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진화하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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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한국어 사전에서 '공무원'이라고 검색해보니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담당하고 집행하는 사람'이라고 나오네요. 지난주에 우리가 한국엔 여러 종류의 공무원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흔히 말하는 행정 관리 말고도 경찰, 군인, 교사, 교도소의 간수까지도 모두 공무원에 속합니다. 공무원의 범위가 이렇게 넓은 걸 생각하면 사명감 같은 것도 중요해 보이는데요. 선생님은 공무원으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자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뇌물 받은 북한 공무원의 말로는 총살형?

조현: 봉사!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죠. 공무원이면 무엇보다 국민의 편의, 건강,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북한처럼 공무원에게 주는 것 없이 무조건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그럼 바로 부정부패가 많아집니다. 제가 북한에서 아는 사람중에 전력공업소 부상이 있었는데 그 양반이 뇌물을 너무 많이 받고 뇌물을 바친 사람들에게만 전기를 공급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말로가 좋지는 않았어요. 나중엔 걸려서 결국 총살 당했습니다. 이처럼 공무원의 지위를 남용해서 뇌물을 받거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악습은 가난한 국가일수록 더 심하다고 하네요. 아프리카나 북한이 더욱 그렇습니다.

이승재: 한국 같은 경우는 공무원이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평생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각종 복지혜택을 주고 있는데요. 이런 것들을 통해 뇌물 수수 등의 폐단을 방지할 수 있죠.

조현: 네. 공무원 복지혜택 중에는 주택자금을 쉽게, 아주 낮은 이자로 빌릴 수 있다는 것, 또 훗날 퇴직하고도 생활비처럼 다달이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연금'이 있다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지난주에 얘기한 것처럼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이미 다 보장이 되니까 발전 없이 그저 안일하게, 적당히 일하게 되는 단점도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과거 한국 공무원이 그렇게 보였다 해도 지금 공무원 사회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요. 공무원에게 성실성, 국가를 위하는 공동체성, 앞날을 이끌어갈 훌륭한 창의성 등 요구되어지는 것도 많고 시민들이 그들을 직접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도 도입되고 있습니다.

변화의 바람 부는 한국 공무원사회

최고의 공무원은?

이승재: 어느 사회나 완벽한 제도를 가진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각자의 사회가 가진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발전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겠죠. 제도적인 것뿐 아니라 공무원 스스로도 변혁을 시도하고 있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선생님은 뉴스를 통해서나 직접 만나 본 공무원들 중에 '아, 이런 분들은 진정한 공무원이다' 느낀 적 있으신가요?

조현: 그런 분들을 엘리트 공무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으신 분들, 솔직히 제 맘의 최고 엘리트는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공무원입니다. 얼마나 열심히들 하는지 거리가 정말 깨끗하잖아요.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는 이분들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분 중엔 고위직 행정공무원 한 분이 계시는데요. 한국의 행정공무원은 1급부터 9급까지 있죠. 시험은 5, 7, 9급이 있고 시험을 통과하면 해당 급수부터 시작해서 승진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 5급 행정고시인데요. 한국엔 출신성분이란 게 없으니 이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각종 정부기관의 고위급 관리자가 됩니다. 북한으로 말하면 단숨에 도급 기관의 과장부터 시작하는 거죠. 공무원 6, 7, 8, 9급이 실무자급이면 5급 이상은 실무자에게 방향을 정하고 지시를 내리는 관리자인 셈입니다. 행정고시를 지원하는 데는 학력 제한이 없지만,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비해 기본 학력이 워낙 높은데다 행정고시는 고학력자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 합격하니까 지식 상으로는 이미 훌륭한 엘리트라고 할 수 있죠.

이승재: 맞아요. 워낙 어려워서 낙방하고서도 몇 년씩 시험을 봐서 합격하기도 하더라고요.

