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난 9일, 한국의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제1야당 '국민의 힘' 소속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는데요. 역대 대선 중에 가장 박빙이었어요. 윤석열 후보가 총 투표의 48.6%, 여당의 이재명 후보가 47.8% 정도를 얻어 표 차이가 겨우 0.73%p, 24만 7,077표 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조현: 이번 대선 정말 대단했습니다. 투표 전날까지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니 후보들이 목청껏 제발 자기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고요. 유세과정에선 상대 후보를 깎아 내리기 위해 과거까지 들춰내는 바람에, 북한식으로 말하면 짐승도 낯을 붉힐 정도로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그게 선거의 묘미 아닙니까? 후보자들에 대해 알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제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자신을 반대했던 절반 정도의 사람들을 끌어안고 가야 하잖아요. 쉽지 않겠지만 진정한 국민 통합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또 남북관계도 중요한 문제죠. 어찌됐든 북한이 과거 6.25전쟁을 일으켰고 지금 김씨 일가가 정권 유지를 위해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걸 세계가 다 알고 있어요. 북한은 그걸 사죄해야 하거든요. 새 정부가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위해 힘써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승재: 아무래도 이제 막 대통령이 뽑혔으니까 저도 새 정부에 기대하는 것들이 많아지네요. 북한은 대통령 선거는 없지만 국가 수뇌부, 고위급 간부들을 선출할 땐 남한과 동일하게 투표를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 해도 한국 선거와는 많이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북한 투표장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
김일성, 김정일 사진에 깍듯한 인사
조현: 그건 선거가 아니라 동원이에요. 북한에서 투표장 들어서면 항상 김일성, 김정일 사진에 인사하고 투표합니다. 그래서 투표 당일엔 깔끔하게 옷을 입고 가야해요. 그렇게 인사하는 게 잘못됐다는 걸 저는 한국에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의사를 결정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것이 투표이고 선거인데 누구한테 뭐가 감사해서 거기서 인사를 해야 할까요? 역설적인 것은 북한에서도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표현을 한다는 겁니다. 북한에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지방주권선거가 있는데 이건 노동당이 이미 뽑아놓은 사람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투표하러 가야해요. 안 그러면 정치범이 되어버립니다. 한국은 선거일 기준 만 18세가 되면 모두 투표할 수가 있어서 이번 대선도 유권자 수가 총 4,400만 명 이상이었는데 그중에 77.1%만 투표에 참가했어요. 투표를 하든지 말든지 자유잖아요.
이승재: 특히 이번에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며 투표를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분들도 꽤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고민 없이 뽑고 싶어지는 지도자의 덕목에는 뭐가 있을까요? 일단 어떤 단체든 이끌어갈 대표를 뽑을 땐 구성원들이 믿고 따를 만큼의 신뢰와 지도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대통령 후보들의 자기 PR
북한에서 하면 총살형?
조현: 네. 그래서 표를 얻기 위해 유세과정에서 후보들이 정말 자기 자랑을 잘 합니다. 여기선 자신을 알리고 홍보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늘 자신이 위기에 강한 유능한 인재라고 자랑하고 윤석열 후보는 자신이 공정과 정의의 상징이라고 외치더라고요. 만약 북한 고위급 간부가 자기가 김정은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다고 말하면 아마 다음날 총살당할 걸요? 북한은 조직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이나 존재도 인정받을 수 없는데, 한국은 대중에게 인정받기 위해 후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대중이 정치인이나 단체의 지도자를 뽑을 때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을 뽑는 건 아니죠. 그 사람의 됨됨이나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큰 지를 보고 뽑는데요. 그래도 이런 자랑이 투표자들에게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혹은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줍니다. 참, 또 한 가지, 이번 대선엔 후보가 14명이나 나왔습니다. 북한과 달리 한국 대선엔 누구나 출마할 수 있는데요. 여하튼 한국은 선거의 자유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에선 이렇게 사회의 지도자를 뽑을 때 투표라는 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학급에서 반장을 뽑을 때도 투표하는데요. 이후에 크고 작은 집단의 지도자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는지에 따라 사회에서 존경받는 엘리트로 대접 받기도 하고 제대로 못 해내면 대중의 외면을 받기도 하죠. 이처럼 투표는 엘리트라는 옥석을 발견해 내는 하나의 핵심제도가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투표라는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북한에서 제대로 투표가 이뤄졌다면
고난의 행군도 없었다?
조현: 일단 투표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도 그걸 인정해요. 북한에서도 학급 반장을 뽑을 때, 교원이 뽑은 내정자가 있음에도 몇몇 후보를 일부러 만들어 놓고 손을 들라고 합니다. 만약 내정자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표를 준다면 교원이 나중에 표를 준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눈치를 줍니다. 다수결이나 투표가 지도자를 가려내기에 가장 무난한 방법임을 인정한 셈이죠. 그래서 북한도 국제사회에 선거한다고 말하는 거 아닙니까? 이 거대한 사회에서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행사할, 더 이상의 방법이 없으니 그런 측면에선 가장 좋은 방식 같아요. 우려 되는 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무조건 다수가 옳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걸 제어할 장치가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도자를 뽑는 선거 얘기는 아닌데요. 북한에서 유명한 화학자 이승기 박사라고 있습니다. 그분 사위가 고난의 행군 바로 전에 인민회의에서 북한도 중국처럼 가족도급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생산량을 높이려면 농업경영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건데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투표를 했으면 이 정책은 통과됐을 겁니다. 하지만 김일성이 1960년대 결정했던 농촌경영위원회 운영방식에 조금도 토를 달면 안 됐습니다. 따라서 가족도급제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모두 반동으로 몰려 감옥에 갔던 거죠. 또 북한의 여성 유전학자 중에 백설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10년 동안 연구해서 값싼 식용기름을 만들어냈는데 이게 유전자 조작음식이에요. 그래서 본인도 아직 세상에 내놓으면 안 된다고, 10년은 더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그러나 노동당은 바로 제품생산 명령을 내렸고 백설희 박사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나중에 기름에 문제가 생기자 백설희 박사 본인도 엄청 비난을 받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 일을 논의할 때 한국 국회처럼 투표에 붙였으면 결코 통과되지 못했을 겁니다. 투표라는 방식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으나 북한사회에서 벌어지는 이같이 말도 안 되는 기막힌 현상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승재: 그렇군요. 한국에서 1987년, 대통령을 직접 선거방식으로 선출하게 된 이후 투표라는 방식은 한국 사회에 깊이 정착해서 사회의 갖가지 현안들을 해결하고 많은 분야의 엘리트나 지도자를 선출하는 기준이 되었는데요. 북한에서 제대로 된 투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 혹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중간급 지도자를 선출하고 엘리트로 인정을 하게 되나요?
북한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의 기준
출신성분과 충성심
조현: 출신성분,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입니다. 대중이나 관련 실무자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죠. 그러니 아직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걸 경험해 보지 못한 북한에게 자율 투표라는 방식을 열어준다면 북한 갖가지 분야엔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엘리트가 넘쳐날 것 같습니다. 지금 북한 사회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계층은 사실 진짜 엘리트가 아니잖아요?
이승재: 저희가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서 나눈 얘길 되돌아보면 북한 인민들은 엘리트라는 말에 존경보다는 거부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한에서도 엘리트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엘리트라는 위치나 신분을 이용해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뉴스에 보도되는 등 사건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죠. 이런 사람들은 엘리트라기 보단 엘리트주의에 빠져서 사회의 정의를 무너뜨리는 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남북한의 중심에 있다면 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남북한에는 많은 선거가 있을 텐데요. 다음 후보자들도 이 점을 꼭 알고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