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 남편의 사망

0:00 / 0:00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지난 4월9일 원저성에서 99세로 타계 했습니다. 이에 영국 왕실은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필립공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밝혔습니다. 에딘버러 공작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필립공은 1947년에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을 하였으며 5년 후 엘리자베스 공주가 여왕으로 등극하면서 군주의 부군이 되었습니다.

필립공은 2017년에 영국 왕실의 공식업무에서 은퇴 했지만 그 이후에도 여왕의 배우자로써 2만 건이 넘는 업무를 수행하는 왕성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한때 여왕과의 사이가 안 좋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했지만 필립공은 결혼 50주년을 맞으면서 한간의 소문에 대해 부부 사이에 애착이 있기에 지금까지 함께 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면서 여왕의 곁을 73년간 지켰습니다.

영국 국민은 물론 영국 연방 국가의 국민들은 필립공을 기억하면서 특히 어린 청소년을 위한 자선 모금 행사에 많이 참여하여 젊은이들의 꿈을 키워주는데 큰 공여를 하였다고 말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필립공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자녀와 함께 버킹엄 궁전을 찾아 추모의 꽃을 올리기도 하였고 고인이 된 필립공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필립공의 장례식은 국가장례가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4월17일 당일 오후 3시, 2분간의 묵념 사이렌이 울립니다.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난 국가 지도자의 타계에 관해 영국에 사는 탈북민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영제국의 부군이 사망을 하였는데도 그 어디서도 국민들이 울면서, 온 나라가 침통한 분위기를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실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불만을 사회관계통신망에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뉴스에서도 왕실 지도자의 사망 보도가 너무 많다고 불만을 표시해도 그로 인해 감옥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영국 국민들은 이렇게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터 놓고 이야기 합니다.

영국에 사는 탈북민들이 놀라는 것은 북한에서의 경험과 비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1994년 7월8일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10년전에 영국에 도착하여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사는 한명희(가명)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명희 “술도 먹지 말라, 모여 앉지도 말라, 웃지도 말라, 놀지도 말라 했는데 애들이 4명이 모여 앉아 술 먹고 소리가 높았는데 그 아이들 모두 정치범 수용소에 갔어요. 그기 김일성 죽은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내 남편이 죽은 것도 울지 못하게 하더니…”

너무나도 다른 북한의 현실에 대해 외부세계 사람들은 놀랄 수도 있습니다. 한명희 씨는 현재 영국 여왕의 부군 사망을 보면서 북한에서 고인이 된 남편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짓습니다. 그때 당시 남편은 간복수로 배에 물이 차올라 힘들어 했던 시기였다며 안타까운 순간을 회상합니다.

한명희”김일성 우상화 때문에 산에 가서 생화를 꺾어다가 그 배 아프고 엄청 힘든 사람이 계속 아침 마다 가서 꽃을 증정하고 절을 하고 울어주고 와야 되잖아요. 그것이 참 남편이 아파 죽겠는데 오늘 내일 하는 사람이 김일성 우상화 때문에 우리가 충성 한다는 그런 의미로 무조건 해야 된다는 현실이 너무 어이 없었고 김일성이 7월8일 죽고 우리 남편이 9월5일 날 사망했어요.”

한명희 씨는 김일성 사망 후 3년간 누구도 본인 가족이 사망을 하여도 마음대로 울지 못했고 자신은 한식이나 추석이 되면 가만히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묘를 찾아가 명복을 빌어야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이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살아 생전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직위에 있었는지에 따라서 슬픔의 정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며 슬픔을 강요 받아서도 안됩니다. 영국 여왕 부군인 필립공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불현듯 “날고 싶다면, 당신을 짓누르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토니 모리슨의 명언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영국 멘체스터 박지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