 태권도 시범을 보여줬는데요. 사람이 서서 3층의 탑을 쌓고 맨 위에 있는 사람이 두꺼운 송판을 들고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이 그 5~6m높이를 공중 세 바퀴를 돌아 오른 뒤 발차기를 해서 송판을 깬다거나 또는 여러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듯 공중에서 뛰면서 누군가가 던지는 송판을 바로바로 발로 차면서 깨어버리는, 현란한 기술을 보여줬습니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극찬을 했습니다.
조현: 그 대회에서 1위를 했던 사람보다 이 태권도 시범이 더 인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게 태권도인지 격투인지 묘기인지 모를 정도로 화려했다고 할까요? 현장에 있던 미국인 심사위원들의 반응도 대단했는데요. "믿을 수 없다, 소름 돋았다, 내 평생 저런 건 본 적이 없다, 미쳤네, 가장 완벽했다, 가장 엄청난 것..." 이런 말들이 나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시범단이 보여준 것은 용기, 자신감, 존중이었다"고 말했는데 저는 이게 바로 태권도 정신이라고 봅니다. 여기 참가자들이 태권도 시범을 다 끝내고 현수막을 펼쳐서 관객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는 공연을 했는데요.
무술 그 이상의 태권도 정신
Peace is more precious than triumph
그 현수막엔 “Peace is more precious than triumph. 승리보다 값진 평화”라는 가슴 뭉클한 문구가 쓰여 있었어요. 진짜 무술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이런 태권도의 정신이 바로 우리 민족문화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태권도를 전파하는 한국 사람들이 세계의 엘리트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승재: 사실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참가했던 태권도시범단은 원래 2020년 도쿄올림픽에 초청받아 공연하기로 했었는데 코로나로 취소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올림픽에서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요. 사실 개인적으로 더 아쉬웠던 건, 결국 1년이 미뤄져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이면서도 금메달을 따내지는 못했던 것이었어요.
태권도 종주국이지만 메달엔 약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
조현: 저도 그랬는데 생각해보니 아쉬워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금메달을 못 딴다고 종주국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세계 선수들에게 한국이 태권도 나라로서 존경받을 수 있었잖아요. 그리고 지난주에 얘기했듯이 우리가 메달을 못 딴 이유는 훌륭한 한국 지도자들이 거의 세계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유명 언론인 뉴욕타임즈에서는 "태권도가 다양한 스포츠 약소국 선수들에게 메달을 딸 기회를 선사하면서 올림픽 정신인 다양성을 상징하는 종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국제 스포츠계에서 소외됐던 국가들이 시상대에 오를 수 있는 희망을 줬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몇 회의 올림픽에선 우즈베키스탄, 태국, 튀니지, 니제르 이렇게 스포츠약소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메달을 땄고요. 도쿄올림픽 참가국 중 개막식 기수 14명이 태권도 선수였다는데요. 이 말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운동선수가 태권도 선수라는 거잖아요. 그리고 여태까지 국가에서 올림픽 메달이 하나도 없다가 태권도로 국가사상 첫 메달을 딴 사례들이 많아요. 코트디부아르, 요르단 이런 나라들은 올림픽에서 자주 호명되는 나라는 아니거든요.
이승재: 바로 이것, 태권도만이 가진 특이점인데요. 올림픽에서 못 들어본 나라들이 태권도 메달을 가져가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난한 나라에서 태권도 영웅이 나온다
조현: 일단 태권도는 무엇보다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운동할 때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 경제수준과 관계없이 어느 나라에서나 즐길 수 있죠. 이것이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네요. 세계태권도연맹은 꽤 오래전부터 요르단, 터키, 르완다, 난민촌 등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었는데, 이 결과 이란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서 태권도에 빠진 한 청년이 2008년, 2012년 두 번 다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닉파이 선수는 올림픽 메달을 따고 "아프가니스탄은 20개가 넘는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어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자리가 적은데 내 메달에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한바탕 축제를 벌일 수 있었다, 태권도가 민족의 화합을 이뤄냈다"고 말했다네요.
이승재: 이런 걸 바로 인생 역전이라고 하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는 건 스포츠 선수로선 더 바랄 나위 없는 최고 영예일 겁니다. 메달은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그를 대표로 내보낸 나라에게도 대단한 자랑인데요. 방금 말씀하신 아프가니스탄 선수처럼 약소국에서 태권도로 메달을 따고 삶이 바뀐 선수들이 있다죠?
중동 여성의 안전과 인권보호에 필수가 된 태권도
조현: 남녀차별이 심한 이슬람 국가 중에 이란을 들 수 있는데요. 이란의 최초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 카미아 알루자데는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는 "내 메달이 모든 무슬림 여성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고요. 아까 동메달 2개를 땄던 아프가니스탄은 작년에 민주정부가 무너지면서 다시 탈레반이라는 폭압단체가 정권을 장악하고, 여성의 권리는 더욱 추락했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여성들이 자신의 안전과 여성의 권리보장, 올바른 정신으로 무장하기 위해 태권도를 몰래몰래 훈련한답니다.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이렇게 아프리카 국가들의 태권도 메달리스트는 메달을 딴 책임을 무겁게 여기고, 내전 중에 고통 받는 현지의 청소년들에게 태권도 기술을 잘 전수해서 자기들처럼 훌륭한 스포츠인을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지금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모두 우리 한국 태권도인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태권도 지도자,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3주간 했는데 민족의 자부심인 태권도를 대하는 남북의 태도가 이렇게 다르네요. 남한은 태권도를 통해 내전으로 황폐화된 나라들에 희망을 주고 무너진 삶을 일으키는 일을 하고 있는데, 북한의 태권도는 오로지 혁명, 결투, 김씨 일가의 정권세습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 같아 너무도 아쉽습니다.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기 전에 한반도의 고유한 문화요, 자산이라는 걸 북한도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재: 태권도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세계인들은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지구상의 점과 같은 나라, 한국의 말을 공부하고 그 뜻의 의미를 생각하며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태권도 지도자와 선수들을 엘리트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남한처럼, 민족의 자랑인 태권도를 북한의 방식대로 세계에 잘 전할 수 있는, 북한 선수와 지도자도 하루 속히 배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