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국제 인권 단체가 개입해야

0:00 / 0:00

지난 주 월요일부터 3일간 금강산에서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이 열렸습니다. 한국에서 89명과 그 가족들 197명, 그리고 북한에서 93명은 금강산 호텔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영국의 탈북자 이 모씨는 이번 이산가족 만남은 우리가 하나였다는 한반도의 정체성 즉 우리가 한민족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세대가 지나면 다음 세대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볼수가 없다며 이것이 정치적인 면에서 이루어진 구성이지만 정치적인 계산이 있다고 해도 계산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중요한 점은 60여년간 가족들과 헤어져 지내온 분들에게 가족과 만남을 준것 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이산 가족상봉을 전혀 할 수 없는 특수층들도 있습니다. 영국의 탈북민 이 모 씨의 말입니다.

이모: "내가 살던 은덕에는 국군포로 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실지로 이 사람들은 이산가족 상봉에 나간적도 없습니다. 탄광에서 석탄을 캐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살아가던 모습들을 많이 보고 살았습니다. 아마도 돌아가신 분들이 더 많을것 입니다. 그 분들도 역시 이산가족분들인데 가족들과 헤여진 후 단 한번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죠"

이와 함께 북한측의 이산가족 상봉은 남측과는 전혀 다른 의도가 있는데요,

이모 탈북민 : 이산가족 상봉은 하나의 쇼 일뿐 입니다. 실지 당사자들은 이미 많이들 돌아가셨으며 고령의 나이들 입니다 이산가족분들이 자유롭게 서로 왕래 하면서 가족들을 만날려면 우선 북한정권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자들도 한주 전부터 행사장에서 어떤 발언을 해야 되는지에 행동을 해야되는지에 대해 철저히 교육을 받고 왔을 겁니다. 또한 가족들 만남도 북한요원들이 지켜보고 있어 마음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것 이며 또한 돌아가서도 주변으로부터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눈초리를 받으면서 살겁니다."

그렇지만 이산 가족 상봉은 계속되야 한다면서 이번에 한국에서 신청한 신청자수가 56,000명 이었지만 겨우 89명이 당첨이 되었다면서 이런 부분들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제사회의 차원에서보면, 유럽연합 이라던가, 인권단체들이 얼마든지 가족들의 자유 만남을 이루어 낼수 있는 플랫트 폼, 즉 새로운 방침들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1975년 7월부터 8월 사이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유럽 안보 협력 회의 에서 채택된 헬싱키 조약 또는 합의 문서가 독일 통일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탈북민 이모 씨는 만약 한반도에 이런 협의체가 만들어진다면 유엔 제도에 의해 화해 협력 단체들이 생길수도 있고 그 단체들이 어느쪽에서 치우치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문화예술과 또 이산 가족 문제들을 정치적 성향이 들어가지 않게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는 기회들이 있는데,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현재 유엔 상임 이사국들이 승인만 해도 이런 협의체가 이루어질수도 있고 여기서의 역할은 한국이 진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625 전쟁은 내전으로 시작되었지만 유엔 16개국이 참전하고 곧이어 중공군이 대거 참전하는 국제전 이었습니다. 한국민간인 납치자들을 석방하는 문제는 북한이 먼저 언급을 했다고 1951년 12월23일 제10차 회의록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까지도 그들을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있으며 가족들은 60여년을 서로 헤여져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갑니다.

남북한 관계 사료 12집 95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52년1월4일 주한미군대사가 유엔전방 사령부에 보낸 전문에는 대한민국 내무부가 전국 126,325명 중 일반 납치자 36,472명, 강제 의용군73,613명, 자원의용군16,240명의 피 납치자 명단을 작성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씌여져 있습니다. 북한이 처음부터 민간인 송환을 거부한것은 대한민국과 국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문제로 인식함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가족들이 서로 헤여져 만날수 없게 만든 기본 장본인인 북한의 독재 정권의 악랄함과 잔인함을 세상에 알린 반인도적 범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