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북한 분들에게도 한국의 TV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무수히 많은 예능 중에서 굵직하게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음식 먹는 걸 보여주는 방송, 소위 '먹방'인데요. 사실 먹방이 인기를 끈 지는 오래 됐어요. 지루할 때도 됐는데 여전히 인기란 말이죠.
조현: 저도 먹방이라면 넋 놓고 보게 됩니다. 사람은 역시 먹는 게 첫째죠. 오죽하면 김일성도 '의식주'란 말을 '식의주'로 바꾸지 않았나요? 먹방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보면 그 음식을 먹고 싶어서 사먹으러 가게도 하지만, 살까기를 해서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걸 보며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또 요즘 먹방을 보며 직접 요리해서 먹기도 하니까 식생활을 발전시키는 기능도 합니다. 방송 보면서 평소 요리 안 하던 사람도 그걸 만들어보게 되잖아요. 북한에선 대충 만들고 고춧가루만 올려도 잘 팔리는데 남한은 잘 만들지 않으면 안 팔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하다 보니 좀 더 질 높은 음식을 찾습니다. 또 식당에서는 아주 친절한 대접, 소위 인간대접을 받는 환경이 북한과는 확연히 달라요. 요리에 대한 방송은 이런 것을 모두 보여주니까 전체적인 식문화의 질을 높이는데 적잖이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이승재: 그래서 저는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도 남북한이 다를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선 요리사가 인기죠. 전에는 가정주부들에게 요리법을 가르쳐주는 요리사들이 좀 유명한 편이었는데, 요즘은 한국음식을 재해석하거나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새로운 요리를 선보여서 음식문화를 선도한다던지 또는 사회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요리사들이 많잖아요. 북한은 어떤가요?
조현: 좀 달라요. 북한에선 요리사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엘리트는 아니어도 사람들의 선망이 되는 직업이긴 합니다. 고난의 행군 이전엔 각 구내에 식당이 10개 정도도 안 됐거든요. 모두 국영식당이죠. 국숫집 한두 개, 빵집 한두 개, 고깃국집 한두 개, 먹을 것이 없으니 음식 옆에 늘 붙어있는 요리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 비록 개인 식당이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분위기는 똑같습니다. 저도 한국 와서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는데요. 아무래도 북한 식으로 생각해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국은 이제 아무나 요리사라고 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당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식당주인 혹은 요리하는 사람, 주방장 이렇게 말하고요. 요리사라는 말이나, 영어로 셰프라는 단어도 많이 쓰는데 이 말들은 좀더 전문적이고 잘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바뀌는 느낌입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이승재: 저도 동의합니다. 셰프(chef)로 불리는 전문 요리사들이 TV에서 창의적이면서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며 경쟁하는 프로그램들만 봐도 그 역량이 엄청난 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에 퍼진 것처럼 요즘 한국의 음식문화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면서 그 위상이 훨씬 높아졌잖아요.
조현: 그렇죠.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백종원 씨를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요리연구가이자 요식산업의 대가인데, 요리가 거창하지 않다는 걸 전 국민에게 깨우쳐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분에게 영향을 받았는데요. 일단 다양한 퓨전요리도 많이 소개했고요.
이승재: 퓨전요리, 서로 다른 요리를 섞어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냈다는 뜻이죠. 치즈가 들어간 인절미라든가, 구운 김치가 들어간 서양식 샌드위치라든지요.
조현: 네. 또 쉽게 요리하는 방법을 많이 가르쳐줬어요. 예를 들어 2시간 끓여야 하는 미역국을 20분 만에 완성한다던지요. 얼마나 많은 대중이 백종원 씨의 요리법을 따라하고 먹습니까? 이 분 외에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음식을 먹어도 좀 더 건강하게, 쉽게, 신선하게 먹는 정말 다양한 방법들을 요리사들이 꾸준히 연구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한식의 질을 더욱 높이고 있죠.
