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한국 공무원 對 북한 사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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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오늘은 공무원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한국에서 공무원이란 쉽게 말하면 국가기관에서 일 하면서 국가로부터 로임을 받는 직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북한에선 '공무원'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요?

조현: 네. 공무원이라고는 안 하고요. 사무원이 가장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남북한 국가직의 의미는 많이 다릅니다. 한국은 정부부처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사람, 군인, 경찰, 교사까지 다 공무원에 포함되고요. 또 한국의 거리가 유독 깨끗한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이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도 공무원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북한 사무원은 국가기관이라기 보다 노동당에서 직접 관리하는 기관 근무자를 말하는데요. 정권기관, 검찰소, 재판소, 보위부, 협동농장경영위원회 등이 여기 포함되지만 한국과 달리 교육직은 사무원으로 보지 않습니다.

남한의 인기 직업, 공무원

북한 사무원의 인기는?

이승재: 한국에선 공무원이 인기인데 북한의 사무원은 어떤가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직업인가요?

조현: 경찰이나 보위부원처럼 권력을 어느 정도 휘두를 수 있는 직종만 인기입니다. 한국과 반대로 교원은 전혀 선호대상이 아니고요. 인민위원회, 지방단체 등에서 일해도 어떤 직종에서 일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급이 달라집니다. 사무원이 생활비를 받아봤자 월 5천~1만원 정도고요. 그거 가지고는 쌀 1~2kg밖에 못 사니까 부정부패가 심해지죠. 하지만 한국은 공무원 중에 정규 행정직만도 110만여 명인데 매번 월급도 잘 나오고 퇴직 후 연금도 잘 나와서 인기가 아주 높습니다.

이승재: 한번 공무원으로 시작하면 만 60세까지 일자리가 보장되고요. 퇴직 이후에도 노후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다달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연금이 나와서 정말 인기 직업이죠. 하지만 과거를 보면 공무원의 위상도 많이 바뀐 걸 알 수 있습니다. 80년대까지 공무원이라고 하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직업이었는데, 90년대 들어와 판세가 바뀌었죠. 경제위기가 오면서 일반 직장이 많이 줄었고 앞서 말했듯 정년과 연금의 보장으로 공무원은 20년 넘게 한국인이 선호하는 직업 1위에 올라섭니다. 요즘은 좋은 대학 나와도 쉽게 될 수가 없어요.

조현: 그래선지 요즘 공무원 하면 개인적으로 엘리트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한국 공무원 시험이 엄청 어렵거든요. 직종마다 다르지만 보통 20:1부터 100:1까지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그러니 누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이승재: 공무원 시험 영어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누가 농담으로 불어 수준이라는 말도 하더군요.

조현: 그러니까요. 결국 공무원이 됐다는 건 그 사람이 노력한 결과이니 그 과정을 견뎠다는 게 대단한 거죠. 한국에서 북한 간부에 해당하는 고위급 공무원은 몇 년 간 머리 싸매고 공부해서 어려운 시험에 붙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 번 공무원이 되면, '철밥통'이라고들 하죠. 한 번 공무원이 되기만 하면 잘릴 일이 없고 과오 없이 잘 버티면 노후에 연금이나 복지혜택도 좀 있고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하기보다 그저 무난하고 튀지 않게 일하는 사람들 같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아요.

