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난주에 우리가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엘리트 작가와 훌륭한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선생님께선 역사 소설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는 제일 존경하는 작가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총 16권에 달하는 대하소설 '토지'가 있죠.
조현: 맞아요. 박경리 선생이 그 책을 쓰는데만 26년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이승재: 그러니까요. 구한말, 경상도의 한 마을을 통째로 먹여 살릴만한 만석꾼 집안의 어린 딸이 주인공인데요. 이 책엔 한국 근대사가 총 집대성 된 것 같아요. 이 소녀가 자라 할머니가 될 때까지 격변하는 한반도의 역사를 생생히 볼 수 있죠. 동학농민운동부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경술국치, 3.1운동에 이어 광복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대사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배경이 되는데요. 제가 밤이 새도록 이 책을 읽었는데, 작가가 이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내면 심리를 정말 잘 표현하셨어요.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제가 얻은 생각의 변화는 '아무리 혼란스러운 세상이라 해도 이념보다 인간이 먼저다' 이거였습니다.
10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북한
책 한 권만 봐도 드러나
조현: 제가 토지를 보진 못했지만 한국에서 여러 번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훌륭한 작품인 건 알고 있습니다. 저는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는데요. 1920~30년대에 한 가정의 다섯 딸들이 그 시절을 살며 겪는 고난의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천대받는다고 할 정도로 차별이 심했고, 존중 받지 못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의 인권과 남녀평등이 중요한 지금의 남한과 달리 북한은 10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때 여성들이 얼마나 아프게 살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여성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승재: 그렇게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바로 작가의 엘리트적인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조현: 맞습니다. 북한에도 이런 작가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작가가 당대에 엘리트로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후대에 인정받는 경우도 많잖아요? 지금 북한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몰래 쓰는 분들이 있는데요. 지금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지만 후에 그분들 글이 세상에 감동을 주고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런 분들이 언젠간 세상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 북한예술은 얼어붙었죠. 인간의 자유로운 생각 표현은 완전히 금지니까요.
후대에라도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며
지금도 북한에서 몰래 글 쓰는 작가들
이승재: 그래서인지 탈북 이후 한국에서 작가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조현: 네. 많습니다. 일단 한국에선 무슨 주제든 쓸 수 있고요. 예전엔 책으로 발간 되어야 읽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누구나 마음대로 써서 인터넷에 올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겪은 고생이나 그때의 감정을 자유롭게 적고 있어요. 이런 글들이 한국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게 하고, 북한에 관심도 갖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승재: 선생님도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조현: 오늘 여성분들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저는 위영금이라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북한에선 출신성분이 나쁘다 보니 함경남도 오지에서 정말 거지처럼 가난하게 사셨대요. 고난의 행군 때 중국으로 탈출했고 중국에서도 온갖 차별을 다 받다가 2006년 한국에 왔는데요. 아마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하나 둘 적어 내려가니 훌륭한 시가 됐답니다. 그것들을 묶어 '두만강 시간'이란 시집을 펴냈죠. 북한에서의 고생부터 남한에 정착하면서 겪은 어려움도 모두 시로 표현해 냈는데 저도 너무 와 닿더라고요.
이승재: 이분이 북한에서는 많이 배우지 못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박사님이 되셨더군요.
탈북 후 북한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들
남북 문화적 간극 줄여나가
조현: 네.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정치학 박사가 됐고요. 한국 언론에 북한 명절, 음식, 문화에 대해 연재하는 칼럼도 쓰면서 남북의 문화적 간격을 좁히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보다 북한에 별 관심이 없더라고요. 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요. 여전히 탈북민에 대한 차별의 시선도 남아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위영금 작가처럼 북한에 대해 잘 알리고 우리 탈북민을 이해시키는 작업을 지속한다면, 북한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작가의 영향력이 중요하고 제 기준에선 통일을 준비하는 엘리트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승재: 훌륭하시네요. 저도 책읽기를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 예전에 비해 책이나 글을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아요.
조현: 맞습니다. 아무래도 볼 게 너무 많죠. 북한 분들도 책 대신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2~3년 됐나요?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였어요. 원래 '메밀꽃 필 무렵'이라고, 1941년에 이효석 작가님이 쓴 유명한 소설이 있는데 제목을 비슷하게 지은 것 같습니다. 임상춘이라는 작가가 썼는데, 고아로 자란 한 여성이 차별 받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거기서 많은 시청자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한국 사회에 영향력이 컸죠. 이렇게 방송이 주는 힘도 글과 동일하거든요. 저 역시도 북한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미국 영화를 봤는데 모든 걸 다 잃은 여성이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겠다고 외치는 장면에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 역시 마가렛 미첼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고요. 또 영화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이 방송도 북한 분들에게 영향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좋은 정보를 드리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준비하잖아요. 저 역시 북한에서 이런 대북방송을 듣고 바깥세상에 대해 정보를 얻으면서 탈북의 용기를 얻었고요.
글 한 줄, 방송 한 마디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이승재: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이 <남북 엘리트의 역설>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2021년 4월부터 조현 선생님과 함께 했는데 딱 1년 됐네요. 어떠셨어요?
조현: 우리가 엘리트들을 통해서 남북한 사회의 구조나 모순점을 살펴보는데 북한에선 모든 사람의 삶이 신분으로 한계 지어지는 것이 아쉬웠어요. 어느 사회에나 엘리트가 있기 마련인데요. 남한은 많은 직업군의 다양한 엘리트가 있는데 북한은 그저 노동당에게 잘 보이는 사람만이 엘리트가 된다는 이 단순함이 가슴 아팠습니다. 북한에선 엘리트가 되었다 해도 그들의 인생은 오로지 누군가에게 충성하는 것 하나, 정말 단조롭거든요. 만약 북한에서 그들이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북한이 오늘처럼 힘들고 어렵게 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또 북한이 엘리트를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적 조건들이 부족해서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안타까웠고요.
이승재: 그렇습니다. 저 역시도 북한에선 엘리트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저희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다양한 직업과 그 안에 투영되어 있는 개개인의 꿈과 인생철학, 더 나아가 사회적 사명감까지 엿볼 수 있는 진짜 엘리트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시면서 언젠간 북한의 많은 분들도 다양한 직업과 꿈을 가지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여기까지고요. 다음주 이 시간부터 북한 농축산을 연구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조현 선생님께서 또 이 분야 전문가시잖아요?
북한의 식량 부족
바깥에서 해답을 찾아야
조현: 네. 그래서 고맙게도 다음 프로그램도 함께 하게 됐는데요. 계속 청취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고요. 북한은 지금 식량이 많이 부족한데, 농축산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외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실질적으로 농축산이 발전해서 주민들의 식량난 해소에 기여하려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가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 제가 북한에서도, 한국에서도 농축산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한국이나 국제사회의 발전된 나라들의 농축산 정책도 말씀드리고, 또 북한의 농민들이 농축산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과 방법들을 제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승재: 네. 너무나 기대됩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을 청취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