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인권, 특히 탈북여성의 인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는 남한의 관동대학교 이원웅 교수로부터 탈북여성의 실태, 탈북아동, 탈북여성들의 이혼과 재혼문제 등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이 교수는 이달 중으로 설립될 가칭 ‘탈북여성인권연대’를 맡아 꾸릴 계획입니다.

가칭 ‘탈북여성인권연대’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이원웅 교수: 네. 모두 탈북자 200여명정도의 여성분들이 모여서, 11월중에 법인등록을 하려고 현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한국에 들어오셔서 제일 첫 번에 하나원이라는 시설에서 적응훈련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여성분들이 하나원에 들어오는 비율이 70%가 넘다보니까, 이분들을 별도로 수용하는 시설을 정부에서 별도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이 두 달 동안 함께 매 기수당 약 100명에서 200여 명씩 두 달 동안 함께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다 친분이 생기시고 또 하나원을 퇴소하고 난 후에도 죽 서로 연락을 하기 때문에 그들 중에서 어린아이 빼고, 또 아주 지방에 가 계신 분들 제외하고 이렇게 한 200여명 정도 서로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사실 그동안 여성문제랑 아동인권문제를 많이 연구해왔습니다. 북한에 여러 가지 인권문제가 있음니다만, 특히 이분들이 굉장히 어려운 조건 속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분들에게 관심을 가졌었는데, 아마 이분들이 제가 발표한 논문 같은 것을 읽으시고 저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북한여성들의 최근 실태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이: 네. 한마디로 ‘지금 북한을 먹여 살리는 게, 서민들을 먹여 살리는 게 여성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정말 어려운 조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기때문에요.
특히 북한은 ‘남녀평등’의 나라고, 또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만, 실제 공장가동율이 30%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남성들이 딱히 나가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없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는 여성들이 장터에 나가서 물건을 팔고, 또 너무 힘드니까 중국을 넘어가게 됩니다.
중국에 넘어와서 갖은 고생을 하시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을 했는데요, 이분들은 중국에 나와 사시면서 어떤 분들은 본의 아닌 혼인을 합니다. 너무 생활이 어렵다 보니까 중국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요, 그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것을 북한에 들여보내서, 송금을 해서, 또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인편을 통해서, 북한에 있는 가족까지 부양하는, 이런 정말 이중 삼중의 책임을 떠맡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탈북여성들의 중국 내 인신매매가 심한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이들에게 몸값이 매겨져 있다고 하던데?
이: 제가 탈북여성문제를 7-8년 전부터 죽 관심을 가지고 봤는데요. 제일 첫 번에 들어가서 깜작 놀랐던 게 탈북여성들이 매매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 가격이 소와 말의 딱 중간가격이었습니다. 제가 참고로 그 당시에 내몽골 쪽의 소값하고 말 값을 조사해봤는데요, 그때 중국 돈으로 5,000위안정도 됐었어요. 그리고 거기는 말이 조금 더 쌌었습니다.
말은 한 3,000위안정도 됐었는데, 탈북여성들을 한명 데려오는데 지불하는 가격이 약 4,000위안정도\x{b42c}다고 해요. 그러다보니까, 소값하고 말 값의 중간이구나 하고 제가 쉽게 이해를 했습니다마는, 우리나라 예전에 풍습에 소위 중매쟁이에게 어느 정도 사례를 하는 풍습이 있는데, 중국에도 그런 것이 지금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어떻게 보면, 인신매매의 형식을 띄게 되는 거죠. 돈으로 탈북여성을 신부로 데려오는 대가를 신랑 측에서 현금으로 지불하다 보니까요. 이런 것이 아주 광범위하게 지금 중국에서 실제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인과 결혼해서 그 사이에 태어난 아동들은 제대로 생활하는데 별 문제가 없습니까?
이: 그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데 농촌이 여성이 없거든요. 그리고 농촌이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버리고,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농사를 지을 후세대가 없어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필요로 합니다.
어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임여성을 필요로 하는데, 지금 이런 것이 일종의 시장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죠. 여성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지금 아주 중국농촌에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데요. 이런 것으로 쉽게 말하면 인신매매된 여성들이 들어와서 아이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 사람들은 아이는 일단 자기들 남편쪽 호적에 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키우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마는, 여성은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여성들은 언제든지 중국경찰에 단속이 되면 다시 본국으로 강제송환이 되고, 아이들은 엄마 없는 아이로 또 남겨지게 되겠죠?
그러면 이 강제 송환된 여성들이 아이 때문에 다시 또 넘어옵니다. 세 차례, 네 차례 넘어온 여성도 제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아이를 낳은 고통을 겪으면서, 또 한편으로 본국에 있는, 즉 다시 말해서, 북한 내에 있는 자기들 남편이라던가 또 자기형제들을, 가족들을 부양하는 이중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여러 차례 제가 실제로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제일 지금 이분들이 어려워하는 것이 결혼문제입니다. 탈북해서 오셨는데 혼자서 살아가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이분들이 가족을 가져야한다는 것은 저는 개인의 천부적인 인권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결혼을 하려면 참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우선 북한에서 결혼하신 분들은 이혼을 먼저 해야 하거든요. 법적으로 이혼을 하셔야 되고, 그것을 홀가분하게 자유롭게 되신 상태에서 다시 결혼을 하셔야합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정부에서 법적으로 특별법을 만들던 지해서 본의 아니게 이렇게 결혼하신 사실이라던가, 북한에서 결혼을 했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남편과 떨어져있어서 더 이상 다시 정상적인 부부로서 생활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분들에게 이혼을 우리나라에서라도 특별법을 해주는 그런 것들, 그리고 이분들이 다시 보금자리를 찾고 좋은 남편을 만나서 남한사회에 정착하고, 주류사회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것이구요.
이번에 창립되는 ‘탈북여성 인권연대’에서 우선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가?
이: 이분들은 한 가지 단적인 예로 북한에 생리대를 보내는 운동을 하고 싶다고 저한테 호소합니다. 북한여성들은 생리대가 없다고 합니다. 상업적으로 생산되는 생리대라는 것은 정말 당 간부들이나, 아주 상류층 여성들이나 사용할 수 있구요, 대부분의 여성들이 불결한 천조각을 가지고 생리대를 사용하는데 남한에 와서 보니까 ‘이것 너무 좋다’ 그래서 생리대 생산업체에서 이런 것을 보내줄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보내줄 수 있다 이렇게 말들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라고 북한당국을 설득해서 좀 더 많은 북한여성들이.. 물론 북한에 물자가 부족하니까 할 수 없다고 하시겠지만, 남한에서 뜻있는 분들이 이 물품들을 보내주겠다고 하는데도 문호를 막아놓고 쓸 수 없게 하는데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빨리 힘을 합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얻어서, 문호를 열어서 ‘이것은 군사물자로 쓸 수도 없는 물건들이기 때문에’ 전달하는 일들을 앞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워싱턴-장명화