안일하게 일하는 남한 공무원

부정부패의 상징 북한 사무원

이승재: 맞아요. 그런 것 때문에 과거 국민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하는 일 별로 없는 공무원들에게 왜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과 연금을 올려줘야 하나 이런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거든요. 일반 기업은 정기적으로 직원을 평가해서 승진을 시켜주거나 로임을 높여주기도 하는 반면, 솔직히 회사에 도움 되지 않으면 해고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늘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데 공무원은 그러지 않아도 되니 안일하다는 비판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현: 무슨 말씀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에서 부당한 권력과 부정부패의 상징인 사무원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저도 한국 공무원들이 안일하게 일하는 부분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일단 한국 공무원들 정말 친절합니다. 처음엔 좋았는데 기계처럼 깍듯하게 예절 지키는 모습이 너무 실무적이고 교육된 모습 같아 어떨 땐 차갑게 느껴졌어요. 규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해결해주지 않는 모습이 섭섭하기도 했고요. 만약 이런 안일함이 계속된다면 창의적일 수는 없겠죠. 사실 공무원이란 국민을 위한 직업인데 제도나 규칙이 잘못되었으면 상사한테 투쟁해서라도 고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희생과 열정보다는 그냥 그럭저럭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저도 이런 오해들을 줄이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주변에 탈북민 공무원들이 좀 있는데 그들 보면서 공무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사실 탈북민들은 공무원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한국 사람들과 동일하게 경쟁하기는 어렵고요. 보통 탈북민 특별전형이라고 남북교류나 한국 내 탈북민 지원사업 관련해서 뽑는 경우가 있어요. 해당 부분의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요구합니다. 탈북민끼리도 경쟁이 치열해서 공부 많이 하는 사람이 들어갑니다.

틀에 박힌 공무원의 이미지를 깨고 있는

탈북민 공무원들이 있다?

이승재: 선생님 지인 중에도 공무원이 되신 분이 있나 보군요.

조현: 네. 한 탈북민 여성은 고양시청 남북교류협력협의회에 취업했는데요. 이 직종에 들어가기 위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따냈습니다. 한국 많은 단체에서 시도하는 탈북민 지원사업의 경우 더러 북한 주민과는 관련 없이 일하는 사람의 실적만 부각되는, 허울뿐인 사업도 솔직히 좀 있는데요. 이 분은 북한 출신이잖아요.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니까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뭔지 동료들을 열심히 설득해서, 결국 상당히 효과적인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경기도청 소속의 여성 심리상담 공무원인데요. 탈북민의 정신치료를 위해 이 일을 꿈꿨고 박사과정 수료까지 하면서 이 일에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이분 역시 탈북민 복지의 사각지대를 계속해서 발견해내고 경기도청 관계자들과 깊이 소통하면서 그들의 동의를 얻어 탈북민 사회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승재: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네요. 그래서 요즘 한국 공무원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바로 창의성이라는 변화인데요. 말씀하신 대로 어떤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인 공무원들 중에도 혁신적인 분들이 많아지고 있고요.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해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직사회에서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무원 한 명의

작은 생각의 변화가 부른

세계적인 효과

조현: 맞아요. 요새 공무원들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저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야근하는 분들도 많고 특히나 코로나19 이후에 너무나 업무가 과중되어 고생하는 그들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요즘 창의성으로 인정받는 공무원 중에 오충섭 님이라고 한국관광공사에 근무하는 분이 있는데요. 이분이 기획한 한국 홍보 동영상이 세계최대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서 조회 수 2억 회를 넘길 만큼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어요. 보통 관공서에서 만드는 홍보 영상은 한국의 고궁, 부채춤, 자연 등등 고급스런 한국의 문화재들을 담고 있는데 이번 동영상은 그야말로 웃깁니다. 한국에서

자랑할 만한 주요 장소에서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사람들이 광대처럼 막춤을 추는 거예요. 그저 웃음만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절로 춤을 추게 됩니다. 이런 감성이 전 세계에 먹혀서 세계인들은 한국이 즐거워 보인다며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정말 한국에 관광하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노동당의 심의, 승인에 의해서 사무원이 됩니다. 만약 관광 담당하는 사람이 김정은을 이렇게 희극화했다면 바로 모가지가 달아났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 북한에서 노동당의 정책과 위배되는, 어떤 창의적인 의견을 내는 사무원들은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이승재: 이렇게 공무원 한 명의 작은 생각의 변화 하나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참 놀라운데요.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시작한 공무원들의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