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세계 각국은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결과,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성은 어느 정도 이루어 놓았지만, 지구 환경은 지금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그 심각성은 큽니다. 주간 프로그램 '이제는 환경이다'는 세계 각국의 최신 환경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환경전문 민간 연구소인 '시민환경연구소'의 백명수 부소장과 함께 최근 열린 남북 산림협력 분과회담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김성준) (평양공동선언 이후) 경제협력 분과회담 중에는 우리가 처음입니다. 우리가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큽니다.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산림총국의 김성준 부총국장이 지난달 말 개성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산림협력분과회담을 시작하기 전 기자들에게 밝힌 말, 들으셨는데요, 이번 만남은 지난 9월 개소 이후 연락사무소에서 진행된 남북간 첫 회담이었습니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남한 정부가 가장 먼저 공식화한 남북 교류 사업은 산림협력입니다. 왜 보건, 의료 등이 아니라 산림이었을까요? 백명수 부소장의 설명입니다.
(백명수) 남북 산림협력은 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첫 사업입니다. 특히 산림 분야는 기후변화 대응과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분야로 인식돼왔습니다. 이와 함께, 남북한의 빠른 산림 협력은 북한의 산림 황폐화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의하면 북한의 산림 면적은 국토 면적의 73%를 차지하는데 황폐화된 산림이 전체 산림의 약 32%에 달합니다. 북한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산림훼손 최소화와 훼손된 산림의 복구 문제입니다. 지난번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기간에 남측 기업인들이 첫 현장 방문한 곳이 양묘장이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합니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경제계 특별수행원 17명은 지난 9월 중순 평양 개성고속도로 인근에 있는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의 조선인민군 122호 양묘장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의 양묘장의 규모는 47ha 정도이고, 이곳에서 연간 약 2,000만 그루의 묘목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양묘장은 식물의 씨앗, 모종, 묘목 등을 심어 기르는 장소인데요, 전국이 산림으로 우거진 남한은 양묘의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백 부소장이 지적한 것처럼, 산림 황폐화와 그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인데요, 이 때문에 이번 산림협력회담에서 남북은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중심으로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 들어보시죠.
(백명수) 남과 북은 소나무재선충병을 비롯한 산림병충해 방제사업을 매년 그 발생 시기에 맞추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병충해 발생시 상호 통보하고 표본 교환 등 산림 병충해 예방 대책과 관련된 약제보장 문제 협의를 추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남측은 다음달 중으로 소나무재선충 방제에 필요한 약제를 제공하고 공동 방제를 내년 3월까지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또 양묘장 현대화를 위해 시, 도, 군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는데요, 당장 올해 안에 10개의 양묘장 현대화 사업이 추진될 예정입니다. 이 밖에도, 산불방지의 공동대응, 사방사업 등 자연생태계 보호 및 복원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재선충이 나무 조직 내부로 침입해, 빠르게 증식해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수분과 양분의 이동을 방해하며 나무를 시들어 말라 죽게 하는 병입니다. 앞서, 남측 산림 전문가들은 지난 2015년 북한의 요청으로 금강산 소나무 병해충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방북했는데요, 금강산 내금강 지역과 외금강, 고성읍 지역을 조사하고 돌아온 전문가들은 소나무 피해는 있었지만, 재선충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남북은 10시간 넘게 전체회의 1차례 대표접촉 4차례, 종결회의 등을 하며 회담을 이어간 끝에 주요 방안들을 합의했지만, 북측 대표단장은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앞으로 이런 형식의 회담이 계속된다면 남측과의 산림협력에 기대를 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김성준 부총국장의 말입니다.
(김성준) 민족이 바라는 기대에 맞게 상응하는 높이에서 토론됐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회담의 북한 책임자가 ‘기대 이하’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엔 절박감이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북한이 회담에서 당초 기대했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를 이행하는 데 차질을 우려했기 때문 아니냐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산림복구를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2025년까지를 기한으로 정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남측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데, 남측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의식해 화끈한 지원을 하지 못하자 북측에서 불만을 터뜨렸다는 설명입니다.
북한 언론이 회담 개최 사실은 보도했지만 구체적인 합의 내용까지는 공개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3일 남북 산림협력회담이 전날 개최된 사실만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남북이 연내 10개의 북한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내년 3월까지 소나무재선충 공동방제를 진행한다는 등 공동보도문에 담긴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신문도 구체적 합의 내용이 빠진 기사를 4면에 게재했습니다. 백 부소장의 분석입니다.
(백명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산림협력에 대한 남측과 북측의 기대가 크게 달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원했던 사업은 각 지역에 있는 양묘장에 현대화 사업으로 태양광 시설 등을 갖춘 현대식 양묘장 건설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남측은 현대화 사업에 소요되는 자재들, 즉 비닐하우스용 비닐이나 철재, 관수시설 등 필요한 물품들의 지원이 대북제재에 저촉이 되기 때문에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요구했던 사업규모에 비해 10곳 정도에 그치는 양묘장을 현대화하는 게 발표됐던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 뒤 남측이 묘목 지원 중심의 산림협력을 계획했던 것과 달리, 북측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을 기대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남북의 산림협력의 구체적 절차들이 진행되면서 여러 장비가 필요할 텐데요, 이러한 장비들이 북한에 들어갈 경우, 대북제재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남측이 북한의 임업현황과 계획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협력을 위한 협상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일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남한 정부는 내년 산림 협력 사업 예산으로 1,137억원을 배정했습니다. 한국돈 1,137억원은 미국 돈으로 9970만 달러 가량됩니다. 남한의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는 이 돈이면 시중에서 한 그루에 5,000원 하는 3년 생 소나무 묘목 2,274만 그루를 살 수 있고, 2년 생 묘목으로 계산할 경우 7,580만 그루를 살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남한 정부가 북한의 산림 복구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줘도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북한의 산림 황폐화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백 부소장의 말입니다.
(백명수) 산림 황폐화의 원인을 짚어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난입니다.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산림복원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식량부족이나 연료부족 등으로 산림이 무분별하게 밭이나 땔감 등으로 훼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돼 식량과 연료문제가 해결되거나, 산림 및 에너지 분야에 협력사업이 함께 진행된다면 현재 진행 중인 북한의 산림을 복구하기 위한 공동노력은 성공하리라 기대해봅니다.
‘이제는 환경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