산림청장과 함께 하는 톡톡콘서트

여성공무원들의 고충을 듣고 혁신방안을 모색하다

조현: 네. 그 어려운 행정고시 출신으로 최근 뉴스에 많이 나왔던 사람이 산림청의 최병암 청장입니다. 최근에 한국의 울진, 삼척 지역에 엄청난 산불이 나서 축구장 면적의 3만 4930배가 불에 탔어요. 총 213시간 만에 불길이 잡혔는데 이때에 산림청장이 방송에 나와서 현황보고도 하고 주민들이 미리 피신도 할 수 있도록 불길 방향도 알려주면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이 최병암 청장이 작년 11월에 산림청에서 여성 직원 500여 명과 함께 독특한 행사를 하나 열었는데 이름이 '산림청장과 여성 직원간의 소통의 장, 톡톡콘서트'입니다. 청장이 직접 여성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는 그들이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혁신 방안에 대해 모색한 자리인데요. 청장은 여성 직원들과 일과 가정 양립 문제, 직장에서 듣기 불쾌한 성적인 발언이나 여성을 어렵게 하는 행동 등에 대해서 솔직한 대화들을 이어갔습니다. 최병암 청장은 "여성 직원들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없애고 누구나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고 싶다"면서 "모두가 존엄성을 인정받는 산림청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는데요. 이미 한국 사회는 북한에 비해 여성에게 충분히 기회가 주어진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에겐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는 노력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북한은 70년째 여성은 남성의 혁명을 도와야하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잖아요. 여전히 발전하지 않는 생각들이 아쉽기도 하네요.

이승재: 네. 그런데 한국에서는 최근 10여 년 사이에 양성평등과 함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남녀 갈등 양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예로, 여자 경찰을 들 수 있는데요. 범죄 현장에서 흉악범들이 여경들을 폭행하려는 일들이 벌어지자 경찰청에서는 여경들의 보호차원에서 내근직으로 많이 배치하고 남자 경찰을 현장에 더 많이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강한 불만을 표출한 사람들이 있었죠.

북한 여성은 70년째 남성을 돕는 존재

남한 내 남녀 갈등은

진정한 양성평등사회로 가는 과도기

조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여자라도 경찰이 힘든 거 알면서 왜 경찰에 지원했냐고 여경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여성들이 점점 더 훌륭하고 지식도 높은데다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는데 한국 남자들은 여전히 군대도 가야하고 사회에서도 여성에 비해 많이 밀리는 경향도 있으니 이에 불만을 가진 남자들이 이런 주장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여경들이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성만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필요한 상황이 꼭 있기 마련이고요. 여성은 원래 물리적으로 남자보다 약한데 남성과 똑같이 폭력을 제압하지 못한다고 경찰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더 차별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남녀 갈등은 한국 사회는 더 발전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내홍이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 경찰로서 훌륭한 분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 광진구 소속의 지구대장, 파출소장인 44세 여성인데요. 서울대학교 출신에 영국 케임브리지대 범죄학 박사까지 마친 굉장한 엘리트입니다. 이 정도 되면 경찰이 되고서도 충분히 내근직으로 편한 자리에서 근무할 수 있는데도 16년간 위험한 현장 근무를 선택했어요. 전국에서도 치안 수요가 상위권에 드는 동네에 근무를 지원했고, 심지어 거기서도 강간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이사까지 했다네요. "자신이 거기 살아보니 밤길이 정말 위험하더랍니다. 그러니 안전을 지킬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현장을 모르거나 책임지지 못하는 리더가 아니라 명확한 판단을 내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저는 이런 공무원이 이 시대에 필요한 훌륭한 젊은이, 훌륭한 경찰, 훌륭한 엘리트라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과거 공무원 하면 단조롭게 시키는 일만 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저도 이 프로그램 준비하면서 보니 정말 힘든 일도 묵묵히 감내하면서 어떻게 하면 국민들 삶에 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 인민들이 공채로

한반도 공무원 되는 그날까지

조현: 21세기엔 워낙 예측할 수 없는 난관에 많이 부딪칩니다. 코로나19도 그 예가 될 수 있겠죠. 특별히 한국처럼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고 민주화에서도 성공한 나라들은 사회 안에 정말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생각이 공존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잘 아울러서 모두가 인정할 만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더욱 깊이 있는 성장으로 이끌어갈 엘리트가 필요한 거 같아요. 공무원 사회를 잘 살펴보니 5, 7, 9급 공채 말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채용이 이뤄지더라고요. 앞으로 통일 시대가 되면 북한 인민에게도 다양한 기회가 열려있을 겁니다. 분단 70년 동안 헤어져서 너무도 힘들게 살았던 남북한 사람들에게 정말 행복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비록 북한에선 지금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회는 언제나 준비된 사람을 필요로 하니까요.

이승재: 네 선생님 오늘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