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북한에서 미사일을 쏘거나 정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을 때 뉴스에 출연해 이를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북한전문가들인데요. 그중엔 탈북민이 대다수입니다. 어떤 분들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죠?
조현:네. 세계북한연구센터의 안찬일 박사,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고영환 연구위원 등이 자주 나오죠. 안찬일 박사는 지금 60대인데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여기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요. 고영환 위원은 북한에서도 고위급에 있었으니 아무래도 경험이 많겠죠. 이분들은 북한이 주요 뉴스로 떠오르면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언론과도 인터뷰하는 등 지위가 상당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선 북한전문가로 통하면서 내로라하는 교수들이나 외교관 출신 전문가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요.
이승재:이분들은 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또 북한의 정세를 파악하면서 통일 후 미래까지 준비하는 연구들을 많이 하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늘 궁금했던 게, '탈북민들이 왜 북한전문가로 활동하는가' 였습니다. 사실 조현 선생님도 그런 분이죠. 여기서 북한 연구로 석·박사 공부를 하셨으니까요. 북한을 나와서 북한을 다시 연구하고 파헤치는 것이 저라면 별로 내키지 않을 것 같거든요.
조현:맞습니다. 저도 북한이 싫어서 나온 건 맞죠. 그래서 이 공부를 시작할 때 스스로 여러 번 의문을 던졌습니다. '왜 내가 북한을 배워야 하나?' 저는 그 답으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일단 제가 북한을 떠나 바깥세상에 정착하고 보니 '내가 정말 북한을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선로동당이 늘 인민의 행복을 위해 일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밖에 나와 보니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하는 국가나 정당이 더 구체적으로 국민의 삶을 위하는 겁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저 같이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우린 친구와 고향을 향한 애끓는 마음으로 북한의 민주화, 자유화를 위해 북한전문가가 되는 길에 들어선 거죠.
이승재:그렇다면 탈북민이 북한전문가가 되었을 때의 차별점은 뭐가 있을까요?
조현:탈북민이 북한전문가가 됐을 때의 차별점은 확실히 있습니다. 남한이나 다른 국가 출신의 북한전문가는 북한 문제를 분석할 때,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연구이론들, 어떤 정치공식의 틀 안에서 북한을 파악하려고 해요. 물론 그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북한 출신들은 북한의 현실과 구체적인 상황을 몸으로 부딪쳐서 잘 알잖아요. 분단 후 70년 동안 고착화된 민족성도 있고요. 통치자 그룹과 피통치자 그룹의 일원으로서 직접 경험도 해봤으니 각각의 입장과 속생각에도 빠삭합니다. 따라서 북한 내부 경험자로서 그들의 심리를 이용해 날카로운 비교분석, 문제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거죠. 게다가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북한을 알리면 좀 더 절박한 북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좀 더 솔직한 얘기를 해보면 한국 땅에 와서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 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해 보니 결국 또 북한이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남한 사람들도 북한전문가가 되겠다고 하는데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사명감도 있었고요. 대부분 탈북민이 비슷한 이유로 북한전문가가 될 겁니다.
이승재:그렇군요. 그런데 탈북민이라고 해서,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다 북한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와서 한국 출신도 어렵다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석사, 박사학위를 딸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거죠. 또 이런 북한학에 도전하는 남한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북한학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조현:우선 북한학이 북한주민들의 삶 개선을 위해서 확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의 말처럼, 북한을 칭찬하고 높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량국가, 테러국가로 비난합니다. 이유는 북한 정권이 인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계속 핵무기를 만들어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를 막아야 하는 당연한 목적이 있는 거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을 알아야 북한에서 진행되는 현상을 분석하고 전술과 전략을 짤 수 있으며, 이는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세계사회가 간절히 바라는 북한의 인권개선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을 공부해야 하기에, 한국에서 북한학이라는 학문이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이승재:이렇게 한국사회에도, 세계사회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북한학, 그런데 공부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북한전문가가 되겠다는 탈북민 중에도 박사학위까지 따려고 공부하다가 포기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어떤 공부를 하게 되나요?
조현:북한학이라고 하면 굉장히 포괄적입니다.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교육, 군사에 대해 모두 배우고요. 북한주민의 일상이나 북한주민의 생각까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를 통틀어 북한학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대학교에는 주로 '북한학과'라는 명칭으로 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다 배우고요. 제가 보니 북한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학원까지 쭉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대학원에 가선 세부전공으로 나누어 더 자세히 배우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북한 경제 부문에서, 농축산을 전공했습니다.
이승재:한국에는 얼핏 10개 정도 대학교에서 북한학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2000년대 들어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북한학이 좀 더 체계화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최근에는 그 인기가 좀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몇 개 학교에선 북한학과가 폐지되기도 했고요.
조현:아마도 그 이유는 북한이 하도 일방적인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공들여 세운 개성공단도 폐쇄시켰고요. 국제사회에서 하지 말라는 핵무기 개발을 계속 하다 보니 결국 대북제재 상황에 처했잖아요. 그러니 남북교류, 협력 쪽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북한과의 교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젊은이들 중에 생각 외로 북한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해외 유학을 통해서 해외에서 북한학을 공부하는 경우도 꽤 됩니다.
이승재:직업적으로 전망이 좋은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북한전문가들을 보면 아까 선생님 말씀처럼 사명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엘리트로 대접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조현:저의 경우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공부하니까 저 역시도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엘리트가 된 기분입니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이 일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 북한학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지요. 하지만 제가 느끼는 건 한국, 세계 사회 곳곳에서는 북한을 잘 알고 분석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북한과 관련한 문제들을 설명하는 이런 방송도 하고 있고, 북한 농업이나 축산업에 관심이 있어서 연구하는 단체에 종종 자문이나 강의도 하는, 이른바 필요한 존재가 됐잖아요. 어쩌면 제 삶이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이승재:사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 정권의 행동을 문제 삼고 북한의 국가성을 비난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북한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전문가가 된다는 건 사실 상 쉬운 길이 아니지만 한국 내 탈북민 북한전문가들은 자신의 명예와 부가 아닌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남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한국에서 그 몫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북한전문가들, 어떤 분들이 있는 지 들어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