이승재: 문화적으로 개선된 부분도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왜 한 그릇에 찌개를 떠놓고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같이 넣어서 먹잖아요. 그래서 한식이 지저분하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요. 식당에서도 개인 그릇에 음식을 담아준다든지, 그런 부분을 개선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좋은 인식을 심었죠. 이것이 한식의 발전을 이루면서 이어서 한식의 세계화까지 뻗어나갈 수 있게 한 겁니다.
조현: 맞습니다. 또 한국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사는데 또 이들 덕택에 한식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엔 해외 사는 한국인한테 김치냄새 난다고 차별하는 외국인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에서 김치가 사랑받는 것만 봐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죠. 그만큼 한국의 요리사들의 위상도 더 올라갔고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엔 요리사가 전문직이라기보다 기능직에 불과했던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는 전문 직업이 된 것 같습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그런가하면 탈북민들도 한국에서 요리 많이 하시잖아요. 한국에 북한음식점이 꽤 있지만 저희처럼 북한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를 것 같았는데요. 그러던 것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양측 정상이 평양냉면을 함께 먹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평양냉면과 북한음식이 한국 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선생님도 한국에서 여러 북한음식점 가보셨을 텐데 솔직히 어떠셨어요? 고향에서 드시던 맛이 느껴지던가요?
조현: 솔직히 딱 거기 맛은 아니고요. 흉내 정도는 낸 것 같아요. 못 만들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북한음식은 굉장히 단순해서 제 아무리 옥류관이라도 김치, 간장, 된장 정도로만 반찬이 나오거든요. 여긴 북한식당이라 해도 반찬 가짓수도 많고 맛도 좀 변형되었는데, 말했듯이 한국 사람들은 좀 더 건강하고 깨끗하고 고급스런 맛을 찾는데다가 음식의 조화나 영양의 균형도 중요하게 여기니까 거기 맞춰야 했을 거에요. 하지만 북한 음식을 만든 분들의 역할이 한국에서 상당히 컸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6.25전쟁 때 내려오신 실향민들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북한음식을 이어가시면서 민족의 맥을 끊지 않아주셨고요. 최근에 들어온 탈북민들은 음식을 통해서 북한의 존재감을 잘 알렸습니다. 이애란 박사라고 탈북민 중에 북한음식 연구가가 있는데요. 북한 전통음식, 과자, 식혜 등을 많이 만들어 팔기도 하고 여러 사회단체에 기부하면서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의 박사학위 논문은 북한 음식이 주제인데 지역적 특성을 가진 요리들을 소개하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 것 같아요. 또 탈북민 중에 요리에 조예가 있는 분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다양한 요리 경연에 참여해서 북한 요리를 선보였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금강산순대라던가, 인조고기같은 음식을 소개하면서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모두 2000년 이전의 한국엔 없던 음식이거든요. 이분들 모두가 북한음식을 또 다른 한국 문화 영역으로 이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그렇게 보면 한국에서 탈북민들의 요리는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냥 만들어 먹고 배부르면 끝이었을 텐데 한국에서 이 요리들이 북한이라는 존재를 세상에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된 거니까요. 실제로 사람들은 요리를 통해 북한의 또 다른 모습들에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기도 하는데요. 이게 바로 선생님들이 요리사를 엘리트로 평가하는 이유 같습니다. 맞을까요?
조현: 맞습니다. 한국 요리사는 식생활 수준을 높이고 한식문화의 다양화를 통해서 더욱 건강한 삶을 이끕니다. 또한 음식을 통해 한국을 세계 속에서 우수한 문화를 가진 국가로 알리는 기능을 하죠. 북한 요리사들은 어쩌면 세계 속에 갇혀 있을지도 모를 북한을 끌어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소리 소문 없이 한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엘리트라고 저는 생각하는 거죠.
이승재: 그렇습니다. 한국 요리가 유명해지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국문화를 배우겠다며 직접 한국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요리사들의 숨은 노력이 한국을 어느새 문화강국으로 이끈 것이죠. 물론 이 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 주에도 한국 요리에 대해서 얘기 나눠볼텐데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애쓰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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